우리 사회의 공론화: 현재의 위치와 나아갈 방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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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공론화: 현재의 위치와 나아갈 방향은?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1.08.23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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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포커스] KDI FOCUS

우리 사회의 공론화: 현재의 위치와 나아갈 방향은?
-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및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에 대한 평가를 중심으로 -

 

문재인정부 초기에 수행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는 새로운 갈등해결 기제로서 공론화의 활용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후 이듬해인 2018년에 교육부가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를 실시하였으며, 그 외에 국가기후환경회의의 ‘국민정책제안’, 기재부의 ‘국민참여예산’ 등도 공론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공론화의 확산세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한편에서는 일반 시민들의 참여를 확대한 진일보한 민주주의적 실천이라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여론정치에 휩쓸리거나 정책 당국자의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KDI(한국개발연구원)는 「공공갈등·공론화·시민참여에 관한 국민인식조사」를 통해 2020년 현재 공론화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살펴보았다. 먼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이후 우리 사회에서 공론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는데, 국민의 75.9%가 매우 바람직 또는 약간 바람직하다고 응답하였고,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거나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고 응답한 국민은 4.7%에 불과하였다. 대다수 국민이 공론화 현상을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공론화에 대한 찬반 쟁점에 대해서도 10점 기준으로 동의 수준을 물었는데, 기대요인에 대해서는 평균 6.1~6.9 수준, 우려요인에 대해서는 평균 4.8~5.8 수준의 동의를 보여주어 긍정 의견 쪽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17년의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와 2018년의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의 조사자료를 이용하여 두 공론화가 공론화의 본래 목표에 얼마나 충실하게 부합하였는지 실증분석하고, 이를 통해 공론화가 사회갈등의 해결기제로서 올바로 작동하기 위한 조건을 탐색하는 연구자료 「우리 사회의 공론화: 현재의 위치와 나아갈 방향은?」을 〈KDI FOCUS〉(집필자: 황수경 선임연구원)로 지난 6일 발간했다.

이 자료에 의하면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및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는 새로운 갈등해결 기제로서 공론화의 활용 가능성을 보여주었지만, 분석적 관점에서 보면 담론의 대표성과 포괄성에 일부 결함이 발견되며, 공론화를 통한 사회적 컨센서스의 도출, 즉 공론 형성에도 한계를 드러냈다. 

황수경 선임연구원은 이 자료를 통해 공론화를 좀 더 체계적으로 기획하고 지원·관리할 시스템과 전문적인 역량이 필요하며, 공론화를 둘러싼 찬반 논의는 원론적인 측면에서가 아니라 개별 공론화 사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확인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 공론화의 분석프레임

공론화는 기본적으로 숙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를 구현하는 실천방식이다. 숙의민주주의란 대의민주주의(representative democracy)의 결함을 보완하기 위한 체제로서,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의 숙의(熟議) 결과로 나타난 민의를 의사결정에 반영하려는 민주주의적 이상을 지칭한다. 그러나 충분한 정보와 토의를 토대로 이루어진 공론(公論)에 따른 결정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참여민주주의(participatory democracy)와는 차별화된다.

요컨대, 숙의민주주의는 현대 민주국가의 주축을 이루는 대의민주주의의 대안적 또는 보완적 체제로서, ‘참여’와 ‘숙의’라는 두 장치를 통해 시민들과 그들의 대표자들이 내린 결정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숙의민주주의가 현실세계에서 구현되는 순간,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공론화는 크게 기획, 참여, 숙의라는 세 측면에서 평가될 수 있다. 여기서는 ‘참여’와 ‘숙의’ 측면을 중심으로 실증분석 결과를 소개한다. 

■ 참여 측면의 평가

공론화의 시민참여단은 집단적 결정이나 정책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될 일반 시민을 충분히 대표하고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대표성/포괄성). 공론조사(deliberative poll) 방식의 공론화를 고안한 피시킨(James S. Fishkin)은 참여자 구성이 (1) 인구통계학적 대표성, (2) 쟁점에 대한 견해의 대표성, (3) 충분한 규모 등 세 가지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하지만 모집단을 비례적으로 모사하는 것만으로는 담론의 대표성을 충분히 확보할 수 없다. 포괄성 기준에서 보면 참여자 구성에서 소수자나 평소 의견이 덜 반영되는 인구그룹에 대해 의식적으로 과표본(over-sampling)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즉, 포괄성은 진정한 숙의를 위해 대표성을 보완하는 기준이다.

▶ 대표성 기준을 충족하는가?

실제 인구통계학적 대표성과 관련해서, 신고리 5·6호기 및 대입제도 개편 두 공론화의 대국민 사전조사 및 시민참여단의 성, 연령, 지역별 분포를 모집단의 분포와 비교하면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없는 것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쟁점사안에 대한 견해에서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관찰된다(표 2).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의 경우, 시민참여단 선정 시 명시적으로 고려된 (1)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재개에 대한 입장은 대국민조사와 시민참여단 간에 유의한 차이가 없지만, (2) 원자력발전 정책 방향에 대한 견해에서는 1% 유의수준에서 통계적 차이가 확인된다. 구체적으로 탈원전 성향의 시민들이 다소 과다대표 되었다.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나타난다. (1) 대입전형에서 우선시해야 할 전형 및 (2) 2022학년도 대입전형에서 확대해야 할 전형에 대한 견해 모두에서 대국민조사와 시민참여단간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응답 차이가 확인된다. 전체적으로 학생부위주전형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견해 혹은 적어도 현재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견해가 과다대표되었다.

▶ 포괄성 기준을 충족하는가?

시민참여단 구성은 사전조사에서 시민참여단 활동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성, 연령, 쟁점에 대한 견해 등의 정보를 이용해 층화 추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즉, 사전조사에서 참여의사가 없다고 응답한 사람들은 시민참여단 구성에서 원천적으로 제외되었다.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보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공론화 참여의향이 적을 것으로 추론되므로 사전조사와 참여의향자 사이에 나타난 차이는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하지만, 시민참여단에서 그 차이가 더 확대되었다면 최종 참여단 표집이 대표성의 결함을 보완하기보다는 오히려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 숙의효과의 분석

숙의 측면의 평가요소로는 첫째, 충분한 정보공유와 참여자들의 학습이 이루어졌는가, 둘째, 숙의과정에서 공정성이 보장되었는가, 셋째, 성찰적 숙의가 이루어졌는가가 꼽힌다. 여기서는 첫 번째와 세 번째 요건을 중심으로 숙의효과를 살펴본다.

▶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숙의가 성찰적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참여자들이 쟁점사안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습득하고 이해도가 증가하여 합리적 판단이 가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론화위원회가 제공한 6개 강좌의 참여단 평균 수강률은 92%였다. 또한 1차 조사의 8개 문항 중 평균 정답 수는 2.8개에 불과했지만 2차, 3차 조사로 갈수록 그 수가 4.8개, 6.0개로 증가해 사안에 대한 이해수준이 높아졌다.

다음은 숙의가 참여자의 합리적 판단과 의견 형성에 도움을 주었는가를 살펴봤다. 시민참여형조사는 3차에 걸쳐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재개에 대한 견해와 함께 해당 판단을 하는 데 고려되는 요소들의 중요도를 함께 물었다. 고려요소는 1) 안정성, 2) 안정적 에너지 공급, 3) 전력공급 경제성, 4) 지역 및 국가 산업, 5) 전기요금, 6) 환경성 등 6개 항목이다.

판단 유보를 제외하고 중단(1)/재개(0)의 견해와 요소별 중요도와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가
<표 4>이다. 참여자들의 중단/재개 판단은 6개 요소 모두와 매우 높은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구체적으로 안전성과 환경성을 중시할수록 ‘건설 중단’에 가까운 견해를 보이고, 그 외 항목을 중시할수록 ‘건설 재개’ 의견 쪽으로 기운다. 2)~5) 항목이 경제ㆍ산업 측면의 고려라는 점에서 이는 합리적인 의사결정 패턴이라 볼 수 있다.

성찰적 숙의의 가장 유력한 증거는 숙의 참여자의 선호 전환이다. 선호 전환은 숙의과정에서 더 많은 정보와 찬반토론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형성하거나 처음 견해를 바꾸는 것을 포착하는 개념이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관련 견해에서는 공론화를 거치면서 참여자의 32.7%가 분명한 의견을 갖게 되었고(유보 → 의견), 7.0%는 견해를 반대로 바꾸었으며, 1.7%는 자신의 의견을 철회한 것으로 파악된다. 숙의를 거친 후에도 의견이 유지된 경우는 58.6%이다. 원자력발전 정책 방향에 대한 견해에서도 의견 유지 비중은 거의 비슷하지만 의견 변경의 내용은 상이하다. 의견을 형성한 경우는 6.8%에 불과하고 의견을 바꾼 경우가 33.1%이다. 숙의과정을 거쳐 의견이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공론화가 참여의 대표성을 충족시키고 있다는 전제하에 이러한 분석 결과를 직관적으로 풀어보면, 신고리 5·6호기 건설과 관련하여 중단/재개를 둘러싼 논란은 공론화 이전에는 중단하자는 주장 29% 대(對) 재개하자는 주장 37%의 대립이었다. 하지만 공론화 후에는 중단/재개 논쟁이 41% 대 56%의 구도로 벌어졌다. 

마지막으로, 선호 전환에서 어떤 요인이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기 위해 선호 전환 여부를 종속변수로 실시한 로짓분석 결과는 지식수준(사안에 대한 이해수준)이 높으면 견해를 바꿀 가능성이 적지만, 지식 이득(이해수준 증가)이 있으면 선호 전환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상의 결과를 종합해 보면,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의 경우 공론화 프로세스가 참여자 개인들의 선호 전환, 즉 의견 형성 및 합리적 의견 조정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내면서 사회적으로 더 선호되는 의사결정에 이를 수 있게 하였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

시민참여단의 97% 이상이 온라인강좌를 이수하여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의 이수율 92%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하였다. 지식 관련 9개 문항의 평균 정답 수는 1차, 2차, 3차로 갈수록 각각 4.4개, 5.8개, 6.7개로 증가하였다. 지식 이득이 확인된 셈이다.

한편,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에서는 4개 의제에 대한 지지도와 8개의 판단근거의 중요도를 물었다(표 7). 1차 조사의 8개 판단근거 중요도를 요인분석한 결과, 2개의 공통요인이 도출되었다. 요인 1은 경제적 불평등에서 기인하는 입시기회의 불공정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중시하는 관점(공정한 교육기회)이고, 요인 2는 선발과정, 학교교육, 대학입시제도와 같은 교육시스템 전반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고려하는 관점(시스템적 효율성)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추출된 두 요인이 4개 의제 각각에 대한 지지도를 결정하는 데 어떻게 작용했는지 살펴본 결과, 공정한 교육기회(요인 1)를 중시하는 입장을 가질수록 1안과 4안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고, 시스템적 효율성(요인 2)을 중시하는 입장일수록 2안과 3안을 지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는 1~3차 조사를 거치면서 점점 더 뚜렷해졌다. 이는 공론화 과정을 거치면서 참여자들이 객관적인 근거에 기반해 일관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려는 경향이 강화되었음을 시사한다.

또한 참여자의 선호 전환을 분석한 결과 처음 의견이 유지된 경우는 약 3분의 1에 불과하였다. 두 모형 모두 지식 이득이 있었던 경우에만 유의하게 선호 전환 가능성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숙의과정에서 추가적인 정보 및 지식의 습득이 최종적인 의사결정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는 공론화 의제 중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1위 의제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공론화의 숙의효과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 바 있다. 공론화의 원래 목적인 공론 형성에 실패했다는 것인데, 왜 이 같은 결과가 나타났는지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기 위해 요인분석 방법을 활용했다. 최종 선택지였던 4개 의제를 관통하는 메타쟁점을 도출하기 위함이다. 

3차 조사의 4개 의제 지지도를 요인분석한 결과(표 10의 (1)), 요인 1의 고윳값(1.668)이 압도적으로 크고 여타 요인의 설명력은 미미하였다. 이는 각 의제에 대한 지지도가 단 하나의 공통요인으로 효과적으로 집약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요인 1의 구조를 살펴보면(표 10의 (2)), 이 요인은 의제 1(수능 강화) 지지도와 매우 높은 정(+)의 상관관계(0.797)를 갖고, 의제 4(수능+내신 강화) 지지도와도 높은 정(+)의 상관관계(0.588)를 보이며, 반대로 의제 2(학종 강화) 및 의제 3(수시 강화)의 지지도와는 높은 부(-)의 상관관계를 보였다.

각 의제들과 이 같은 관계를 갖는 하나의 공통 요인은 무엇일까? 필자는 이 요인이 ‘수능에 대한 선호’를 포착한다고 판단하였다. 즉, 메타쟁점인 수능선호도에 의해 4개 의제에 대한 지지도가 정해졌다는 것이다. 이 경우 요인점수는 개인의 잠재적 수능선호도로 볼 수 있고, 동일한 요인구조를 가정하면 각 조사차수별로 잠재적 수능선호도를 측정할 수 있다.

[그림 3]에서 보듯, 시민참여단의 수능선호도 분포는 숙의 전에는 오히려 단일한 봉우리로 모여 있었지만 숙의를 마친 시점에서는 지배적인 선호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분산되었다. 이러한 선호 분포의 변화가 결과적으로 공론화에서 유의미한 결론이 도출되지 못한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선호의 퍼짐 현상은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를 제기한다. 첫째, 숙의과정이 공동성찰을 통해 상대 의견의 장점을 받아들여 차이를 서로 좁혀가기보다는 대립되는 주장이 상호 강화되는 과정으로 진행되었을 수 있다. 둘째, 4개 의제 설정이 과연 사안의 쟁점을 적절하게 포착하였는지도 의문이다. 판단근거 측면에서 보면 공정한 교육기회와 시스템적 효율성이라는 메타쟁점이 중심 이슈였지만, 정작 4개 의제는 잠재적 수능선호도라는 한 개 요인에 의해서만 차별화되는 의제가 설정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대학입시제도라는 매우 복잡한 제도 이슈를 지나치게 단순한 문제로 치환시키는 결과가 되어버린 것이다.

■ 결론 및 정책적 함의

참여 측면에서 보면, 두 공론화 모두 시민참여단의 인구통계학적 대표성은 충족되지만 쟁점사
안에 대한 태도 대표성과 포괄성에서는 부족함이 발견된다. 둘 다 진보적 정치성향이 과다대표되는 문제가 나타나는데, 문제의 상당 부분은 참여의향을 표명한 사람들로 한정해서 시민참여단을 선정하는 방식이 갖는 한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된다. 참여의향자 가운데 소수의견자의 과표본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숙의 측면에서는, 사안에 대한 이해 증진과 근거에 기반한 의견 형성이라는 기준에서 볼 때 두 공론화 모두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짧은 기간임에도 참여자의 학습이 빠르게 이루어져 의견 형성에 도움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공론화 과정에서 참여자들의 선호 전환, 즉 의견 형성 및 합리적인 의견 조정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낸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공론화를 통한 사회적 컨센서스의 도출, 즉 공론의 형성이라는 측면에서는 한계를 보였다. 특히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에서 의견이 수렴하지 않고 오히려 분산되었다. 의제 설정이 제대로 되지 않았거나 숙의과정에서 대립되는 주장이 강화되는 원심력이 더 크게 작용하였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의견이 분산된 원인을 심층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는, 단적으로 표현하면, 공정한 교육기회와 시스템적 효율성이라는 두 가지 기준을 가지고 단 하나의 쟁점, 즉 수능비율을 결정해야 하는 선택구조였다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쟁점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각 의제의 숨은 의도를 파악해야 하는 복잡한 상황이 주어졌다. 이는 공론화 의제가 명료해야 한다는 기본요건을 위반한 것이다. 공론화가 쟁점을 정확히 반영하도록 잘 설계될 필요가 있다는 점, 즉 기획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공론화의 대부분이 정부의 주문에 의해 공론조사(숙의여론조사)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다 보니 정부는 참여자의 의견수렴을 통한 공론의 형성보다는 곤란한 의사결정을 시민참여단의 이름으로 결정해 주길 기대한다. 이 때문에 공론이 형성되지 않더라도 다수에 의해 지지되는 특정한 결론이 도출되면 성공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공론 형성에 한 걸음 다가가는 공론화가 아니라면, 숙의가 가미된 또 다른 형태의 다수결주의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에서 공론화는 이제 걸음마를 떼고 본격적인 활용단계에 돌입했다. 그동안 단편적인
필요에 의해 공론화를 진행해 왔다면 이제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공론화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좀 더 체계적으로 공론화를 기획·관리할 수 있는 자원과 역량이 요구된다. 공론화의 목적과 프로세스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토대로 공론화 의제와 범위를 기획하고, 프로세스 지원 및 관리 경험이 축적될 수 있는 제도화를 고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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