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기본역량진단, 구조조정을 위한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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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기본역량진단, 구조조정을 위한 정치학
  •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 승인 2021.08.23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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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남 칼럼]_ 대학직설

교육부가 주도한 ‘3주기 평가’, 즉 ‘대학기본역량진단의 가결과’가 발표되었다. 산학협력 등 특수목적의 재정이나 국가장학금 등의 지원을 제외한 일반적 재정지원을 차단하는 것이 그로써 드러난 효과 중 하나다. 그리고 다음 달부터 시작하는 2022년도 수시전형원서 접수 기간에 결정적 영향을 주고자 하는 목적 또한 그 효과 중 하나다. 물론 이번 ‘진단의 가결과’에서 탈락한 일반대학 25개, 전문대학 27개의 소속 교수나 학생이 아니라면,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함께 기억에 남지 않을 흔한 뉴스에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대학에 놓여 있는 여러 문제의 본질이 교육부 등 교육 밖의 권력에서 시작하고 있음을 조금이라도 인정하는 순간, 이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 구체적 보편의 눈으로 이 문제의 본질을 살펴봐야 한다.

고등교육을 수행할 역량을 갖췄는지를 묻는다면 당연히 보편적 절대기준을 제시하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할 시 퇴출하는 게 맞다. ‘대학설립·운영 규정’을 보완하고 기존의 ‘대학기관평가인증제’를 내실 있게 운영하면 족하다. 그러나 기존의 두 번의 평가를 포함하여 이번의 ‘진단’ 역시 권역별 혹은 전국 단위라는 매우 정치적 언어를 사용하였으며, 또한 일정 비율을 ‘선정’하는 등 결국은 상대 평가를 거쳐 탈락의 낙인을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왜 교육부가 스스로 이 뻔한 사행적 진단의 가상을 드리우면서까지 상대 평가를 하는지는 그리 큰 고민이 필요하지 않다. 자율적 진단신청을 비롯하여 역량의 진단이라는 외피를 통해 마치 고등교육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니고 있는지를 진단하는 듯하면서도 상대 평가를 거쳐 일정 규모의 탈락대학을 양산하여 마치 ‘부실대학’을 드디어 골라냈다고 선포하는 이유가 탈락대학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이번 진단을 정당화함으로써 이후 추진되는 대학별 구조조정을 주도하고자 하는 정치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탈락대학으로 알려진 성공회대, 성신여대, 평택대, 상지대의 경우, 한 달 전 ‘사학혁신 지원사업’의 5개 대학으로 선정되어 사학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혁신과제를 수행하게 되었음을 기억한다면 교육부의 이번 역량진단의 가결과는 오로지 향후 구조조정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 정당성을 마련하는 데 있다. 

아울러 교육부는 이번 진단으로써 3년간 지원되는 재정의 운영을 매우 탄력적으로 하도록 함으로써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제정하라는 광범위한 정치적 요구를 회피하고, 동시에 팬데믹으로 야기된 대학의 재정 결핍을 지원한다는 정치적 명분을 크게 얻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13년째 동결된 사립대학의 등록금 현실을 고려하고, 또한 학교법인의 법인전입금 수준이 고작 교비회계의 5%도 되지 않는 상황까지 고려한다면, 사립대학을 정상적 고등교육의 기관으로 운영하는 데 필요한 교육재정을 확보할 방안은 국가의 교부금을 높이는 데 있음은 너무나 자명하기 때문이다. 갈수록 재정 형편이 나빠지고 그럴수록 대학 안에서의 민주주의 수준도 하락할 것을 예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보완하여 고등교육을 정상으로 이끌 생각은 저버린 채 이를 사립대학의 결정적 약점으로 삼아 사립대학의 자주성을 훼손하는 교육부의 행태는 권력작용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이런저런 정치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이번 역량진단의 효과는 내년부터 3년간 수십억 원의 재정을 지원받는 조건으로 대학별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는 데 있으며, 교육부가 이 자율적 구조조정을 지휘하겠다는 정치적 선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권력은 교육부에 숨겨져 있고, 행위와 그 책임은 전적으로 대학과 그 구성원들이 맡는다는 강요된 시나리오가 통과된 셈이다. 이번 재정지원을 받게 되면 대학은 유지충원율의 변동에 따라 입학정원의 감축을 교육부로부터 권고를 받게 되고, 지원받은 재정을 지키려면 그 권고사항을 이행하여야 한다. 이를 ‘적정 규모화’라고 칭하고 이 작업 시나리오를 훌륭하게 준수하면 별도의 혜택, 즉 인센티브를 부여한다고 한다. 과연 이것이 국가가 할 짓이고, 대학이 할 일인가? 더욱이 대학은 이번 재정지원의 조건을 이행하기 위하여 입학정원을 유연하게 조정한다는 명분으로써 기초학문 분야나 취업률이 낮은 분야의 모집을 일방적으로 유보하는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그리고 이를 둘러싼 대학마다의 내부 갈등이 폭발한다면, 어쩌면 이번 수십억 원의 재정을 지원받는 대학이 구조조정의 사실상 희생양이 되어 대학자치의 붕괴를 맞을 수도 있다. 

입학정원의 감축을 도모할 목적이라면 역량진단이나 자율적 진단신청이라는 미명으로써 정치적 의도를 숨기지 말고 국가답게 그 정치적 책임을 먼저 이행하여야 한다. 이미 강조한 바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대학의 입학정원을 확대하도록 멍석을 깐 기획의 주체는 국가이므로 그 감축의 일차적 책임 역시 국가에 있음은 명백하다. 따라서 입학정원 감축에 따른 그동안의 혼란에 대해 국가가 진솔하게 반성하고 그에 어울리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 감축의 방안에 관해서는 향후 논쟁이 불가피하긴 하지만, 교원확보율이나 대학의 고등교육역량을 바탕으로 인구감소의 추이도 고려하면서 모든 대학의 입학정원을 균등하게 감축하고 그 부족분을 국가의 교부금으로 채우는 게 합리적이라고 본다. 물론 이조차도 오늘날 겪는 대학 위기의 본질은 아니긴 하나, 만일 교육부가 입학정원 감축의 반성과 책임마저 회피하거나 묵과하여 또다시 구조조정의 기획만 담당한 채 그 책임을 대학과 구성원들에게 전가하려고 한다면 이제라도 그 권력작용을 스스로 포기하여야 할 것이다. 

시장의 포악함과 무질서를 잘 알기에 우리는 국가의 작용에 기대를 건다. 하지만 국가 스스로 권력작용에 필요한 이성을 갖추지 못하고 오로지 정치적 권위만 앞세운다면 그 기대를 거둬들일 수밖에는 없다. 국가의 작용은 고등교육기관이라는 대학을 줄 세워 꼬리를 자르는 데 있지 않고, 대학의 부족함이나 모자람을 채우고 지원하는 데 있음을 기억하고자 한다.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인제대학교 공공인재학부 교수로 <대학평의원회> 의장을 맡고 있다. <민주법학> 편집위원이며, 전공은 계약법으로 교육법, 인권법, 주택법, 법여성학 등에도 관심이 많다. 저서로 『여성과 몸』(공저, 2019), 『대학정책, 어떻게 바꿀 것인가』(공저, 2017), 『민법사례연습』(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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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 2021-08-23 15:25:38
교육부 ‘개혁’(혹은 폐지)는 시민사회에 대한 국가 지배체제의 혁파를 통한 시민 민주주의적 자치와 자율의 확보라는 목표 하에, 과거 군부개혁이나 현 검찰개혁에 준하는 준비와 각오를 가지고 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보입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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