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불교 전파자 阿道, 順道, 摩羅蘭陀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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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불교 전파자 阿道, 順道, 摩羅蘭陀는 누구인가?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1.08.16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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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63)_ 삼국시대 불교 전파자 阿道, 順道, 摩羅蘭陀는 누구인가?

 

중앙아시아 제1의 국가로 알려진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시켄트(‘돌의 도시’ 또는 ‘石國’)에 첫발을 내디딘 지 20년이 넘었다. 그 이래 국가 위상이 달라져 초원의 나라 카자흐스탄이 제1 국가가 되고 1929년에서 1997년까지 수도였던 인구 2백여만의 도시 알마아타(Alma-Ata) 또는 알마티(Almaty)는 ‘하얀 무덤’이라는 묘한 이름을 가진 Akmola라는 도시에 수도 자리를 양보했다. 1998년 신수도가 된 악몰라는 수도라는 뜻의 ‘Astana’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가 20년 쯤 지난 2019년 다시 Nur-Sultan으로 개명을 했다. ‘빛나는 술탄’이라는 뜻의 이 이름은 오랜 시간 장기집권에 성공한 전직 대통령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Nursultan Nazarbayev)의 이름에서 따왔다.

70년 가까이 한 나라의 수도이자 중앙아시아의 중심도시 역할을 한 ‘사과(alma)의 아버지(ata)’라는 뜻을 지닌 카자흐스탄 제1의 도시 알마아타는 현재도 여전히 문화와 교역의 중심지이다. 이름에 어울리게 거리와 집집마다 가로수와 정원수로 사과나무가 심어져 있다.

 

고교시절 머리를 밀고 승복을 입은 모습을 상상했던 적이 있다. 왠지 그럴 듯했다. 운수납자의 삶에 대한 동경은 그 이후에도 진행형이다. 나는 잿빛 승복 색깔이 마음에 든다. 승려의 옷을 가사(袈裟)라 한다. 고대 범어 카사야(kasāya)의 음차어이다. 장삼(長衫) 위에,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걸쳐 입는 법의(法衣)를 가리킨다. 종파에 따라 빛깔과 형식을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장삼은 긴 적삼 즉 저고리 다시 말해 윗도리[웃옷]를 말하는데 평북방언으로는 당삼이라 하며 품과 소매를 넓게 만든다. 아랫도리(옷)는 바지와 치마다. 그런데 의복 용어에 등장하는 도리는 단순히 신체의 아래 부분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기에는 뭔가 심오한 내용이 더 있을 듯하다.

한자어 闍는 ‘망루 도, 사리 사’로 읽히는데, 高僧을 뜻하는 불교용어 아차리야(ācārya)의 음표기에서는 후자로 쓰였다. 그렇게 아차리야의 차용어로 쓰인 闍梨와 阿闍梨는 각각 사리와 아사리라고 읽히고 그 의미는 본래 불교에서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행위를 바르게 지도하여 그 모범이 될 수 있는 승려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고려 시대에는 귀한 집 아들로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된 총각을 대접하여 이르던 말이 되었다고 한다.

 

문제는 후대에 이르러 闍梨의 음이 사리에서 도리로 변하면서 도리라는 말이 사리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사리가 와전된 도리가 사리와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마당에 학자들이 취할 도리는 무엇인가? 평소 나는 학자로서 학자의 도리를 다하고 있는 것이던가? 돌연 도리를 道理로 적어야 할지, 闍梨라고 써야할지 궁금해진다. 중국어에서는 闍梨를 여전히 [shélí]라고 읽는다. 

闍梨와 阿闍梨 외에 阿闍黎(아사려), 阿奢梨(아사리), 阿舍梨(아사리), 阿祗利(아지리), 阿遮利(아차리), 阿遮梨夜(아차리야), 阿遮梨耶(아차리야), 阿查里亞(아사리아) 등 다수의 음차어가 존재한다. 意譯語는 軌範師(궤범사), 教授師(교수사), 正行(정행), 悅衆(열중), 應可行(응가행), 應供養(응공양), 教授(교수), 傳授(전수), 智德(지덕), 智賢(지현) 등이 있다. 敬仰(경앙)과 尊崇(존숭)의 의미를 담아 導師(도사), 上師(상사), 宗師(종사)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삼국시대에 불교가 유입되면서 우리말에는 생각 이상으로 많은 불교 용어가 포섭되어 있다. 이판사판, 야단법석, 이심전심, 건달, 아수라장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판사판(理判事判)은 불교승려의 한 부류인 이판승(理判僧)과 또 다른 부류인 사판승(事判僧)이 붙어서 된 말로, 일이 막다른 데 이르러 어찌할 수 없게 된 지경을 말한다. 이판승은 참선, 염불, 간경(看經, 경전 공부)을 통한 수행에 주력하는 승려를 말하고 사판승은 주로 사찰의 살림살이, 행정 등을 담당하는 승려를 가리킨다. 두 부류의 승려가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치열하게 갈등 반목하는 상황에서 비롯되어 부정적(否定的)인 의미(意味)의 ‘막판, 끝장’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판사판과는 다른 각도에서 불교승려를 비구와 대처승으로 구별하기도 한다. 비구승(比丘僧)은 출가하여 독신으로 불도를 닦는 승려를 말하며, 살림을 차리고 아내와 자식을 거느린 승려인 대처승과 구별하여 부를 때 쓴다. 비구(比丘)는 비크슈(bhiksu), 비쿠(bhikkhu)의 음역으로서, 필추(苾芻)라고도 음역하며 걸사(乞士), 파번뇌(破煩惱)로 의역된다. 여자 비구는 여성 어미 –니를 붙여 비구니라고 부른다. 비구가 되려면  구족계(具足戒)를 받아야한다. 구족계(具足戒)는 불교에서 쓰는 말로, 출가한 사람이 정식 승려가 될 때 받는 계율을 말한다. 비구와 비구니가 지켜야 할 계율이며 비구에게는 250계, 비구니에게는 348계가 있다.

야단법석(野壇法席)은 원래 야외(野外)에서 크게 베푸는 법회(법회) 즉 설법(說法)의 자리라는 뜻의 말인데 회중(會衆)이 많이 모이다보니 시끌벅적하니 요란스럽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서로 통한다는 말인데 <전등록(傳燈錄)>에서 유래한 말로 원래는 불교의 법맥을 전할 때 쓰이던 방식이다. <전등록>은 중국 송나라 진종 경덕(景德) 원년(1004)에 고승 도원(道原)이 쓴 30권의 불서로 석가모니 부처 이래 역대 법맥(法脈)과 법어(法語)를 수록하고 있으며 조선 시대 승과 과목에도 들어 있었다.  

건달(乾達)은 불교용어 건달바(乾闥婆)에서 유래된 말로, 원래의 뜻은 하는 일 없이 빌빌거리며 노는 사내를 일컫는데, 이후에 난봉이나 부리고 다니는 불량한 사람 혹은 폭력을 휘두르며 남을 괴롭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확대되어 쓰이고 있다. 건달(乾達)은 16세기 문헌에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본래 불교에서 팔부중(팔부신장: 불법을 수호하는 여덟 수호신)의 하나로 음악을 맡아보는 신(神)인 간다르바(gandharva)를 음차한 건달바(乾闥婆)에서 유래한 말이다. 건달바는 향을 먹고 사는 신으로 허공을 날아다니면서 노래만 즐기기 때문에,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놀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짓 또는 그런 사람을 일컬어 건달이라 하게 되었다.

 

아수라장(阿修羅場)은 아수라에서 나왔는데 싸움이나 그 밖의 다른 일로 큰 혼란에 빠진 곳, 또는 그런 상태를 말한다. 아수라(阿修羅)는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인간과 신의 혼혈인 반신이다. 인드라와 같은 신에 대적하는 악한 무리로 나타난다. 불교는 생명이 업보에 따라 天-人-修羅-畜生-餓鬼-地獄이라는 六道를 윤회한다고 본다. 여기서 수라가 아수라다. 애니메이션 마징가Z에 등장하는 아수라남작의 이미지도 어수선하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4세기 후반이다. 고구려에는 소수림왕 2년(372년)에 중국 전진왕(前秦王) 부견이 보낸 승려 순도에 의해 불법이 전해졌다. 그리고 2년 후에 동진(東晉)으로부터 아도(阿道)가 왔다. 

신라에는 눌지왕 때 사문(승려) 묵호자가 고구려로부터 왔다. 그리고 21대 비처왕 때 승려 아도가 사자 세 사람과 함께 왔는데 묵호자와 마찬가지로 모례(모록이라고도 함. 사람 이름)의 집으로 왔다. 아도는 아도(我道) 또는 아두(阿頭)라고도 하는데 아도본비에는 그가 고구려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시기적으로 동진에서 고구려로 온 아도와 고구려에서 신라로 온 아도는 이름만 같을 뿐 다른 인물로 보인다. 

아도는 소그드어 아타(ata)의 음차어일 가능성이 크다. 아도 즉 아타는 아바와 마찬가지로 성인 남성 일반을 가리키는 명칭이었다. 조선조 성종 대에 편찬된 악학궤범 처용가에 나오는 ‘아바’와 현재도 사용되는 함경도 방언 ‘아바이’는 친족어로서의 아버지가 아니라 남성 일반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新羅盛代 昭盛代(신라성대소성대)    신라 성대 밝은 성대
    天下泰平 羅侯德(천하태평라후덕)    천하가 태평한 것은 라후의 덕
    處容아바                                      처용아비여

백제의 불교 전래 시기를 조선시대 학자 안정복(安鼎福(1712~1791년)이 저술한 역사서 『동사강목(東史綱目)』은 침류왕 원년(384년) 9월이라고 전한다.

9월 백제왕이 인도 중을 왕궁으로 맞아들였다. 인도 중 마라난타(摩羅難陀 또는 摩羅蘭陀로 표기)가 진으로부터 와 백제왕이 궁중으로 맞아들여 예경하니 이는 백제 불법의 시초이다. 마라난타는 번역하여 말하면 童學이다.

인도 간다라 출신 승려의 이름 마라난타는 Mālānanda 또는 Marananta, Maranant'a, Maalaananda의 음차어일 것으로 보이며  Lopez에 의하면 재구형은 Kumāranandin이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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