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해외 바이오의약품 허가 사례로 보는 정부와 규제기관 내 혁신가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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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해외 바이오의약품 허가 사례로 보는 정부와 규제기관 내 혁신가의 필요성
  • 신영기 서울대학교·병리학
  • 승인 2021.07.13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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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은 번번이 규제 부문에서 암초를 만나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공전하고 있다. 과거의 사례나 기준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되거나 실행을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을 대다수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현실화할 수 있는 것일까? 최근 해외 바이오의약품 개발의 사례에서 그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첫 번째 사례는 코로나19 대유행의 시급성을 반영하여 불과 11개월 만에 RNA 백신의 긴급사용을 허가한 혁신적인 결정이다. 미국 규제당국은 팬데믹의 속도에 맞춰 임상을 진행할 수 있도록 "개발 속도의 혁신"을 허용하여 지금까지 한 번도 인·허가받은 적이 없었던 RNA 백신에 대해 짧은 개발 검증 기간을 거쳐 시장에 백신을 빠르게 공급하였다. 또한, 백신 개발 시작 단계부터 개발사가 대량생산을 준비할 수 있도록 각국 정부 기관들은 백신 선구매를 진행하며 직접적인 개발비를 지원하였다. 이는 백신에 동시공학(concurrent engineering: 제품과 제품의 생산, 지원 과정을 통합하여 동시적, 병렬적으로 설계하려는 체계적인 접근 방법론)과 프로젝트 관리가 접목되어 “혁신을 가속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미국 정부와 민군이 합동으로 백신 개발사들을 지원했던 '초고속 작전' 프로그램이 군사작전처럼 비쳤던 것은 동시공학 개념을 정립한 곳들이 미 국방성 하부기관들인 것과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지금이야 RNA 백신의 안전성 및 효과가 검증되어 긴급 사용승인에 대하여 아무 말이 없지만, 실제 세상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효과가 부족했다면 그야말로 규제기관은 뭇매를 맞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와 같은 모험정신의 사회적 합의와 배경이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두 번째 사례는 지난달 조건부 허가된 조기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의 아밀로이드 플라크를 제거하는 기전의 항체신약 아두카누맙(Aducanumab)이다. 작년 11월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 자문위원회에서 찬성표는 하나도 없이 11명의 전문가 중에서 10명이 반대하고 1명이 기권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미국 규제당국은 부족한 효능 입증에 대해 시판 후 확증 임상시험을 통해 검증하는 '조건부 허가'로 품목허가를 결정하였다. 원칙적으로 미국의 규제기관은 자문위원회의 권고사항을 따라야 할 의무가 없으나, 지난 10여 년간의 사례를 보면 규제기관의 결정이 자문위원회의 권고사항과 달랐던 것은 약 10% 정도에 불과하였다. 두 주체의 의견이 불일치했던 예도 이번처럼 자문위원회의 표를 단 한 표도 못 받고 품목 허가된 예는 없었기에 규제당국의 결정이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이 파격적인 결정으로 담당 부서에 대해 개발사와 불법적인 소통이 있었는지에 대한 감사까지 예정된 상황이다. 그러나 인·허가 절차와 의사결정의 무결성을 전제로 본다면 규제기관의 심사관들은 부당거래의 주인공이 아니라 규제 혁신의 아이콘일 수 있다.

현시점에서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 뇌에서 아밀로이드 플라크 제거로 환자의 인지기능이 개선할 수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규제기관 심사관들은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 뇌에서 아밀로이드 플라크를 아두카누맙이 제거한다는 임상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인지기능 개선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잠정적으로 아밀로이드 플라크 제거가 효능을 예측할 수 있는 합리적 대리지표임을 인정한 셈이다. 향후 진행될 아두카누맙 임상시험에서 인지기능 개선 효과를 확증하려면 무려 9년이나 더 걸릴 수 있으므로, 치료제가 존재하지 않는 의료 미충족 수요 해결을 위한 약물 허가 제도로서 ‘대리지표를 이용한 조건부 허가’를 수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의 반대편에 서 있는 전문가들은 아밀로이드 플라크 제거가 인지기능 개선의 대리지표인지 확실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더구나 이 약물이 비싼 가격에 보험 등재되면 미 정부의 의료보험재정은 더욱 악화할 수 있음을 우려한다. 그런데도 의사결정 과정에서 위험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기준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받아들일 수 없는 일들을 현실 세계에서 구현하기 위해서는 지금 이 시기에 위험을 감수하며 뭐든 시도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모험정신에 기반한 정부와 규제기관 담당자들의 결정이 필요한 것이다.

모험정신은 혁신에 근거한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데 필요한 기본 정신이다. 새로운 세대에게 모험정신을 요구하는 것은 역사를 통해 인류가 생존을 위해 필요한 기본 정신임을 학습했기 때문이다. 필드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에게 모험정신을 외치는 동시에 감독, 코치, 구단주들도 함께 모험정신을 장착해야 할 시점이다. 위의 두 사례를 통해 여느 때보다 혁신이 요구되는 현시점에 정부와 규제기관 담당자들의 합리적 판단에 근거한 모험정신이 중요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든다. 


신영기 서울대학교·병리학

서울대 약학대학/융합기술대학원 분자의학 및 바이오제약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박사(병리학). 항암제 동반진단사업단장, 서울대 생명공학공동연구원 부원장 역임. 서울대 시흥캠퍼스 전략사업단 바이오창업단지조성사업단장.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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