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과학에 담긴 철학적 함의를 사유하다
상태바
현대 과학에 담긴 철학적 함의를 사유하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1.07.11 17: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현대 과학과 철학의 대화: 적극적 소통을 위한 길 찾기 | 한국철학회 엮음 | 장회익·허남진·송기원·최종덕 외 6명 지음 | 한울아카데미 | 352쪽

 

인류 지성사에서 철학과 과학은 상호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상보적인 발전을 해왔다. 고대 자연철학은 근대과학에 과학적 사고의 토대를 제공했고, 근대 초기 철학은 근대과학이 실험적·수학적 전통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이에 기반해 성장한 근대과학은 근대철학이 인식론을 중심으로 한 이성과 경험 중심의 새로운 철학적 흐름을 창출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 연장선으로 20세기 과학이 쏟아낸 우주, 물질, 생명, 인간의 존재론적 본성과 관련된 중요한 철학적 함의가 담긴 문제들에 철학 역시 부응하여 물리철학, 생명철학, 몸철학, 심리철학, 인지철학, 기술철학, 정보철학과 같은 새로운 철학적 주제들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현대 과학의 고도화·전문화, 경제적 가치에 대한 지나친 중시로 소통의 한계에 직면하기도 했다. 

 

이 책은 현대 과학이 빠르게 발전하는 오늘날, 과학적 이슈에 대한 철학적 사유의 필요성을 실감한 한국철학회의 결실이다. ‘현대 과학과 철학의 대화: 적극적 소통을 위한 길 찾기’라는 이름으로 열린 한국철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내용을 책으로 펴낸 것으로 과학자의 시선과 철학자의 사유가 만나 확장된 질문과 그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우주 또는 자연의 본질은 무엇인가, 물질의 존재 방식과 그 본성은 무엇인가, 정보란 무엇이고 물질과 정보의 관계는 무엇인가, 생명이란 무엇인가, 의식의 본질은 무엇이고 뇌와 의식의 관계는 무엇인가 등등 이러한 질문들은 제기되는 방식은 달랐어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여전히 중요한 철학의 중심 화두다. 

21세기 첨단 과학 시대, 신경과학과 인지과학이 쏟아내는 인간 뇌에서의 의식 현상에 대한 새로운 탐구 성과들, 나노기술과 합성생물학을 바탕으로 한 생명체의 인위적 조작 및 창조 가능성, 인간과 도구의 관계 혹은 인간의 존재 방식이 던지는 질문에 대해 과학자와 철학자가 함께 대안을 찾아간다.

이 책은 최근에 쟁점이 된 과학·철학적 주제에 대해 관련 분야의 전문가인 과학자와 철학자가 대화하는 형태로 구성했다. 1부에서 4부까지는 공통의 주제에 대한 과학자와 철학자 각각의 글로 구성했다. 마지막 5부는 최근에 현대 과학과 동양철학 사이의 접점을 찾아 대화와 소통을 주도해 온 동양철학자들의 글로 구성했다.

1장에서는 뫼비우스의 띠를 모형으로 삼아 인간의 지성 안에 마련된 통합적 관념의 틀이 무엇이며 이를 통해 사유할 수 있는 우주와 인간의 진정한 모습은 과연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살펴본다. 2장에서는 조선 후기 서양 과학을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홍대용과 최한기의 이기론을 통해, 서양 과학의 수용이 조선에 이미 정착한 성리학의 핵심 개념들에 어떤 영향을 주었고,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를 살펴본다.

3장에서는 생명에 관련된 과학기술의 무한 질주를 분석하면서 이것이 던지는 질문들, 곧 생명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누구인가, 생명체와 물질의 경계는 어디인가, 인간과 도구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는가와 같은 생명체 및 인간의 정체성의 문제를 살펴본다. 4장에서는 몸의 과학과 몸의 철학을 연합하는 하나의 줄기를 구성하고자 한다. 이를 위한 중요한 화두로 몸의 공감성, 몸의 공존성, 몸의 자기 위치성, 몸의 가소성, 몸의 현상학을 강조한다.

5장에서는 의식과학 그 자체의 내용이 아니라, 의식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기에 생산적인 패러다임에 대해 논한다. 이를 위해 뇌과학에서 의식을 연구하기에 좋은 패러다임과 그 패러다임이 지녀야 할 중요한 기준에 대해 설명한다. 6장에서는 의식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철학과 뇌과학 간 대화와 협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그에 대한 방안을 제시한다.

7장에서는 물리학의 관점에서 정보의 의미를 깊이 있게 살펴본다. 그동안 물리학에서 물질을 중심에 놓고 정보를 진지하게 고려한 적이 별로 없음을 반성적으로 진단하고, 상호작용으로 생성되는 정보가 자연현상을 기술하고 이해하는 데 물질보다 오히려 중요할 수 있음을 제시한다. 8장에서는 구글 글래스와 애플의 아이패드가 인간의 삶에 깊이 침투한 의미를 분석하고, 도구가 더 이상 인간에 종속된 수단에 머물지 않는다는 하이데거의 인간-도구의 존재론을 강조한다.

9장에서는 현대 과학의 앎과 진실이 동양철학 연구의 틀과 방식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보고, 그런 맥락에서 현대 과학의 성과를 동양철학의 연구에 어떻게 전이하고 확장할 것인가를 다룬다. 10장에서는 철학 이론에 대한 하나의 가정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단칠정론이 왜 적절한 철학이론이 아닌지, 그리고 사단칠정론이 적절한 철학이론이 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다룬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