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의 길로 나아간 불학과 역학(易學)의 교섭과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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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의 길로 나아간 불학과 역학(易學)의 교섭과 충돌
  • 김대수 영남대·동양철학
  • 승인 2021.06.2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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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불교와 주역』 (하금화 지음, 정병석·김대수 옮김, 영남대학교출판부, 397쪽, 2021.05)

인류 문명의 건축물을 떠받치고 있는 철학의 주춧돌이 BC 5세기경 동서양 여기저기에 놓여졌다. 서양 사상의 원류에 해당하는 고대 그리스 사상과 동양 사상의 두 줄기에 해당하는 인도의 불교와 중국의 유학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출현했다는 것은 우연치고는 대단한 우연이다. 이것은 인류 문명도 개별 생명체처럼 탄생과 성장 그리고 소멸이라는 역사 발전의 수레바퀴로 함께 돌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들게 한다. 훗날 야스퍼스는 인류 지성에 근간을 이루는 토대를 구축했다는 의미에서 이를 주축시대Axis Age라고 명명하였다.

특히 불교와 유학은 동양철학을 구성하는 두 축으로서 우랄산맥의 동서를 분할하여 각각 인도와 중국에서 탄생하였고, 그 후 기타 지역으로 전래되어 국가의 통치 이념은 물론이고 일반인들의 일상생활에까지 깊이 침투하여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불교는 인도에서 남쪽으로 뻗어나가 남방불교를 형성하였고 동북아 쪽으로 흘러간 대승불교는 중국 고유의 문화와 만나 선불교라는 독자적인 불교를 탄생시켰다. 유학은 중국에서 비롯되어 한국과 일본 지역까지 포괄한 동북아 패권 사상으로 오랫동안 군림하였다. 특히 공자의 『역전易傳』은 『역경易經』을 읽는 관문 역할을 하였고 『역경』은 『시경』, 『서경』과 더불어 ‘삼경三經’의 반열에 올라 유학을 대표하는 경전이 되었다. 

주역의 근본 사상은 천도天道를 미루어 인사人事를 밝히는 것이다. 즉 인간은 자연을 본받고 자연의 법칙을 인간사에 반성적으로 적용하여 흉凶을 피하고 길吉로 나아가도록 하는 ‘우환의식憂患意識’을 담고 있는 책이 바로 『주역』이다. 불교의 가르침 또한 삶의 고해苦海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으려는, 말하자면 생의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한 해탈의 안식처에 이르는 길을 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불교와 주역은 비록 과정적 방법은 다르지만 추구하는 지향점은 모두 인간 실존의 불완전성과 미래에 대한 불안정성을 해소하고 삶을 살아가는 바른 길正道을 찾는데 있다.

불교와 주역은 모두 사상적 외연이 넓고 내포적 의미가 깊다. 특히 불교가 중국문화에 끼친 영향은 철학, 문학, 예술, 조각,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있으며, 주역 또한 유가역, 도가역, 불가역이 있을 정도로 여러 사상과 종파 속으로 파고든 흔적이 뚜렷하다. 서기 1세기경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어 토착 사상과 긴밀하게 교류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유학과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시대와 상황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면서 경쟁과 합류의 물줄기를 타고 이어져 내려왔다. 그 과정에서 수정과 변형은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융합과 통일은 또다른 변신을 위한 자구책이었다.

『불교와 주역』은 한마디로 불교와 주역의 상호 관계를 주요 사상가들과 그의 사상을 중심으로 다룬 연구서이다. 불교가 중국에 도래한 이래 중국 토착 사상과 때론 대결하고 때론 흡수하면서 어떻게 중국화의 길을 밟아갔는지, 또 불교가 토착 사상의 중심으로 파고들어 유학과 도가 사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체계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저자도 지적했듯이 불교와 주역 간의 상호관계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개척을 기다리는 분야이다. 불교와 유학과의 관계나 교섭을 다룬 기존 연구는 간혹 있지만, 불교와 주역에 대한 관계를 다룬 연구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 이유는 불교나 주역 모두 내용 자체가 어렵기도 하지만, 양 또한 상당하여 이를 전문적으로 다루기가 녹녹치 않기 때문이다. 많은 자료와 노력이 요구될 뿐만 아니라 인도와 중국 사상사를 관통하는 흐름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력智力도 있어야 가능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본 서 『불교와 주역』의 결과물은 의미있고 반가운 일이며, 필자가 상해불학원과 사회과학원에서 불교와 유학을 오랫동안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연구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 책은 특히 불교와 주역이 교류한 역사적 맥락을 따라 각종 사건들과 그 변천 과정을 조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된 인물의 사상적 편력遍歷까지도 구체적으로 소개하여 그 사상과 영향을 가감없이 포함시켰다. 또 중국 불교사의 발전과 이론의 연원 문제 등을 간략히 정리하였으며 전체 내용을 종적, 횡적으로 조감할 수 있는 이론 틀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며 맥락과 구도 속에 은닉되어 있는 의미를 온전히 드러내려고 시도한 노작勞作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불교의 각 종파와 시대적 흐름에서 각 종파가 주역과 어떻게 착종되고 자신들의 논리로 어떻게 녹여내는지에 상세히 검토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는 물론이고 쉽게 접할 수 없는 자료들을 대면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를 가중시킨다. 

『불교와 주역』의 구성은 5장으로 되어 있으며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장 <불교와 역학의 교섭>에서는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어 중국 전통 사상 중 주역과의 상호 교류의 영향을 시대별, 종파별로 다루고 있다. 불교가 중국에 처음 전래되어 전파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질적 토양에 뿌리내릴 수 있는 착종 과정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생소한 불교 사상과 개념을 현지인들에게 전하기 위해 그들이 익히 알고 있는 익숙한 용어와 개념을 차용하여 설명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행기의 현지화 과정을 ‘격의불교格義佛敎’라고 한다. 이 장은 격의불교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2장 <선학과 역학>에서는 유불도 삼교의 광범위한 교류를 다루고 있는데, 특히 선종에 큰 영향을 준 위백량魏伯陽의 『참동계参同契』, 선종 도상圖象으로 알려져 있는 진단陳摶의 『무극도無極圖』와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太極圖』에 관한 비교, 임제종 선사 혜홍각범慧洪覺範의 ‘십육자게十六字偈’, 우익藕益의 『주역선해周易禪解』 등을 다루고 있다.

3장 <화엄학과 역학>은 이통현, 징관, 규봉 종밀 등의 학자들이 주역과 화엄학을 비교분석하고 통섭하여 각각 자신의 독특한 이론을 전개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특히 이통현李通玄의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은 역학의 음양, 팔괘, 오행 등의 원리를 직접 운용하여 해석한 『화엄경』 주석에 있어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주역의 원리를 적용시켜 해석한 그의 화엄경론은 우리로 하여금 독특한 화엄의 세계로 인도할 것이다.  

4장 <밀교와 역학>은 밀교와 역학 간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중국 밀교는 인도 바라문을 흡수하고 중국 도교의 영향을 받았다. 밀교는 당 무종의 멸법滅法 사건과 오대의 전란을 거치면서 중국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사려져 갔지만, 그 흔적과 타 종파에 끼친 영향은 소홀히 다룰 수 없다. 

5장은 <유식과 역학>으로 불교는 기본적으로 모든 것은 마음을 떠나 존재할 수 없다는 유식사상에 입각하여 불교 교리를 설하고 있다. 마음은 모든 것을 인식하고 판단하여 나타내기 때문에 마음을 떠난 대상이 따로 없다는 것이 ‘유식무경唯識無境’으로 표현된다. 이 짧은 어구 속에 유식학의 종지가 녹아있다. 이 장에서는 유식학이 중국에 전래되어 역학과 융합, 착종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으며, 유식학과 역학의 통섭을 가장 성공적으로 보여준 인물이 장태염章太炎과 웅십력熊十力이다. 이 장은 이들의 학설과 이론을 중국 근대 격동기라는 시대 상황에 맞춰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편제에서 보듯이 이 책은 불교와 역학에 관한 연구이지만, 불교와 주역의 상호 교섭과 영향을 시대별, 주제별로 매우 전문적이며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다. 불교와 주역의 만남은 단순한 조우가 아니라 인도와 중국이라는 매우 이질적인 거대 문명의 만남이요, 매우 독특한 사상 체계의 만남이다. 독자들은 이 『불교와 주역』을 통해 이 두 거대 문명의 충돌과 이 두 문명에 내재된 사상이 만나 서로 녹이고 녹아드는 역동적 파노라마를 목격하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김대수 영남대·동양철학

계명대학교 영문과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대학원 통합과정을 수료하고 영남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영남대 철학과 겸임교수로 있다. 오늘날 사회에서 동양적 가치는 무엇이며, 현대적 시각에서 동양철학의 여러 문제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이 분야에 연구와 글쓰기를 집중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동양철학의 인식과 실재』,『웅십력의 체용론』,『언어와 세계 간의 역설 구조』, 『서세동점 위기 속에서 근대유학의 환골탈태』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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