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적 인간’으로 쓰기, 그리고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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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적 인간’으로 쓰기, 그리고 살기
  • 이명원·경희대 교수/문학평론가
  • 승인 2020.01.1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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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원의 에크리티시즘]

연말과 연초에 읽은 책 가운데 크게 내 마음을 움직인 것은 문학평론가 고영직의 『인문적 인간』(삶창, 2019)이었다. 이 책의 저자와 나는 20여 년 이상의 사적·공적 인연을 갖고 있다. 동시에 문학비평과 실천인문학의 현장에서 함께 고민하고 협동했던 경험도 있으며, 그것은 지금 현재도 마찬가지다.

평론가 고영직은 1992년 <한길문학>으로 등단했다. 내가 평론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 1993년이었으니 비슷한 시기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내가 고영직을 알게 된 것은 2000년대 초반, 그러니까 내가 동료들과 함께 <비평과전망>이라는 무크지로 출발해 이후 반년간지로 전환했던 비평전문지를 출간한 직후였다.

대개의 평론가들이 그렇듯, 나는 2000년대 중반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대학에 취직하는 경로를 거쳤다. 반면 고영직은 등단 이전부터 문학·문화판의 ‘현장’에서 강의·섭외·기획·출판을 통한 문학/문화 운동을 지속해왔다. 한국문학학교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경기문화재단과 같은 민간·공공기관에서, 문학과 문화예술의 시민적 확산의 문제에 개입해 왔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비평적 작업을 지속해왔는데, 그동안 평론집이나 저서를 단 한 권도 출간하지 않는 것은 내게 매우 기묘하게 느껴졌다. 

인간 고영직의 면모는 ‘다독’으로 특징된다. 그는 누구를 만나든 언제나 최근에 읽은 책들, 혹은 지금 읽고 있는 책들을 거론하거나 눈앞에 보여주면서, 에피그램 같은 문장들을 뽑아내 음미하는 것을 즐긴다. 가령 『인문적 인간』의 서문에서 그는 “호랑이의 줄무늬는 몸 밖에 있고 사람의 줄무늬는 몸 안에 있다.”는 라다크 지역의 속담을 거론하는데, 이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에서 발견한 것이다. 인문(人文/人紋)이라는 동음이의어의 표현을 통해, 그는 인문적 인간으로 사는 일이란 다만 인문학적 탐구를 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무늬, 사람다운 문양을 삶 전체 속에 유연하게 새겨나가는 일임을 존재론적인 시선에서 표현하고 있다.

심포지엄의 어원이 향연(饗宴)이었던 데서 알 수 있듯, 책읽기와 글쓰기는 고요의 장소를 요구하지만, 그것의 사회적 확산은 대화적인 장소 안에서의 교류와 우정을 요구한다고 고영직은 생각한다. 그가 읽은 책들은 그가 만나는 우정 어린 이들과의 대화 속에서, 단독적인 것이 아니라 대화적인 유대감의 연결망 같은 역할을 하면서, 단순한 하나의 문장에서 피어나는 여러 사유의 단서들을 여러 뜻밖의 서사들로 자전거 체인처럼 연결시킨다. 이 서사화된 말하기 방식은 소설로 치자면, 하나의 플롯을 구성하는 일에 해당할 텐데, 이런 방식으로 책과 사람과 현실을 겹쳐 읽고 나눠 읽고 깊이 읽는 작업을 일상 속에서 진행하고 있는 것이 ‘인문적 인간’으로서의 가감 없는 고영직의 면모인 것이다.

고영직이 가장 혐오하는 책읽기의 방식은 요약적이거나 매뉴얼화된 방식으로 지적 유행을 추수하는 행위다. 통섭이 유행하면 모두가 그것을 말하고,  인공지능이 이슈화되면 다시 모두가 그것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한다. 주체적인 읽고 쓰기처럼 보이는 것 안에도, 지적 패션에 불과한 대중추수 현상은 얼마간 숨어있을 수 있다. 경계할 가치가 있는 지적이다.

『인문적 인간』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느꼈던 것은 그가 ‘마음의 관료주의’라는 표현을 통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사람의 성격을 비판적으로 질문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역사상 가장 나쁜 관료주의적 인간유형으로 고영직은 아이히만이라는 인물을 상기한다. 나치의 법률과 유태인 절멸수용소장으로서의 관료적 의무에 다만 충성했던 차가운 인간. 그러나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타자에 대한 공감능력과 보편윤리는 마비되어있던 인물.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완전한 무(/불)감각을 보여주었던 한 인간형. 눈물도 없고 마음의 그늘도 사라진, 흡사 전두엽이 기능부전 상태로 쇠퇴한 듯한 마음의 관료주의.

극단적인 사례이기는 해도 이것이 다만 아이히만만이 문제이겠는가. 1997년 이후 한국인들이 경험해 오고 있는 세계는 ‘타인의 고통’을 응시하는 대신, 이 응시를 회피하라는 명령이 체계적으로 구조화된 일상이 아닐까, 하는 것이 고영직의 반문이다. 타인의 고통을 응시하기 위해서는 자기 안의 고통 역시 적극적으로 응시하면서, 마음의 그늘에 깃들어 있는 삶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성찰하고 음미하는 일이 필요하다.

▲ 문학을 넘어 인문학교육과 예술운동의 영역에 까지 걸쳐 활동을 하고 있는 고영직 문화평론가
▲ 문학을 넘어 인문학교육과 예술운동의 영역에 까지 걸쳐 활동을 하고 있는 고영직 문화평론가

그러나 오늘의 시대에서 권유되는 것은 고통의 응시가 아니라, 그것의 빠른 제거가 아닐까? 일본의 윤리학자인 모리오카 마사히로(森岡正博)는 현대를 무통화(無痛化) 기제로 충만한 세계, 즉 무통문명(無痛文明)이라는 표현을 통해, 이러한 구조화된 세태를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고통 없는 문명은 유토피아일까? 그렇게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인간은 고통 속에서 성숙하고 그것을 통해 삶의 의미를 천착해 나간다.

고영직이 말하는 마음의 관료주의란 구조화된 사회적 고통이 충만한 상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간주해 눈을 감고, 타인의 고통을 감각할 수 없거나 그것에 공명하는 것을 거부하는 공감능력의 마비상태를 비판할 때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고영직이 시와 예술을 강조하는 것은 이것이야말로 인류가 타인의 고통에 공명하는 능력을 가장 섬세하게 벼려온 문화적·제도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시와 예술은 마음의 가장 섬세한 파문을 감각적·공감적으로 표현하면서, 그것의 수용과 확산을 통해서 한 시대의 사회적 고통을 표현하고 반영한다. 이를 통해서, 고통의 즉각적인 제거 대신 그것의 인간화된 극복의 의지와 방법의 필요성을 심미적으로 역설하는 것이다.

『인문적 인간』에서 독자들이 가장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은 이른바 실천인문학의 현장에서 그가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기록일 것이다. 시와 예술을 매개로 고영직은 북한이탈주민, 노숙인, 구치소·교도소의 수용자들, 저소득 자활노동자를 포함한 소수자들과 대중들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과정에 강사로 참여해 왔다. 고영직이 만났던 사람들은 대개 이런저런 사회적 압력에 포위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유대감의 상실, 자존감의 상실과 무력감 등은 특히 우리 시대의 배제된 소수들에게서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삶의 조건이다.

이런 이들 속에서 시와 예술을 통해 삶의 존엄과 딱딱하게 굳어진 마음을 풀어 작은 희망의 근거들을 복원하기 위해 고영직은 애썼다. 그는 이러한 인문적 실천이 굳어가고 죽어가는 마음의 활기를 복원하는 마음생태학이라고 말한다. ‘힐링’이라는 표현을 통해 상업적으로 번성하고 있는 가짜 위로가 범람하는 현실에서, 시와 예술을 통한 타자되기의 체험이야말로 중요하다고 고영직은 말한다. 백무산의 시적 표현처럼 “재난은 대부분 없는 사람들 차지”인 현실에서, 이 “없는 사람”을 친구로 환대하는 체험이야말로 진정한 ‘힐링의 공공성’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 낮은 자리에서의 ‘인문적 인간’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것일까. 십 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나는 그의 고향인 군산에 문학기행을 갔다가, 일행들과 빠져나와 그와 함께 어두운 거리를 터벅터벅 걸어, 오래된 한 아동보호시설의 담장 앞에 한동안 침묵 속에 서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는 그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나에게 조용히 말했다. 그는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는 신경림의 시구를 그가 즐겨 인용한다. 인문적 인간이란 단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을 의미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명원·경희대 교수/문학평론가

현재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성균관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최일수 문학비평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9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이후 문학평론가로 활동해왔다. <비평과전망> <내일을여는작가> <실천문학>의 주간을 역임했다. 지은 책에 <타는 혀>, <해독>, <파문>, <연옥에서 고고학자처럼>, <종언 이후>, <시장권력과 인문정신>, <두섬: 저항의 양극, 한국과 오키나와> 등이 있다. 상상비평상, 성균문학상, 한국출판문화상(저술 부문)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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