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주의의 두 가지 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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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주의의 두 가지 원천
  • 민경국 논설고문/강원대 명예교수·경제철학
  • 승인 2021.05.30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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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국 칼럼]

문재인 정권의 국정철학은 ‘나의 삶을 책임지는 국가’다. 일자리·소득·건강·노후 대책, 그리고 자녀 보육·교육, 주택 등 나의 삶에 필요한 것을 책임지는 국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가격·임대료, 기업·환경규제와 재분배, 보조금 등은 그런 야심에서 비롯된 정책이다.

흥미로운 건 그런 국가의 존재 이유다. 이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이론은 온정주의(paternalism) 국가론이다. 이에 따르면 개인을 혼자 내버려 두면, 합리적 삶을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엘리트로서 국가의 온정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다. 먹방(먹는 방송) 규제, 비만세(肥滿稅)처럼 스스로 건강도 돌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백성과 민초를 대신해서 국가가 강제로 그들의 건강을 돌봐야 한다는 온정주의 태도가 국가개입을 정당화한다. 

실업·연금·건강 문제와 같이 미래에 생겨날 문제를 경시하는 성향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자발적인 보험은 기대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국가에 의한 강제보험은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온정적 국가주의의 극치는 “임대주택도 내 집과 같으니,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는 여권 정치인의 발언이다. 

온정주의는 통치자의 가치관이나 선호를 시민들이 따르도록 하는 강제를 특징으로 한다. 온정주의는 자유와 자율의 유린이다. 국가의 온정에 따른 자유의 강제적 반납을 우려했던 건 주지하다시피 존 로크, 이마누엘 칸트, 알렉산더 폰 훔볼트, 루트비히 폰 미제스, 로버트 노직 등의 합리주의와 그리고 데이비드 흄, 애덤 스미스, 알렉시스 토크빌,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등의 경험주의를 기반으로 개인의 자유의 갈파했던 계몽사상이다. 

온정주의 국가는 시민들이 노예가 되기가 싫음에도, 강제로 그들을 노예로 만든다. 그러나 586세대나 ‘대깨문’처럼 국가의 노예가 되고 싶어서 스스로 노예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백신 거지라도 문재인 보유국이라 괜찮아”라고 말하는 친문 세력이다. 국가에 자발적으로 의지하는 태도는 흔히 공포심에서 나온다. 예를 들면, 거대한 시장사회에서는 일자리, 소득, 건강, 노후를 나 대신에 걱정하는 그 어떤 사람도 없다. 낯설고 믿을 수 없는 ‘그들’만이 있을 뿐, 나를 책임져줄 ‘우리’가 없다. 

어버이 품에서 떨어진 어린아이처럼 사람들은 시장사회에 대한 공포에 떤다. 자유·책임·독립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이유다. 언제 어디에서 감염될지 모르고 백신 개발도 요원한 코로나바이러스도 매우 두렵다. 공포가 만연할 때 인간은 본능적으로 의지할 것을 찾는다. 한때는 신(神)을 찾아 의지했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니체 이후 신은 죽었다. 신을 대신할 초인(超人)이 필요하다. 그게 어버이 같은 정치 권력이다. 문재인 정부의 ‘나의 삶을 책임지는 국가’가 인기 있는 구호인 이유다. 안정된 삶을 보장해주기만 하면 나의 자유는 희생돼도 좋다. 

국가권력에 복종함으로써 위안을 얻는다. 예속이 독립보다 좋다. 이게 노예근성이다. 국가의 존재를 어버이처럼 나를 돌봐줄 대상을 국가에서 찾는 어버이주의(parentalism)로 정당화한다. 

어버이주의는 시민들이 자신을 대신해 필요한 것을 정부가 해주기를 바라는, 국가에 의존하고 싶어 하는 태도다. 시민들은 자신을 대신해서 국가가 선택하고 책임져주기 바란다. 이에 반하여 온정주의는 민초나 백성은 삶에 대한 확실한 가치관 또는 선호를 가질 수 없거나 설사 가지고 있다고 해도 불합리하기 때문에 국가, 구체적으로 말하면, 통치자가 자신의 가치관이나 선호를 강제로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정주의는 엘리트적 태도다. 국가의 지지 태도에서 온정주의는 하향식인 반면 어버이주의는 상향식이다. 후자는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강제가 불필요하다.  

그러나 국가의 온정주의는 시민의 어버이주의 태도를 야기한다. 온정에서 비롯된 모든 공공정책은 독립·자율적인 인간을 국가에 의존적으로 만들어 정치로부터 먹을 것을 얻는 노예근성을 부추긴다. 과거 독일과 스웨덴 등 유럽의 복지국가가 입증하듯이, 국가의 온정에서 우러나온 복지 확대는 일하기 싫어하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질 줄 모르는 국가 의존적 복지병을 불러왔다. 현 정권이 빚을 내서라도 현금 퍼주기에 몰두하는 이유도 자유를 두려워하는 어버이주의를 강화하려는 것이다.

규제를 풀어 청년 실업자를 줄이는 자유의 정책 대신 현금 뿌리기, 주택공급 증대 대신 수요 억제 정책을 펴는 것도 국가 의존적 인간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제대할 청년에 대한 3,000만 원의 사회출발자금지원(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청년에 세계여행비 1,000만 원 지원’(이재명 경기지사) 등 빚을 얻어서까지 정부가 뿌리는 돈은 국가의 의존적 인간을 만들 뿐이다. 정책 실패를 전임 정부 탓으로 돌리는 홍보도 자유·책임과 자립심을 중시하는 시장 대신 국가권력에 순종하는 인간을 만들기 위한 전략이다. 

가장 악독한 사회주의 정책은 궁핍화 정책이다. 모든 사람의 삶을 개선하면 국가에 대한 의존심이 약화되어 자율적인 심성을 강화한다는 이유에서 인간을 궁핍하게 만든다. 현재 문재인 정권이 펼치는 소득 주도 정책과 주택정책을 비롯하여 규제정책은 실업자의 양산, 빈곤층의 확대, 그리고 분배의 악화를 부른다. 궁핍화 정책은 원래 자유와 자립을 중시하던 인간을 국가에 의존하는 노예근성을 지닌 인간으로 만든다. 국가권력에의 예속에서 얻는 환희를 현란하게 기술한 게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던가! 그런 도피의 치명적 결과는 독일 히틀러의 나치즘,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사회주의’ 등 문명을 파괴한 전체주의다. 

그러나 노예의 삶에서 쾌락을 얻는 인간, 자유가 없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 야만적인 짐승에 지나지 않는다. 자유롭게 행동하는 자만이 의사결정을 할 수 있고, 진정한 의미의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를 함부로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민경국 논설고문/강원대 명예교수·경제철학

서울대학교 문리대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 경제학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강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같은 대학 경제학과 명예교수이다. 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과 제도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사)자유주의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하이에크, 자유의 길』, 『국가란 무엇인가: 자유주의 국가철학』, 『자유주의의 도덕관과 법사상』,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시장경제의 법과 질서』, 『하이에크 자유주의 사상 연구』, 『경제사상사 여행』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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