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은 신과 존재에 이르는 상징 언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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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은 신과 존재에 이르는 상징 언어이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1.05.10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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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사의 신학: 초기 기독교 미술부터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까지 | 신사빈 지음 | W미디어 | 266쪽

이 책은 ‘신학’과 ‘미술’ 두 학문을 결합시켜 쓴 기독교 미술 저서로 서양미술사를 기독교 관점에서 재해석한 책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자(使者)의 신 헤르메스(Hermes)와 어원을 같이하는 해석학(Hermaneutics)은 ‘경계’의 학문이다. 헤르메스 신이 올림포스의 신들과 인간 사이를 오가며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했듯이, 해석학 역시 상징 안에 내재하는 신의 뜻을 밝혀 사람들에게 전달해주는 중재의 학문이다.

이제까지 신학은 진(眞)과 선(善)을 통해서만 사유해왔다. 그러나 신은 인간에게 참됨과 선함뿐만 아니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자질도 선물했다. 그래서 아름다움이 부재하는 신학은 온전하지 못하다. 문제는 아름다움을 향유하며 신과 존재에 이르는 방법을 찾는 것인데, 그것이 미술작품의 해석이다.

상징 언어로서 미술작품을 해석하는 동안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끼고 향유하면서 신과 존재를 사유하게 된다. 하나의 미술작품을 해석하는 지평이 넓고 두터워질 때 신학과 미술의 지평에 융합이 일어나고, 이를 통해 신학은 미(美)를 회복하고, 미술은 좀 더 깊은 종교적 해석의 가능성으로 문을 열 것이다.

미술은 이론이 아닌 ‘실존’의 매개이다. 일상의 분주함 가운데 망각하고 있던 ‘나는 누구’이며,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와 같은 실존적 물음 앞에서 미술은 아름다움을 향유하면서 그 답을 찾아가는 매개가 되어줄 것이다. 그 과정이 미술을 통한 신학적 사유의 길이고, 아름다움을 향유하며 신과 존재에 이르는 길이다.

따라서 미술작품을 해석하는 행위는 신학을 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해석을 하면 할수록 상징 안에 내재하는 신적 세계의 깊이에 더 다가가고, 우리는 저쪽에서 오는 진리의 빛과 만나게 된다.

저자는 서양미술사의 큰 분기점에는 반드시 기독교 종교가 있었다고 말한다. 기독교의 역사는 출애굽기 20장에 명시된 “성상 금지”와 “우상숭배 금지” 율법에 근거해 시각미술과 항상 불편한 관계를 지녀왔다. 중세시대에 120년간 지속되었던 ‘성상 논쟁(이코노클라즘)’과 1517년 일어난 종교개혁의 ‘성상파괴 운동’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시각미술에 대한 인식에 있어 구약의 유대교와는 달라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되었으며, 무한하고 영원한 신이 유한한 시간의 세상 속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사건 이후 세상은 더 이상 이전의 세상이 아니다. 구약의 유대교가 ‘듣는 것(Sh'ma Yisrael)’을 강조했다면, 신약의 기독교는 ‘보는 것(Ecce Agnus Dei)’을 강조한다. 기독교에서 보이는 세상을 통해 하나님과 관계하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러한 문맥에서 미술은 기독교 신학이 배제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신학하는 한 방법으로 수용해야 하는 대상이다.

미술은 ‘보는’ 감각을 충족시키며 신과 존재에 이르는 상징 언어이다. 미술작품을 ‘봄’으로써 신을 사유하는 길은 작품의 ‘해석’이다. 그 해석 과정을 통해 ‘보는’ 미술은 신학적 사유로 연결된다. 기독교 신학은 초기부터 하나님을 진(眞), 선(善), 미(美)의 근원자라고 보았다. 이로부터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에 따라 창조된 인간에게는 진, 선, 미를 골고루 내면화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미(美)는 인간이 신과 관계하는 하나의 ‘길’이다. 아름다움을 가시화한 미술작품을 ‘해석’하며 우리는 신의 아름다움을 내면화하고, 신 앞에서 점차 나은 인간으로 되어갈 수 있다. 보수신학은 여전히 시각미술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지만, 아름다움이 하나님과 관계하는 길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또한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으로 인간의 ‘보는’ 감각이 중요해진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시각미술은 이러한 문맥에서 기독교 신학이 수용해야 하는 예술 매체이자 신학의 한 방법이다. 특히 종교개혁 이후 진(眞)과 선(善)의 건조한 신학을 고수해온 프로테스탄트 신학은 종교개혁의 정신을 유지하며 가톨릭과 차별되는 방법론을 찾는 데에 더욱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집필된 책이다. 학문적 이론을 증명하기보다는 미술을 통해서도 신학적 사유를 하고 신과 존재에 이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시(例示)와도 같다. 신학과 교회가 미술을 통해 아름다움을 회복해갈 때, 현재 한국 개신교 교회가 안고 있는 왜곡되고 편향된 모습도 전인적-인문학적 교육의 차원에서 서서히 치유되어갈 것이라고 저자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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