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생태계의 ‘상생 공급률’을 실현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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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생태계의 ‘상생 공급률’을 실현하려면
  • 백원근 서평위원/책과사회연구소 대표·출판평론가
  • 승인 2021.05.10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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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타스]
대한출판문화협회 주최로 7일 서울 종로구 출협 4층 대강당에서 열린 유통 현안 좌담회 '도서 공급률 이대로 좋은가?'에서 참석자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제공]

국내 출판계 최대 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가 5월 7일 <도서 공급률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출판유통 현안에 관한 공개 좌담회를 열었다. 소수의 대형 출판사와 인터넷서점은 지속 성장하고, 대다수 중소 출판사와 소형 서점들은 경영난을 면치 못하며 양극화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공생을 위한 유통구조 개선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공급률’은 출판사가 유통사나 서점에 출고하는 도서 정가 대비 공급가의 비율을 뜻한다. 예를 들어 1만 원짜리 책의 공급률이 65%라면 출판사가 6,500원에 공급하여 서점 마진율이 35%가 된다는 뜻이다. 지난해 도서정가제 개정 논란이 사회적 관심사로 부각될 때도 항상 함께 이야기되던 것이 공급률 문제였다. 도서정가제 정착과 더불어 공급률이 인터넷서점 수준으로 하향 조정되어야만(서점의 유통 마진이 커져야만) 오프라인 서점도 생존할 수 있다는 주장이 강했다.  

도서 판매에서의 법정 할인 한도 축소와 도서정가제 적용 범위의 확대를 골자로 2014년 11월부터 개정 시행 중인 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 의해, 기존에 비해 소비자 판매 할인율은 대폭 축소된 반면 출판사의 서점 공급률은 대부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에 따라 출판시장의 불황 심화 추세 속에서도 온·오프라인 대형서점의 이익률은 오히려 좋아졌으나, 대다수 출판사 및 중소서점은 대형 서점들이 주도하는 공급률 결정 구조에 따라 정가제 강화와 할인율 축소라는 도서가격제도 변화가 경영환경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온·오프라인 대형서점에 집중된 과점적 이윤 구조를 ‘상생 공급률’로 개선함으로써 도서 공급자인 출판사의 경영 안정화와 도서 정가 인하로 이어지도록 책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았다. 

하지만 도서 공급률은 철저하게 거래 당사자 간의 역학관계, 특히 ‘유통 갑’의 의사를 따를 수밖에 없다. 공급률은 출판 분야, 거래 물량, 거래 조건 등의 다양한 변수를 반영한 사적 계약으로 체결되어 왔다. 대중적인 판매량이 기대되는 교양서(예를 들어 65%)에 비해 판매량이 적은 학술서의 공급률은 높고(예를 들어 80%), 반품이 허용되는 위탁 거래보다는 현매(현금 구매) 거래의 공급률이 더 낮은 식이다. 그런데 소수의 대형 유통사와 다수의 소형 출판사 간의 유통 이익률 분배를 둘러싼 공급률 조정 문제는 개별 사업자 사이의 힘의 불균형으로 인해 개선이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힘이 강한 유통 주체가 자신에게 유리한 마진율을 포기하고 상대의 마진율을 키우는 선의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공급률은 출판사, 유통사, 서점 모두에게 필사적으로 중요하다. 이를테면, 동일한 정가와 판매량의 도서라 해도 단 1%의 공급률 변동에 따라 출판사의 매출액과 이익률이 크게 달라진다. 단행본 도서의 평균 발행 부수가 약 2천 부 수준임을 감안하면 1%의 공급률 인상은 전체적으로 해당 도서 판매량이 약 20부 증가하는 것에 필적한다. 공급률을 5% 인상한다면 2천 부의 발행 부수를 기준으로 약 100부의 추가 판매 효과와 같다. 

문제는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소형 출판사와 소형 오프라인 서점들이 생존 가능한 ‘상생 공급률’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있다. 신생 출판사나 소형 출판사들은 대형 출판사에 비해 상당히 낮은 공급률로 인터넷서점에 공급할 수밖에 없다. 대형 인터넷서점의 공급률이나 거래 조건은 영업비밀에 해당할 만큼 출판사의 매출 규모에 따라 차별적이다. 대형 오프라인 서점이 출판사에서 공급받는 가격과 소형 서점들이 출판사 또는 유통사(도매상)에서 공급받는 가격에도 큰 차이가 있다. 공급률을 정하는 거래 주체가 자기 이익과 거래 물량에 따라 거래 상대방을 차별하는 것을 공정거래가 아니라고 비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책에 대해 부가세를 면세해주고 도서정가제를 적용할 만큼 공공재로 취급하는 상황에서 공급률 표준화와 차별 금지를 논의하는 것은 거래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독일의 경우 오래전부터 출판사의 공급률 차별 금지 및 최저 공급률 이상의 거래 의무를 법제화하여 시행 중이다.  
   
일부 대형 인터넷서점의 과도하고 약탈적인 도서 공급률을 제어함으로써 영세 중소 출판사의 출판 활동을 보호하고 적정 수준의 합리적인 거래 관행을 정립해야 한다. 거래 물량이 많고 할인을 하기 때문에 오프라인 서점보다 낮은 가격에 책을 공급받아야 한다는 인터넷서점들의 논리는 공정하지 않다. 출판시장의 공정 경쟁 여건을 만들려면 힘이 약한 지역 서점에도 동일한 공급률을 적용해야 한다. 

공급률 개선을 논의하는 출판계의 공개 좌담회 자리에는 정작 유통 강자들이 모두 빠졌다. 공허한 논의가 될 수밖에 없다. 중요한 정책 사안이므로 정부와 정책기관(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도 함께 나서야 한다. 출판유통의 주체이자 공급률을 정하는 핵심 당사자인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들이 반드시 참여하는 논의 구조를 만들고, 출판시장 전체의 질서를 재구조화하기 위해 출판단체들이 주도하는 협의체를 통해 합리적인 도서 공급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 출판단체들은 도서 공급자(출판사)의 권한을 한데 모아 소형 출판사들과 소형 서점들이 공존 가능한 ‘상생 공급률’을 현실화시켜야 한다. 출판유통의 강자 독식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 


백원근 서평위원/책과사회연구소 대표·출판평론가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로 한국출판학회 출판정책연구회장, 일본출판학회 정회원이다. 대학에서 출판문화론 등을 강의한다.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 문화체육관광부 규제개혁위원, 서울도서관 네트워크 위원장, 경기도 지역서점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한국출판산업사』를 썼고, 옮긴 책으로 『서점은 죽지 않는다』, 『우리 시대의 책』, 『책의 소리를 들어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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