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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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 승인 2021.04.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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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명의 생활 에세이]

내가 교수가 된 시절은 1980년대 중반 전두환 정권이 막 끝나려 하고 민주화 투쟁이 무르익어 가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엄청 나이 많은 사람 같은데 매우 젊은 나이에 교수 된 점을 감안해주시기 바란다.) 그때 운동권의 활약과 기세가 대단하였다. 그 운동권 사람들이 뒤에 진보정권들이 들어서자 386세대가 되었고 586세대가 되었다. 이들을 통칭 민주화 세력이라고 하는데, 요즘 들어 이들이 정말 민주주의자들인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당연한 일이다. 그들이 군사독재에 대항해 싸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지향한 사회는 민주주의보다는 민중주의, 사회주의, 심지어 주체사상 사회였기 때문이다. 민주화 주역이었던 그들이 사실은 민주주의를 지향하거나 체화한 것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들은 막연히 인민(민중)이 주인이 되는 사회를 지향하였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이 없다 보니 때로는 레닌, 때로는 마오쩌둥, 또 때로는 김일성의 사회를 모방하고자 하였다. 대한민국에서 그런 꿈이 실현될 리 없으니 이후 수립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적응하기는 하였지만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민주주의자가 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이런 점은 이들과 사상적인 대척점에 서는 시장주의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이 지향하는 가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시장 활동의 자유이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를 ‘부르주아’ 민주주의 또는 ‘절차적’ 민주주의로 폄하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많은 학자들이 이에 동참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요체는 절차이고 그 절차 자체가 실질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체제를 절차일 뿐이라고 폄하하는 사람은 민주주의자가 아니다. 실질적 민주주의론자들은 무엇인지 모를 막연한 ‘인민 지배’ 체제를 지향하면서 민주적 법과 절차를 경시한다. 이루어야 할 목적을 위해서는 절차쯤은 무시해도 된다는 발상이다. 그러나 인류 사회의 많은 폭압과 불공정이 바로 이런 비민주적인 발상에서 나온다. 인민 지배는 민주주의의 목표이다. 그러나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수의 사람들이 합의하는 절차를 따라야 한다. 아니, 다수가 합의하는 그  절차 자체가 인민 지배이다. 그것이 민주주의이다. 그 합의가 공산주의 사회를 이루는 것일 수도 있고 자본주의 사회를 이루는 것일 수도 있다. 그 합의가 북한과 통일하는 것일 수도 있고 북한을 고립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민주적으로 합의했으면 그것이 민주주의이다. 이런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운동권이든 학자든 평론가든 너무 많은 것 같다. 그들은 민주주의가 진정으로 무엇인지 모르고 자신이 지향하는 세계가 민주 세계라고 착각한다. 
    
1980~90년대에 대학가는 시위로 몸살을 앓았다. 전두환 물러나라고 총장실을 점거하고 대학 본부 유리창을 깨기도 했다. 아니 총장실 점거한다고 전두환이 물러나나? 내 연구실 건물을 학생들이 점거하고 못 들어가게 하여 경비 보는 학생에게 비굴하게 “컴퓨터 좀 꺼내올게” 했더니 넣어 주더라, 그래도 착한 학생이네. 학교 유리창들을 박살 낸 학생회장과 간부들은 시간이 좀 지나자 교수 연구실들을 돌면서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였다. 내가 미심쩍어서 정말로 미안하냐고 물었더니 “네” 하면서 조아리더라. 그래도 착한 학생들이었다. 내심 반항적인 자세를 기대했는데... 그 운동권 학생들 중 상당수는 보수로 전향하고 상당수는 생업으로 돌아가고 나머지 상당수가 남아 정치권과 시민운동권으로 진출하여 386, 586이 되었다. 486일 때는 이명박, 박근혜 집권기여서 빛을 못 보았다.

지금 우리 사회와 정치에서 벌어지는 많은 갈등들이 이들의 이러한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자기 가치나 이념에 대한 과도한 신념과 절차에 대한 경시가 사회 갈등을 유발하고 타협 정치를 어렵게 한다. 그러나 어쨌든 한국에 민주 제도는 정착되었으므로 민주화나 민주주의는 더 이상 주요 쟁점이 아니게 되었고, 여기에 공정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회차에 쓰도록 한다.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명예교수로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한글문화연대 대표 등을 지냈으며, 한국정치학회 학술상, 외솔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 『담론에서 실천으로: 한국적 정치학의 모색』, 『단일 사회 한국: 그 빛과 그림자』,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 한국 불교, 이것이 문제다』, 『대한민국 정치사』, 『한국 정치의 성격』, 『정치란 무엇인가: 김영명 교수가 들려주는 정치 이야기』 등 다수가 있다. 최근 수필집 『봄날은 간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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