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원천은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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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원천은 역사이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1.04.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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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햄릿이냐 헤쿠바냐: 극 속으로 침투한 시대 | 칼 슈미트 지음 | 김민혜 옮김 | 문학동네 | 112쪽

20세기의 가장 논쟁적인 사상가 카를 슈미트가 1956년에 발표한 대표적인 문예비평서이다. ‘주권자는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 ‘주권자의 결단이 법질서의 원천’이라 주장한 슈미트는 왜 만년에 이르러 ‘햄릿’에 주목하며 ‘비극의 원천은 역사’라고 단언했는가? 이 책은 스스로 밝힌 대로 슈미트 자신의 내면적 고백이자, 그의 사상에 접근하는 흥미로운 우회로이다. 

이 책에서 슈미트는 문학작품(예술)을 역사적 현실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며 ‘햄릿’을 현대의 신화적 인물로 내세운다. 그는 이 책 출간 이후 논란이 일자 「내가 대체 무슨 일을 벌인 것인가」(1957)라는 글을 발표하고, 여기서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햄릿』에 관한 나의 소책자는 무엇을 목표로 하거나 의도적으로 계획된 것이 아니다. ……그저 내 생각의 내면적 의미에 충실할 뿐.”

이 책은 일차적으로 햄릿을 경유한 슈미트의 자기고백이자 과거 행적에 대한 은밀한 자기정당화로 볼 수도 있지만, 2차 대전 후 모든 공적 활동을 금지당하고 고향에 칩거한 상태에서 ‘주권’과 ‘정치적 현실’에 대한 자신의 사상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저술로도 읽힌다. 

슈미트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이라는 비극이 현대의 신화로까지 자리매김한 까닭은 이 작품이 극적 유희(비애극)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극 속으로 침투한 시대적 현실을 절묘한 극적 장치로 담아내어 현실이 비극에 개입하는 구조를 재현해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에 따르면,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은 비극적 사건을 창작했다는 데 있지 않다. 작가는 비극적 사건을 창작해낼 수 없다. 비극적 사건은 역사적 현실이 제공한다. 위대한 작가는 비극의 핵심을 파악해 비극적 사건(정치적 현실) 가운데서 신화로 승격될 만한 구조적 유형을 추출해낸다.

『햄릿』 2막 2장에서 배우가 헤쿠바(그리스어로는 ‘헤카베’. 트로이전쟁 때 남편과 자식들을 모두 잃은 트로이의 왕비)에게 감정이입해 눈물을 흘리자, 햄릿은 이렇게 말한다. “이 배우의 눈에서는 무슨 이유로 눈물이 흐르는가? 그저 헤쿠바 때문이라고! 헤쿠바가 대체 그에게 무엇이고 그가 헤쿠바에게 무슨 존재라고?”

슈미트가 볼 때, 그리스 신화의 비극적 인물 헤쿠바는 아무리 관객을 눈물짓게 할지라도 연극적 유희에 머문다. 유희는 근본적으로 비상사태(예외상태)의 반대를 의미한다. “유희가 시작되는 곳에서 비극적인 것은 중단된다.” 반면에 햄릿은 진정한 비극적 인물이다. “유희로도 가려질 수 없는 비극적 요소”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슈미트의 표현을 돌려 말하자면, 햄릿의 경우 유희가 중단되는 곳에서 비극이 시작된다.

햄릿은 셰익스피어 당대에 잉글랜드 왕위에 오르는 제임스1세의 연극적 가면이다. 햄릿이라는 인물은 가공의 덴마크 왕국 왕자이기 이전에 런던에 실존하던 인물의 그림자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카를 슈미트는 자신의 딸 아니마가 독일어로 번역한 영국 문학사가 릴리언 윈스탠리의 저서 『햄릿과 스코틀랜드의 승계문제』를 긴요하게 참고한다.

이 책의 부제이기도 한 ‘극 속으로 침투한 시대’는 『햄릿』에 내재된 비극적 요소의 핵심이다. 여기서 슈미트는 두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왕비라는 터부’와 ‘복수자 유형의 햄릿화’이다.

햄릿의 어머니인 왕비가 선왕(남편) 살해 사건에 공모했는가 여부는 이 이야기에서 끝내 터부이자 미스터리로 남는다. 왜 그럴까? 제임스1세의 어머니가 바로 메리 스튜어트이기 때문이다. 희곡 『햄릿』이 집필된 때는 1601년경이며, 1603~5년에 여러 판본이 출판되고 상연되었다. 스튜어트왕가 출신인 제임스1세는 1603년에 엘리자베스여왕이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그 뒤를 이어 잉글랜드 왕위에 오른다. 제임스1세의 어머니 메리 스튜어트는 스코틀랜드 여왕으로 있으면서 자신의 남편이자 제임스의 친부인 단리경을 살해한 보스웰백작과 재혼하여 큰 파문을 일으켰고 왕위에서 쫓겨나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여왕에 의해 처형당하는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연극 〈햄릿〉이 상연되던 17세기 초의 런던 관객은 당연히 이런 역사적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햄릿의 우유부단한 태도는 이 ‘왕비라는 터부’와 무관하지 않다. 전형적인 복수극의 주인공과 달리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계속 주저하는 이 새로운 복수자 유형의 이면에는 스튜어트왕가의 비극이라는 당대의 역사적, 정치적 현실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슈미트는 계시종교적 신의 권위에 의존하는 규범이 이성의 힘을 기반으로 확립한 인간의 규범에 비해 더 강력하고 절대적이라고 본다. 햄릿의 경우처럼 현실이 인간을 옭아매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할지라도, 이러한 역사적 현실은 주인공의 실존을 사로잡는 그 절대적 성격 때문에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슈미트에겐 근본적으로 역사적 현실도 신적 권위에 따른 현실이다.

슈미트는 르네상스 이래로 유럽의 문화예술이 세 명의 상징적 인물을 창조했다고 말한다. 바로 돈키호테, 파우스트, 햄릿이다. 이 세 인물은 모두 지성 때문에 정상궤도에서 벗어났는데, 유일하게 햄릿만이 신화적 인물이 되었다. 여기서 돈키호테는 정통 가톨릭이고, 파우스트는 프로테스탄트이다. 슈미트에 따르면, 이 두 인물 사이에 해당하는 햄릿은 유럽의 운명을 결정지은 종교 분열의 한가운데 있는 인물이며, 바로 이런 역사 속에서 비극적인 햄릿 신화가 탄생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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