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는가?…마음과 행동을 바꾸는 선택 설계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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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는가?…마음과 행동을 바꾸는 선택 설계의 비밀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1.04.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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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동경제학: 마음과 행동을 바꾸는 선택 설계의 힘 | 리처드 탈러 지음 | 박세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604쪽

현대 경제학은 “모든 인간은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명제 위에 발전해왔다. 어떠한 이론이나 모형이든 그 속에는 언제나 이성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며 여러 선택지 중 최적 조합을 골라내는 놀라운 능력을 지닌 인간, 즉 ‘이콘(Econ)’이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인 우리는 어떤가? 필요한 물건도 아닌데 할인한다는 이유만으로 잔뜩 사고, 통증이 심한데도 회비가 아까워 헬스장에서 운동을 계속하다가 오히려 건강을 해친다. 그런가 하면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려놓고서도 막판에 극단적인 투자를 하기도 한다. 경제학자들의 말처럼 인간이 정말 합리적인 존재라면 우리는 왜 이렇게 ‘잘못된’ 행동을 하는 걸까?

1970년 어느 날, 한 젊은 경제학자는 똑똑한 사람들도 비이성적인 선택을 거듭한다는 연구 결과에 호기심을 품는다. 기존 경제학은 언제나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을 전제로 모든 현상을 규명해왔는데 현실은 이와 전혀 달랐던 것이다. 이 사실에 매료된 그는 경제학 모형과 현실 세계의 괴리를 입증하는 사례를 하나둘씩 찾아 연구 목록에 올렸고, ‘살아 있는 인간’의 의사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평생에 걸쳐 탐구하기 시작했다. 201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리처드 탈러가 행동경제학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라는 잘못된 가정 위에 성립된 주류 경제학을 근본부터 무너뜨린 행동경제학의 역사는, ‘그렇다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며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가’라는 질문에 새로운 답을 내놓기 시작했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합리성을 굳건히 믿는 전통 경제학과는 달리, 예측 불가능한 인간의 심리와 본성에 주목한다. 심리학을 비롯한 여러 사회과학을 경제학 모형에 폭넓게 적용함으로써 변덕스러운 인간 행동을 보다 정확하게 설명하고자 시도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나아가 탈러가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라는 별명을 붙인 것처럼, 어떠한 명령이나 강압 없이 사람들이 스스로 판단하는 과정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라디오를 사려던 샐리는 마음에 드는 제품을 찾았는데 가격이 45달러였다. 그런데 매장 직원이 말하길, 10분 정도 떨어진 다른 매장에서 대대적인 할인 행사를 하고 있으며 같은 제품을 35달러에 살 수 있다고 한다. 샐리는 차를 몰고 거기로 가려고 할까? 다음 날, 샐리는 매장에서 TV를 둘러보다 495달러짜리 제품을 발견했다. 점원은 다시 한 번 10분 거리에 있는 다른 매장에서 동일한 제품을 485달러에 판매한다고 알려주었다. 샐리는 이번에도 차를 몰고 거기로 가려고 할까?

전통적 경제학에 따르면 샐리는 두 가지 경우 모두 차를 몰고 다른 매장으로 가거나, 아니면 가지 않아야 한다. 합리적 인간이라면 10분이라는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가치를 부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탈러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두 경우에 사람들의 행동은 다르게 나타난다. 495달러짜리 TV를 살 때보다 45달러짜리 라디오를 살 때 10달러를 아끼기 위해 기꺼이 10분을 투자하려 한다. 이것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최소 식별 차이(just noticeable difference)’와 관계가 있다. 체중을 젤 때는 30그램을 인식하지 못하지만, 채소를 살 때 30그램은 매우 큰 차이로 다가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원서 & 저자 리처드 탈러

얼핏 생각하면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핵심은 그 어떤 전통 경제학 모형도 인간의 일관성 없는 행동을 설명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탈러는 이처럼 변덕스러운 인간의 반응을, 심리학과 접목한 행동주의 원리를 들어 명쾌하게 설명한다. 가질 때의 기쁨과 잃을 때의 고통에 대한 반응을 비교한 ‘소유 효과’, 이미 결과가 나타난 뒤 그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고 착각하는 ‘사후 판단 편향’,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의사선택 원리를 밝혀낸 ‘전망 이론’, 사람들이 돈을 바라보는 관점을 다루는 ‘심리 계좌’, 주식시장에 나타나는 투자자들의 ‘과잉반응 가설’ 등 오늘날의 행동경제학을 정립한 흥미로운 아이디어들이 그것이다.

합리성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인간의 행동을 보다 정확하게 설명한다는 점 외에 행동경제학이 학문으로서 지닌 또 하나의 매력이 있다. 바로 행동주의 원리를 활용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문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어떠한 명령이나 강압 없이, 사람들이 스스로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말이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 보자. 영국 정부는 다양한 금액의 세금을 체납하고 있는 납세자 12만 명이 자발적으로 세금을 납부하게 만들고자 했다. 탈러의 자문을 받은 영국 정부는 체납자들에게 다음의 문장이 추가된 공문을 발송했다.

* 영국에서 대다수 사람은 세금을 납기 안에 납부하고 있습니다.
* 여러분이 사는 지역의 대다수 시민은 세금을 납기 안에 납부하고 있습니다.
* 여러분은 지금 세금을 체납하는 소수의 집단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공문을 발송한 후로부터 23일 안에 밀린 세금을 낸 체납자의 수가 5퍼센트 포인트 이상 증가했고, 그 기간 동안 900만 파운드(약 140억 원)가량의 세금이 납부되었다. 정부가 강제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도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바꿔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더구나 공문에 문장을 추가하는 데 별도로 예산이 들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매우 효율적인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탈러는 이 같은 행동주의를 활용한 문제 해결 방식을 가리켜 ‘자유주의적 개입주의(libertarian paternalism)’라고 부른다. 이는 아주 간단한 ‘설계’를 통해 결과적으로 가장 이로운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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