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전통의 원형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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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 전통의 원형을 찾아서
  • 김용태 동국대·불교사
  • 승인 2021.04.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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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가 말하다_ 『조선 불교사상사: 유교의 시대를 가로지른 불교적 사유의 지형』 (김용태 지음, 성균관대학교출판부, 560쪽, 2021.02)

조선시대 불교 하면 숭유억불, 침체와 쇠퇴 같은 부정적 뉘앙스의 단어가 먼저 떠오를 것이다. 학계에서도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이며 불교는 유교에 철퇴를 맞아 여성, 서민의 신앙으로 겨우 명맥만 유지했을 뿐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그렇기에 조선시대 불교의 교학과 수행 전통, 주요 신앙으로서의 사회적 역할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채 무시되기 일쑤였다. 심지어 조선시대 500년 동안 불교는 유학자들의 공격에 끊임없이 시달렸고 사찰은 수탈과 억압의 대상이었으며 승려의 지위는 천민 수준까지 떨어졌다는 것이 상식화된 지 오래이다. 

그런데 조선시대 불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먼저 조선시대에 정치와 사회의 주류 질서에서 불교가 배제되면서 이전에 비해 위상이 추락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러한 실상이 역사인식에 반영되었음은 물론이다. 또한 전통의 이미지가 형상화되던 20세기 초에는 바로 얼마 전인 19세기의 기억이 보다 직접적으로 투영되었을 것이다. 19세기는 국가와 사회의 공적 시스템이 붕괴된 시기였고, 이는 불교계에도 영향을 미쳐서 경제적 부담과 함께 사적 침탈이 증가하는 등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그에 따른 어두운 기억이 식민지기에 들어 전통의 상을 형상화할 때 밑그림이 되었고, 식민사관의 타율성론, 정체성론이 덧씌워져 부정 일변도의 잿빛 조형물로 그려지게 되었다.

다카하시 도루의 『이조불교』(1929) 이후 조선시대 불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학술담론으로 정형화되어 억불, 쇠퇴, 멸절의 도식이 기본 틀로 굳어졌다. 해방 이후 오랜 시간에 걸쳐 식민사관이 비판되고 극복되었지만 조선시대 불교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그 결과 ‘조선시대 전통’ 하면 흔히 유교만 떠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도 불교는 존재하였고 가장 중요한 신앙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해왔다. 더욱이 조선후기에는 교학과 수행, 신앙 면에서 매우 활성화된 모습을 보이며 현존하는 전통사찰, 불상, 불화의 대부분도 17세기 이후 중창되거나 조성되었다.

현재 한국불교의 원형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졌다. 간화선의 선양과 임제법통 계승, 선교겸수 지향과 화엄교학 중시, 염불정토신앙의 대중적 확산은 조선시대를 거치며 불교전통의 근간을 이루었다. 이 점에서 조선시대 불교는 고려와 오늘날을 잇는 매개이자 가교라 할 수 있다. 이뿐 아니라 한국인의 심성과 세계관의 밑바탕에는 일반의 통념처럼 유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불교도 큰 비중을 차지해왔다. 그렇기에 조선시대 불교의 재해석은 한국의 역사 전통을 다시 조명하고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조선왕조 500년은 유교를 숭상하였고 유교국가 나아가 유교 사회를 지향하여 동아시아 안에서도 독특한 색채를 띠는 시대였다. 그렇기에 불교는 주류가 아닌 아웃사이더, 주체가 아닌 타자, 사상보다는 종교에 치우친 전통으로 치부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도 불교는 생명을 유지하였을 뿐 아니라 선과 교의 사상을 계승하고 시대에 맞게 종교적 활로를 넓혀가면서 나름의 사회적·문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한국사의 흐름 전체을 놓고 보아도 불교는 사상과 종교, 문화와 예술, 문학 등 여러 영역에서 문명사적 전환을 선도하였다. 지금도 한국인의 심성 깊숙이에는 유교적 가치와 불교적 관념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 

이 책은 조선시대에 불교가 살아 있었음을 전제로, 유교의 시대를 가로지른 불교적 사유의 지형을 탐색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2010) 이후 10년 동안 공부한 내용 가운데 넓은 의미에서 사상사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성과들을 모아 총 4부 11장 23절로 구성하였다. 사상사의 외연을 역사의 콘텍스트 위에 펼쳐진 시대적 지향, 의례와 신앙까지 포괄해 넓게 적용하였고, 사상사의 전개를 사회적 배경 속에서 이해하기 위해 제도적 기제 변화까지 고려하였다. 

1부 ‘조선시대 불교 연구 100년의 재조명’에서는 식민지기 한국불교 전통의 조형과 굴절, 해방 이후 연구의 재개와 새로운 모색으로 나누어 지난 100년의 연구사를 정리해 보았다. 2부 ‘불교사상의 계승과 선과 교의 융합’에서는 패러다임 전환과 숭유억불의 도식, 배불론과 호불론, 사상과 신앙의 연속과 변화, 조선 전기 유불 교체와 전통의 유산에 대해 살펴보았다. 또한 조선 후기 불교 전통의 주축이 된 선과 법통 문제를 고찰하였고. 승려 교육과정의 선교겸수적 특징과 불서 유통, 화엄과 『대승기신론』을 대상으로 교와 강학의 특징을 파악해 보았다.

3부 ‘조선 불교를 빛낸 사상과 실천의 계보’에서는 조선 후기 불교를 대표하는 고승, 교학과 선의 종장들을 추려서 이들의 활동과 사상에 대해 조명하였다. 사명 유정, 환성 지안, 연담 유일, 묵암 최눌, 백파 긍선과 초의 의순 등이 대상이 되었다. 4부 ‘유교사회의 종교적 지형과 시대성’에서는 호국의 기치를 든 의승군 활동의 딜레마와 호국불교 개념, 국가 시스템 안에서 기능한 불교의 사회적 역할 등을 살펴보았다. 이어 오복제와 같은 세속 의례의 수용과 문파 및 계보에서의 권리와 의무 문제를 17세기 불교 상례집을 통해 고찰하였다. 또한 산신과 칠성신앙을 통해 조선 후기 민간신앙의 포섭과 불교화 문제를 다루었고, 염불문의 성립과 염불정토의 대중적 확산 양상, 천주교의 도전을 이겨내고 내세로 가는 이정표를 끝까지 지킨 불교의 종교적 역할을 확인해 보았다.  

조선 불교사상사의 전체상을 그리기에는 아직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결되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많으며, 특히 일상과 문화의 영역에서 조선 사람들에게 불교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풀어야 할 숙제이다. 그렇기에 본서의 부제인 ‘유교의 시대를 가로지른 불교적 사유의 지형’은 현재 진행형이자 미래형일 수밖에 없다. 한국불교의 역사적 특성을 파악하고 정체성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전통과 근대의 가교인 조선 불교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만 한다. 또 한국적 전통이 형성된 조선시대를 더 깊이 통찰하기 위해서는 유교라는 잣대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불교를 비롯한 여러 프리즘을 통해 그 스펙트럼을 넓혀야 한다. 
  
앞으로도 조선시대에 불교가 과연 무엇이었고, 불교의 존재와 역할에서 어떤 역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를 탐색해 보려 한다. 밖으로 시야를 돌려 동아시아 근세의 지형 속에서 조선 불교의 특성을 조망할 필요도 있다. 한국의 고유성과 불교의 보편성은 동아시아의 지역성을 모태로 하여 교차·융합되어왔다. 이는 조선시대 불교를 바라볼 때도 적용할 수 있으며, 동아시아 근세에서 조선 불교의 특징과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 

김용태 동국대·불교사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조선시대 불교사 연구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도쿄대학 인도철학불교학과에서 수학했다. 한국사상사학회ㆍ불교학연구회 연구이사를 역임했고, 현재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HK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 임제법통과 교학전통』(2010), 『Glocal History of Korean Buddhism』(2014), 『韓國佛敎史』(2017, 일본 춘추사) 등이 있으며, 『조계고승전』(2020)을 함께 번역했다. 『테마 한국불교(1~10)』(2013~2021), 『East Asian Buddhism and Modern Buddhist Studies』(2017) 등을 비롯해 스무 권이 넘는 불교학술서를 기획하고 함께 펴냈다. 대원불교문화상 대상·선리연구원 학술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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