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목민심서 『성직자의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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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목민심서 『성직자의 의무』
  • 최원오 대구가톨릭대·교부학
  • 승인 2021.02.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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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

■ 책을 말하다_ 『성직자의 의무』 (암브로시우스 지음, 최원오 옮김, 아카넷, 657쪽, 2020.12)

밀라노의 주교 성 암브로시우스(334년경~397년)는 고대 그리스도교에서 황실의 부당한 권력에 맞서 종교의 자유와 권위를 지키고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과 사회 정의를 위해 헌신한 교부이다. 그의 인품과 학식은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에도 결정적 영향을 주었고, 둘 다 서방의 4대 교부로 존경받고 있다.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 들어서면 정면에 베르니니의 청동 조각상이 자리 잡고 있다. 베드로 사도좌를 동서방 교부 4명이 떠받치는 형상인데, 앞쪽에 서 있는 서방의 두 교부가 성 암브로시우스와 성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사실은 그의 교회적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암브로시우스의 사람됨을 먼저 알아본 쪽은 정계였다. 정의롭고 균형 잡힌 인품을 지닌 암브로시우스는 일찌감치 로마 제국 최고 관직에 오른다. 나이 서른에 황제의 도시 밀라노, 곧 리구리아 에밀리아 지방의 집정관이 되었다. 서른네 살 무렵 밀라노 교회 공동체의 주교 선출을 감독하러 대성당에 들렀다가 민중의 간절한 청원을 차마 뿌리치지 못해 화려한 관복을 벗고 성직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세례를 받은 지 이레 만에 주교품을 받은 이 고위 공직자는 갑자기 교회의 중책을 떠맡게 된 당혹감을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법정과 관직에서 낚여 와 사제직을 맡게 되었는데, 나 자신이 배우지도 않은 것을 여러분에게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배우기도 전에 먼저 가르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먼저 배울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배우면서 동시에 가르쳐야만 합니다”(『성직자의 의무』 1,1,4).

암브로시우스 주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들과 같은 성직자 양성을 위해 『성직자의 의무』를 저술한다. 이 책이 성직자로서 갖추어야 할 품성과 덕행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성직자들만을 위해 저술되지는 않았다. 암브로시우스는 이 작품을 통해 성경의 본보기에 바탕을 둔 보편적 그리스도교 윤리 규범을 세우려 했기 때문이다. 키케로(기원전 106~43년)가 암살당하기 한 해 전 아들 마르쿠스를 위해 쓴 『의무론』의 틀을 활용하면서도, 고전 철학과 윤리 사상을 그리스도교적으로 재해석하고 새로운 의미를 불어넣었다. 그리하여 최초의 그리스도교 윤리 교과서인 『성직자의 의무』가 탄생하게 된다. 

『성직자의 의무』는 교부 시대를 지나 중세의 긴 세월을 가로지르면서 성직자와 공직자를 위한 필독 고전이 되었다. 핵심 주제는 올바름(honestum, 義)과 이로움(utile, 利)이다. 올바른 것은 이롭지 않을 수 없고, 올바름이야말로 최고의 이로움이라는 것이 암브로시우스의 결론이다. 그렇다면 실리를 위해 명분을 버리고, 이익을 위해 정직을 내팽개치며, 도덕적 삶보다는 실용적 가치를, 올바름보다는 유용성을 앞세우며 살아가는 이 현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러한 사회 현상의 근본 원인은 통속적 이로움을 참된 이로움으로 착각하고 혼동하는 데서 비롯한다. 참으로 이로운 것은 어떤 경우에도 올바름과 맞설 수 없는 법이지만, 수익을 올리고 이윤을 창출하기만 하면 그 자체로 최고선이 되어버리는 신자유주의 사상이 지배하는 오늘날 인간과 생태를 도구화하는 통속적 이로움이 이로움을 넘어 올바름으로 둔갑한 까닭이다. 

일찍이 키케로는 “인간이 이로움을 올바름에서 분리할 때, 자연의 근본 원리를 뒤집게 된다.”(『의무론』 3,28,101)는 사실을 날카롭게 짚어냈다. 교묘하고 추악한 ‘통속적 이로움’을 참으로 올바르고 이로운 것에서 끊임없이 솎아내지 않는다면, 이익과 실용, 공리와 실익의 이름으로 벌이는 온갖 일들로 말미암아 참으로 선하고 아름답고 올바른 가치들이 형편없이 훼손될 것이 분명하다. 키케로의 말처럼, 잔인한 것은 그 무엇도 이로울 수 없기 때문이며, 추악한 것을 이롭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재앙이기 때문이다.

안톤 반 다이크(Antoon van Dyck),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성당 입장을 가로막는 암브로시우스 주교, 내셔널갤러리 소장

교부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사회적 가르침을 남긴 암브로시우스답게, 『성직자의 의무』에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과 연민, 불의에 대한 거룩한 분노와 정의에 대한 목마름이 가득하다. 재화의 보편적 목적과 분배 정의, 공동선과 사회적 연대에 대한 신학적 해석이며 현대 사회 교리의 원천이기도 하다.

성직자의 품성과 덕행에 관해서도 가르침도 울림이 크다. 쓸데없는 말을 삼가고 침묵의 덕을 실천하라고 강조한다. 염치야말로 인간의 근본 조건이니 두꺼운 낯짝으로 파렴치하고 몰염치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매서운 당부는 부끄러움을 잃어가는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따끔한 죽비소리다. 돈 명예 권력을 하찮게 여기는 검소하고 절제된 생활방식으로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라는 권고는 팬데믹 시대에 더욱 아리다. 홀로 있어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삶의 원리, 외식과 가정 방문에서 지켜야 할 원칙까지 자상하게 들려준다. 난민을 환대하고, 궁핍한 이들을 돌보되, 가난 때문에 종살이하거나 삶의 벼랑에 내몰린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라면 성물마저 기꺼이 팔아버리라는 담대한 권고는 200여 년 전 다산 정약용이 마음으로 새겨 놓은 애민사상과 결이 같다. 『성직자의 의무』는 서양의 목민심서(牧民心書)라 할 수 있다.

『성직자의 의무』에서는 고대 철학을 아우르는 암브로시우스의 행복론과 우정론도 만나게 된다. 인간은 가난과 고통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이 가르침은 고대 철학과 완전히 구별되는 최초의 그리스도교 행복론이다. 『성직자의 의무』의 마지막 장은 우정에 관한 아름다운 성찰로 마무리되는데, 이는 키케로의 『우정론』을 넘어 아우구스티누스와 요한 카시아누스로 이어지는 그리스도교 우정론의 시작이다.

암브로시우스는 로마의 주교에 버금가는 권위를 지녔지만, 불의한 정치나 자본 권력과 타협하는 법이 없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교회의 보물이며 교회의 재산은 가난한 사람들의 것이라는 확신으로 의지가지없는 난민들을 품어 안았고 사회적 약자들의 벗이 되었다. 자본과 시장 논리에 오염되고 집단이기주의에 빠진 종교, 공동선의 가치와 사회적 인간의 도리를 하찮게 여기는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의 민낯이 코로나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 지금, 이 책이 성직자의 사회적 책임 의식을 흔들어 깨우는 맑은 종소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서양의 고전 문화와 그리스도교 문화가 어우러진 이 작품을 통해 교부 문헌의 인문학적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고 체험하게 되기를 바란다.


최원오 대구가톨릭대·교부학

광주가톨릭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로마 아우구스티누스 대학에서 교부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부산가톨릭대학교 교수를 거쳐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내가 사랑한 교부들』(공저), 『종교 간의 대화』(공저), 『교부들에게 배우는 삶의 지혜』(공저), 『교부들의 사회교리』를 지었고, 포시디우스의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공역주), 아우구스티누스의 『요한 서간 강해』(공역주), 『교부들의 성경 주해 신약성경 3: 마르코 복음서』, 암브로시우스의 『나봇 이야기』와 『토빗 이야기』, 오리게네스의 『원리론』(공역주), 키프리아누스의 『선행과 자선, 인내의 유익, 시기와 질투』, 요한 크리소스토무스의 『참회에 관한 설교』(해제), 『성 아우구스티누스』(공역), 『교부와 만나다』(공역)를 우리말로 옮겼고, 『교부 문헌 용례집』을 함께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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