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사실, 진실에 근거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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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사실, 진실에 근거하는 사회
  • 민경찬 논설고문/연세대 명예교수·과실연 명예대표
  • 승인 2021.02.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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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찬 칼럼]_ 논설고문 칼럼

지난 1월 20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 백악관 내부의 모습이 하룻밤 사이에 완전히 변했다.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다. 트럼프 정부 때는 대통령을 포함해 거의 모두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트럼프 정부 4년은 한 지도자가 추구하는 가치와 태도가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국민의 생명, 국가의 위상보다 자신의 정치적 계산이 앞섰던 결과는 참담한 모습이었다. 미국의 확진자 수는 2,400만여 명으로 세계 1위가 되었고, 사망자 수는 40만 명이 넘어 제2차 세계대전 사망자보다 많다. 트럼프는 코로나19 방역 수칙 등 과학을 무시하였고, 말라리아 치료제, 살균제가 효과가 있다는 등 비과학적인 주장을 하여 인명 피해 사고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 정부가 하는 모든 일을 과학, 사실, 진실에 근거하도록 할 것’이며, ‘과학은 언제나 내 행정부의 전면에 서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취임하자 바로 '마스크 착용 의무화', ‘검사 및 백신접종 확대’, 여행객의 ‘입국 전 검사’ 등의 조치를 내놓으며 총력전에 나섰다. 그는 ‘전문가와 과학자들이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자유롭게 일하고 정치적 결과가 아니라 과학과 건강만을 바탕으로 엄격하게 결정을 내리도록 하겠다‘고 강조하며,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OSTP) 실장을 처음으로 장관급으로 격상시켰다.

우리는 인류 문명사에서 한 국가의 흥망성쇠는 그 나라의 과학에 대한 태도에 따라 좌우되어 왔음을 깨달아야 한다. 국가 지도자, 공직자는 물론 일반 국민에 이르기까지 과학적 사고와 합리적 방식으로 일상을 대할 때, 창의성, 합리성 및 체계성을 키우는 사회 인프라가 형성되는 것이다. 산업혁명을 통해 국가 발전의 도약과 번영을 이끌어온 국가들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사실 과학적 사고는 고대 그리스 문명의 정신이며, 르네상스 시대가 그 정신을 잇게 되어, 유럽 중심의 근대문명을 이루었고 오늘의 과학기술 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우리의 역사에서도 과학을 중시했던 세종 시대가 국가를 튼실하게 키우며 조선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당시 시대적 과제인 집권체제의 안정과 유교적 문물제도의 정비를 과학기술 분야의 진흥을 통해 완수해 나갔다. 과학기술로 뛰어난 무기를 만들어 영토를 지키고 확장하였으며, 수학을 통해 천체의 변화, 절기를 읽을 수 있는 역법을 만들어 농업과 어업을 발전시켰다. 세종 스스로 수학을 공부하며, 당상관들이 수학 시험을 치르게 하였고, 잠재력 있는 인재들을 중국에 유학을 보내기도 하며 수학의 보편화에 힘썼다.

과학과 과학적 사고에 기반을 두는 바이든 정부의 노력은 분명히 코로나19 사태 극복에 크게 기여할 것이며, 더 나아가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 모든 분야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과학기술정책실장에 새로 임명한 MIT의 에릭 랜더 교수에게 앞으로의 75년을 향한 새로운 전략의 구상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그는 이 서한에서 다음 세대가 더 건강하고 안전하게, 정의롭고 평화롭게 번영을 이루는 세계에서 살도록 하기 위한 과제로 5개의 질문을 던졌다.  

오늘 우리 사회의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 사회는 과학과 과학적 사고, 합리성에 기반을 두고 미래를 대비하고 있는가? 아쉽게도 오늘의 대한민국은 단기 현안에 빠져 있고 모든 것이 정치와 법률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과학적 자료가 정치적 결론을 위해 조작되거나, 과학적 판단이 정치 행위에 악용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정무적 판단과 과학적 근거를 구분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다양성과 융합을 강조하면서도, 사법부의 판결, 정책 연구의 결과도 내 생각과 다르면, 성찰과 토론보다는, 우선 여론몰이로 들어간다. 건강한 미래보다는, 표 계산으로 현실에 급급한 서민들의 감성만 터치하는, 정치가 아닌, ‘정치기법’만이 힘을 받는 사회다. 

이제는 우리도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며, 건강하고 안전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모두가 과학에 대한 태도를 새롭게 하며, 과학적 사고, 합리적 방식을 국정 운영의 기조로 삼아야 하며, 국민 일상에도 이를 문화로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 

오늘의 가장 시급한 과제인 코로나19 방역도 그동안 성공적으로 대처해 왔던 방식을 한 단계 넘어서야 한다. 이제는 방역에 대한 정책 결정과정에 전문가, 과학자의 목소리가 보다 깊이 반영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방역지침의 시설과 집단에 따른 효과, 계층에 따른 피해, 교육격차, 미래 사회적 비용 등 여러 요소에 대한 객관적인 데이터에서 과학적 근거를 찾아내며, 다양한 이해 당사자의 의견을 종합하여 의사결정 해나가야 날로 피로감이 더해지는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 

정부나 정치권은 과학 정책에 대한 태도를 바꿔야 한다. 코로나19 백신이 기록적으로 빨리 개발된 배경에 주목해야 한다. 예를 들어, 모더나, 화이자 백신은 1970년대부터 과학자들이 인내를 가지고 개발한 mRNA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K-방역을 성공으로 이끈 한국의 진단키트도 지난 20여 년 묵묵히 축적해 놓은 생명공학 기술의 결과다. 기초과학은 대부분 수십 년을 걸치며 실패를 반복하면서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내고, 또한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활용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기초과학 연구에 효율성을 요구하면 안 된다. 

오늘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코로나19 이후 대전환의 시대를 발 빠르고 지혜롭게 대비해야 한다. 앞으로 인간의 사고와 삶의 방식이 어떻게 변화되어 갈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과학, 과학적 사고 및 새로운 철학을 중시해야 하며, 이러한 태도가 어려서부터의 교육, 기성세대의 사회활동, 공직자의 국정 운영 등 모든 영역에서 보편적 원리로 자리 잡아야 한다. 이는 과학, 사실, 진실에 근거하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며, 대한민국의 미래 번영, 희망도 바로 여기에서 기대해야 한다. 


민경찬 논설고문/연세대 명예교수·과실연 명예대표

연세대 수학과 명예교수로 연세대 대학원장, 대한수학회 회장, 국제퍼지시스템협회(IFSA) 집행이사, 교육과학기술부 정책자문위원장,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 과학기술분과 의장, 포스코청암재단 이사, 국무총리 소속 인사혁신추진위원회 민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기초과학연구원(IBS) 과학자문위원회(SAB) 위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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