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품 Buta가 짝퉁 Paisley로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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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품 Buta가 짝퉁 Paisley로 되기까지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1.02.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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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연재: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40)_ 진품 Buta가 짝퉁 Paisley로 되기까지

“짝퉁이 진품으로 둔갑하고, 가짜가 진짜인 냥 행세하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본다. 그게 역사다.” 

페르시아 유목민 여인들이 양털이나 염소 털을 이용해 천을 짜고 거기에 무늬를 넣었다. 그들의 고단한 삶을 반영하는 윗부분이 살짝 구부러진 눈물방울 무늬 보따(boteh or buta)가 그것이다. 이 보따가 후일 스코틀랜드 페이즐리(Paisley)로 알려진다.

전쟁은 인간이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룩해 놓은 문명을 파괴한다는 데 이견은 없다. 그러나 한편으론 전쟁을 통해 문명의 교류가 이뤄진다. 적의 문화가 어느 결엔가 친근한 이웃처럼 내 곁에 와 있는 경우가 많다. 민주주의가 꽃핀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문화가 동방으로 전해지는가 하면 적대국인 페르시아의 무늬가 로마인의 무채색 토가를 꾸미고 있기도 한다.
 
주변을 보면 카펫이든 식탁보든 추위를 막아주고 멋을 더해주는 캐시미르 숄이든 올챙이를 닮은 무늬가 자리 잡고 있는데, 이는 무늬의 질서를 알아챈 고대 페르시아의 유산이다. 올챙이 무늬는 흔히 페이즐리라고 하며 스코틀랜드가 원산지라고들 알고 있지만, 기실 페르시아에서 가져간 것이다. 세계 최고의 세밀화를 그리는 곳에서 지금까지 가장 인기 있는 무늬가 고안되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놀랄 일은 인기의 비결이다. 달리 말해 페이즐리의 아름다움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점이다. 

BC 5세기 아테네. 그곳에서 미의 클래식 시대가 열린다. 엘레강스가 클래식 미의 모토였던 그 시절 미의 척도는 황금비율이었다. 아크로폴리스는 전쟁의 기념으로 만들어진 도시로 클래식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여기 신전들의 특징은 돌기둥들에 사람의 형상을 입혀서 건축물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들의 옷차림에서 그리스인의 미를 본다.

옷은 마땅히 아름다워야 한다. BC 5세기 이전에는 단순하고도 클래식한 옷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갈수록 아름다운 옷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미의 기준은 계속 바뀌어도 미의 절대적인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황금비율, 자연비율, 피보나치 수열을 보면 일정한 질서가 있다. 모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도 일정한 질서가 있으며, 옷의 문양이나 비율에도 일정한 질서가 있다. 

사람들은 아름다움의 기준을 황금비율에서 찾기 시작했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건축에는 대표적인 황금비율이 적용되었다. 황금비율은 긴 부분과 짧은 부분의 비(比)를 전체와 긴 부분의 비와 같게 했을 때의 비율을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약 1.618대 1이 가장 조화로운 비(比)로 여겨지고 있다.  

황금비는 어떠한 선으로 이등분하여 한쪽의 평방을 다른 쪽 전체의 면적과 같도록 하는 분할이기도 하다. 즉, 선 AB 위에 점 C가 있을 때 (AC)^2=BC×AB 또는 AC:CB=AB:AC가 되도록 분할하는 것이다. 이 비의 값은 거의 1.61803398....:1 또는 1:0.61803398...이 되는데 이것을 황금비라 한다. 황금비는 고대 그리스인에 의하여 발견되었고, 이후 유럽에서 가장 조화롭고 아름다운 비례(proportion)로 간주되었다. (a+b) : a = a : b

옛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였던 이란의 고도 이스파한의 별명은 ‘세상의 절반이다.’ 이 역사적 도시에 대한 이란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도시 중심부에 위치한 제왕의 광장 주변의 건축물들은 온통 페이즐리 문양의 세라믹 타일로 덮여 있다. 

앞에서 말했듯 페이즐리 패턴의 원형은 고대 페르시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후 이 문양은 무굴제국 시절의 인도로 넘어가 귀족들이 사용하는 캐시미어 숄의 문양으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카시미르 지역의 상록 교목을 모티브로 했다는 설도 있다.

카시미르 지방에서 만들어진 캐시미어 숄은 실크로드를 따라 유럽으로 유입되어 18~19세기에 유럽 상류층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그 후 스코틀랜드 중서부의 작은 도시 페이즐리에서 자카드 기계로 독특하고 화려한 패턴의 캐시미어 숄을 대량 생산하여 보급하기 시작한다. 이 문양은 ‘페이즐리’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퍼져나가게 됐다. 이렇게 해서 페르시아에서 처음 시작된 패턴이 스코틀랜드의 지명을 딴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런데 페이즐리를 스코티시 게일어를 사용하는 현지인들은 ‘파슐리끼’라고 발음한다.

페이즐리 패턴의 특징은 화려하고 기하학적인 모양이다. 이탈리아 명품 에트로(ETRO)가 페이즐리를 잘 활용하는 대표적인 브랜드라고 할 수 있겠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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