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와 바그너의 우정, 『비극의 탄생』을 지나 《파르지팔》로 끝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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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와 바그너의 우정, 『비극의 탄생』을 지나 《파르지팔》로 끝나다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1.01.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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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바그너의 경우: 니체 대 바그너 | 프리드리히 니체 저 | 이상엽 역 | 세창출판사 | 152쪽

31년의 나이 차를 뛰어넘은 니체와 바그너의 우정! 바이로이트 극장에서의 공연 이후 돌연 결별을 선언한 니체. 두 사람이 결별한 이유는 무엇이며, 니체가 말하는 예술의 본질은 무엇일까?

31년의 나이 차를 뛰어넘어 깊은 우정을 나눈 니체와 바그너.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스도교적 색채가 짙어지는 바그너의 작품을 보며, 니체는 그와 결별하기에 이른다. 결국 두 창조적 인물의 관계는 이렇게 단절되고 만다. 니체는 이 책을 통해 바그너의 음악을 공격적으로 비판하고 있으며 자신이 바그너와 멀어지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니체가 말하는 예술이란 무엇인지, 바그너를 통해 어떤 가치를 재평가하려고 하였는지 새롭게 알 수 있다.

니체와 바그너는 31년이라는 나이 차를 극복하고 서로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니체는 그리스도교로 대변되는 전통적인 가치를 극복해야 새로운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니체는 끝없는 고난과 시험 속에서 온갖 역경을 헤쳐 나가는 영웅담을 그린 고대 그리스 비극 작품이 자신의 초인 사상을 가장 잘 표현한다고 여겼다. 그는 바그너의 초기 음악극이 고대 그리스의 비극과 닮았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바그너에게 헌정하다시피 쓴 책이 『비극의 탄생』이었다.

그런데 1876년 바이로이트 극장에서 상연된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를 본 니체는 작품에서 연민으로 삶을 바라보는 염세주의적 분위기를 느낀다. 이후 《파르지팔》에서 짙은 그리스도교적 색채마저 엿본 니체는 바그너가 전통적 가치와 염세주의에 굴복했다고 보았고, 그와 이별을 선언한다.

니체와 바그너
니체와 바그너

갑자기 어떤 사건에 대해 논평을 해 보라고 하면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늘어놓는 궤변에 반박해 보라고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술술 나올 것이다. 『바그너의 경우』가 바로 그런 작품이다. 존경하던 바그너에게 크게 실망한 니체는 바그너의 작품을 분석하여 그 안에 깃든 전통적인 사상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고 헐뜯는다. 바그너는 물론, 그에게 열광하는 사람들까지도 니체는 공격적으로 비판한다. 이후 니체의 갑작스러운 공격을 이해하지 못한 대중이 그를 비난하자, 『니체 대 바그너』라는 작품을 통해 어떤 계기로 언제부터 바그너를 멀리하게 되었는지 해명한다. 이 과정에서 니체가 이해할 수 없는 비유와 격정적인 어조로 풀어냈던 사상이 굉장히 예리하고 명징한 언어로 구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쩌면 이 두 작품은 니체의 ‘모든 가치의 재평가’라는 핵심 사상과 예술론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니체는 바그너를 비판하면서 비제의 《카르멘》을 예로 들어 비교한다. ‘카르멘’은 집시 여인으로, 시간 따라 마음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삶에서 오는 모든 고통과 즐거움을 긍정하는 인물이다. 니체는 삶의 비극적인 면과 명랑한 면을 재현한 《카르멘》을 들어, 대중을 향한 연민으로 가득 찬 바그너의 작품을 비판한다. 구원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자기구원, 자기긍정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 남의 동정으로 구원에 이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니체는 예술이란 염세주의와 동정윤리로 가득 찬 형식이 아니라, 고통과 즐거움을 다채롭게 담아 삶을 긍정하는 형식으로 구현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니체는 『바그너의 경우』와 『니체 대 바그너』에서 자신의 예술론을 적극적으로 설명한다. 우리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두 작품을 통해 니체의 예술론을 새롭게 조명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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