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을 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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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을 타려면
  • 최기련 아주대학교 명예교수·에너지경제학
  • 승인 2021.01.10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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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칼럼]

매년 말이면 우리는 올해도 노벨상 운이 없다는 아쉬움에 젖는다. 그러나 체념하기에는 국민적 여망이 너무 크다. 모두들 우리 학자가 못 탄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가 놓쳤다고 한다. 특히 물리, 화학, 생리의학 등 3개 과학상 부문에 대해 기대가 크다. 이웃 나라 일본의 선전은 우리 자존심 문제로 비화된다. 왜 못 타는 것일까? 그간의 여러 연구를 종합하면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를 지배하는 개념’인 ‘패러다임(Paradigm)’전환을 주도할 연구 성과부족 때문이다. 따라서 특정분야 기존관행에 매몰되지 않는 새로운 접근법이나 문제의식 도출이 필수적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지난 20년 가까이 노벨상 후보배출에 가장 긴요하다는 기초연구비를 다른 연구비보다 몇 배 빠르게 늘리는 혁신투자정책을 지속하였다. 2018년 경우 기초연구비가 전년보다 19.6%로 대폭 증가하였으나 전체 연구비는 5%대 증가에 그쳤다. 그러나 2017년 ‘블룸버그 혁신지수’에서 한국은 R&D 지출액 등에서 세계 1위였으나 생산성은 32위에 머물렀다. 여기다 R&D투자가 커질수록 생산성은 저하되는 ‘혁신의 역설’까지 빚어졌다. 기술혁신을 통한 한국경제의 생산성 증가는 2006~2010년 5년간 연평균 2.58%에서 2011~2015년 연평균 0.97%로 떨어졌다. 당분간 이런 추세는 큰 변화가 없을 것 같다. 이런 비효율적 투자가 장기간 지속할 수 있었던 큰 이유 중 하나는 노벨상 후보배출 염원이었다. 심지어 우리 국가기술혁신목표를 경제성장 지원을 위한 ‘빠른 추종자’에서 ‘혁신선도자’로 수정하였다. 그러나 아직 세계 기술혁신 ‘패러다임’ 전환 주도능력이 입증되지 않고 있다. 

특히 R&D 투자효과에 대한 논란은 문제의 핵심이다. 배분과정의 담합의혹과 관료주의, 그리고 정부출연기관에 대한 과잉투자 논란이 그치지 않는다. 이에 우리나라 노벨상 후보배출은 보다 전략인 접근이 요구된다. 오랜 기초연구 경험이 축적된 유럽, 2차 대전 이후 세계 최고인재를 흡입한 미국, 그리고 개인의 학문적 욕구를 존중해온 일본 등과는 차별적이어야 한다. 지난 60여 년 우리나라 기술혁신 경로의 장점과 한계를 고려하면 ‘복합적 미래디자인 과학자(comprehensive anticipatory design scientist)’ 육성을 우선 고려할 수 있다. 우리는 역(逆)설계, 실용화 연구 등으로 과학기술 실행 역량은 많이 향상되었으나 패러다임 전환수준의 ‘독창적’ 개념설계 역량은 아직 부족하다. 학문전달 및 지식축적 체계의 경직성이 여전하다. 사실 소수의 우리 노벨상 수상후보자(자칭 포함)들은 특정 정부산하기관들에서 유례없는 연구 자율성 보장 등 세계 최고 수준 지원을 받고 있다. 너무 큰 특혜라는 비판이 있을 정도이다. 이는 과거 100년이 걸리던 과학적 지식축적의 두 배로의 배증(倍增) 기간이 현재는 5년 이내로 축소되는 등 혁신경쟁 심화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과거 경제성장 ‘한강의 기적’에 기여한 효율적 관료제도 장점을 활용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고도의 지혜와 지식을 겸비한 ‘학자-집행자(scholar-practitioner)’ 제도의 정착 없이는 관료제의 폐해에서 벗어날 수 없다. 돈만 쓰고 노벨상 열망은 더욱 멀어질 수 있다.  

결국 우리의 능력과 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고, 노벨상 열망 달성을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원로 학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들의 주도로 R&D 전술차원을 지나 학문영역별, 기관별 갈등을 넘고, 나아가 우리 고유의 과학연구방법론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창출해야 한다. 학계의 밥그릇 싸움을 종식시켜야 복합학문과 기초과학 간의 갈등을 없애야 한다. 구미 선진국과 같은 ‘고독한 노벨상 수상자’ 출현을 기다리기에는 국민 염원이 너무 크다. 


최기련 아주대학교 명예교수·에너지경제학

아주대 에너지학과 명예교수로 서울대학교 자원공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Grenoble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에너지자원기술개발지원센터 소장, 과학기술정책관리연구소 단장, 고등기술연구원장, 한국 에너지공학회 회장, 차세대 성장 동력 포럼 회장,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종합조정 실무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에너지와 기후변화>, <파워 플레이>, <에너지경제학>, <지속가능한 미래를 여는 에너지와 환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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