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발(燒髮)이라는 행운을 희구하는 미풍양속에서 변발(辮髮)이라는 멋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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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발(燒髮)이라는 행운을 희구하는 미풍양속에서 변발(辮髮)이라는 멋내기까지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1.01.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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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 기획연재: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37)_ 유목민의 헤어스타일…소발(燒髮)에서 변발(辮髮)까지

“匈奴宇文莫槐 出遼東塞外... 人皆翦髮而留其頂上 以爲飾 長至數寸則載短之”
(흉노우문막괴는 요동변방 밖에서 나왔다... 사람들은 모두 다 머리를 깎되 정수리 부분만 남겨 장식을 한다. 머리가 자라 몇 촌이 되면 짧게 자른다.) -- 『북사北史』 「흉노우문막괴전匈奴宇文莫槐傳」

▲ 남과 여: 작자 미상의 거란 묘실 벽화
▲ 남과 여: 작자 미상의 거란 묘실 벽화

간단없는 시간을 우리가 임의로 자른다고 시간에 틈이 생기거나 모양이 달라질 게 아니지만, 사람은 제 편의대로 시간을 재단해 앞선 시간과 지난 시간 등으로 구별을 한다. 흉사가 많은 세상사다 보니 액막이를 하고, 길함을 추구해 구복 의식을 행하기도 한다. 이런 일이 문화가 되어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전승된다.

우리네 정초 풍습에 소발(燒髮)이라는 병마 예방의 처방이 있었다. 남녀 간에 한 해 동안 아침저녁으로 머리를 빗을 때 빠지는 머리카락을 모아서 기름종이에 싸 두었다가 설날 황혼녘에 문밖에서 불사르면 병마가 물러간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작은 의식인데, 손사막(孫思邈, 581~682년)의 『천금방(千金方)에 따르면 본래는 정월 초하룻날이 아니라 인일(寅日)에 행한다고 한다. 음력 정월은 늘 寅月이니 호랑이를 상징하는 ‘寅’이 두 개가 합쳐지는 날이 병마나 악귀를 다루는 데 효험이 있다고 믿을 만하다.

머리카락을 태우면 그 냄새를 맡고 악귀들이 모두 집에서 떠나가므로, 설날 소발은 벽온(壁瘟) 즉 염병막이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믿고 새해 첫날 이와 같은 풍속을 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빠진 머리카락을 아무 때, 아무 곳에나 멋대로 버리지 않고 한 올 한 올 집어 모으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持父母)라는 인식, 즉 내 몸은 머리터럭 한 올, 손톱 한 조각일지라도 모두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니 함부로 버리거나 멋대로 다루지 않고 소중히 여긴다는 추원보본(追遠報本)의 생각 때문이다.

둘째, 만물유신론(萬物有神論)에 근거해 한 가닥 머리카락에도 신령이 깃들어 있으므로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손발톱은 물론 머리카락도 잘 썩지 않아 신령이 담겨 있다고 믿고, 설날에 이것을 태움으로써 잡귀를 몰아내는 효과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손사막은 중국 수나라 文帝 開皇 원년(581년) 산시성(陝西省) 요현(耀縣) 손가원촌(孫家塬村)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도사, 의사, 연금술사, 의학자로 명성을 떨친 인물이다. 그의 저서 《천금요방(千金要方)》 30권과 《천금익방(千金翼方)》 30권을 합쳐 천금방이라고 부른다. 상한론으로 유명한 장중경의 학설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는 그는 죽은 사람도 살리는 명의였다고 전해진다. 의술이 뛰어나 약신(藥神), 약왕(藥王)이라 불렸다.

지금은 두발 형태를 개인이 임의로 선택할 자유가 있지만, 1970년대 초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는 대한민국 국민이 머리를 기르거나 미니스커트를 입을 자유가 없었다. 군사독재정권은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을 감행하며 이 땅의 민주주의를 퇴보시켰다. 나는 장발 단속에 걸리지 않으려고 거리에서 경찰을 피해 다녔다. 부모님과 친구들은 머리를 자르면 될 것을 왜 쓸데없는 고생을 사서 하느냐며 못마땅한 시선을 던졌다. 자진해서 삭발을 하면 했지 타율에 의해 머리를 깎는 건 싫다며 나는 2천 년대 초반까지 잘 버텼다. 그 이후는 같이 사는 사람의 애정 어린 권유가 혼합된 강요에 굴해 단정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다니므로 더 이상 남의 호기심을 유발하지 않는다.

1990년대 중반 소수민족의 언어와 역사, 민속에 대한 필드 워크를 하느라 중국 운남성, 태국 북부 지역을 위시해 동남아 국가 산간지대를 돌아다니며 남자들의 두발 형태와 여자들의 모자나 머리 장식이 일종의 신분증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옛 문헌을 읽으면서 복식(服飾, 의복과 장신구)이 자신이 속한 집단을 알려주는 징표에 다름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 좌: 《出獵圖》 속의 거란인(契丹人). 五代 시기 거란인 胡瓌(호괴)가 그린 베르가치(berkutchi, 독수리 사냥꾼)의 모습. 우: 五代遼朝的胡壤가 휴식 중의 기사들을 그린 탁헐도(卓歇图)(部分1). 거란족의 두발 양식인 곤발 머리를 볼 수 있다.
▲ 좌: 《出獵圖》 속의 거란인(契丹人). 五代 시기 거란인 胡瓌(호괴)가 그린 베르가치(berkutchi, 독수리 사냥꾼)의 모습. 우: 五代遼朝的胡壤가 휴식 중의 기사들을 그린 탁헐도(卓歇图)(部分1). 거란족의 두발 양식인 곤발 머리를 볼 수 있다.

우리가 오랑캐라 치부하던 여진족의 청나라 남자들은 변발(辮髮)을 했다. 영어로는 queue 또는 cue라고 하는 변발은 편발(編髮), 치발(薙髮), 승발(繩髮), 삭발(削髮), 삭두(索頭) 등으로도 불리는데 앞머리 부분을 깎는 것이 주된 특징이다. 숙신, 실위, 거란, 선비, 오환, 흑수말갈, 여진족 등 북방 유목민족들이 이런 머리를 했다. 위만이 고조선으로 도망갈 때 오랑캐의 풍속인 상투를 틀고 오랑캐의 옷을 입었다 했는데 과연 어떤 행색이었을지 그려보자.
 
선비, 오환, 거란 등은 곤발좌임(髡髮左衽)을 했는데 곤발은 앞머리를 밀었다 해서 대머리 독(禿)과 터럭 발(髮)을 합쳐 독발(禿髮)이라고도 부른다. 좌임은 옷깃을 왼쪽으로 여민다는 말이다. 삭발(削髮)은 머리털을 남김없이 밀어버리는 것이다. 피발(被髮)은 머리를 풀어 늘어뜨린 것으로 실위족(室韋族)의 헤어스타일이 그랬다고 한다. 축발(祝髮)도 삭발과 같이 머리털을 바짝 깎는 것으로, 출가하여 까까머리 승려가 된다는 말로 사용된다. 체발(剃髮)이라고도 하는데, 머리를 미는 목적은 교만심을 없애기 위함이라고 『대지도론(大智度論)』은 말한다.
 
사실 변발(辮髮)은 땋은 머리라는 뜻의 말이다. 유목민들이 머리카락이 엉키지 않도록 승(繩)과 같이 땋음으로써 변발(辮髮)이라는 명칭을 얻었다. 중국에서 여자가 머리를 땋으면 그걸 변발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변발은 중국에서는 곤발(髡髮)이라고 한다. 정확하게 말해 변발의 범주에 곤발이 속하는 것이다. 우리가 변발이라는 한자어를 받아들일 때 땋은 머리라는 원 의미를 버리고 오랑캐들의 머리 모양이라고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The First Nations(제1국민)라고 불리는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땋은 머리매무새나 일본의 존마게(丁髷)까지도 변발로 간주한다.

변발(辮髮)은 앞 머리털을 밀고 뒤 머리털은 남겨 땋는 유목민의 머리매무새이다. 몽골족은 앞 머리털을 약간 남기고 옆 머리털을 양측으로 내려서 땋고 나머지 가운데 머리털은 민다. 만주족은 뒤 머리털만 조금 남겨서 한쪽으로 내려서 땋고 나머지 머리털은 다 밀어버린다. 몽골과 만주의 변발은 땋은 머리모양새가 두 갈래냐 한 갈래냐의 차이를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서 변발계(辮髮髻)가 보인다. 계(髻)는 상투를 말한다. 백제에서는 미혼녀(未婚女)는 머리를 땋아서 뒤로 한 가닥, 출가녀(出嫁女)는 두 가닥 늘어뜨렸다는 『주서(周書)』의 기록을 통해 변발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고려 말에는 개체변발(開剃辮髮)의 풍속이 있었다고 하는데, 개체변발은 몽고 특유의 풍속으로 머리의 주위를 깎고 남겨둔 정수리 부분 머리카락을 땋아 묶고 늘어뜨린 것(蒙古之俗, 剃頂至額, 方其形, 留髮其中, 謂之怯仇兒)으로 몽골어로는 겁구아(怯仇兒: 허헐/kekül/)라고 한다. 머리를 밀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관례(冠禮)를 치르기 전 처녀, 총각은 머리를 땋아 늘인 후 처녀는 홍색, 총각은 검은색 댕기를 늘이게 했다. 전치후변(前薙後辮)으로 앞머리는 깎고 뒷머리를 땋아 늘이는 만주족(滿洲族)의 변발 양식이었다.

▲ 곤발한 거란족 남자
▲ 곤발한 거란족 남자

중국 측 사서에 기록된 변발 유형을 족속별로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거란 곤발좌임(髡髮左衽): 머리를 길게 묶어 귀 양쪽의 앞 또는 뒤로 늘어뜨리며, 이마 앞쪽에는 머리를 모아 늘이기도 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거란국지契丹國志』 권23)

· 흉노 우문막괴 전발(鬋髮): 모두 머리를 깎되 정수리 일부분을 남겨 장식을 삼는다. 그것이 몇 촌 자라면 이를 짧게 잘라낸다.(『북사北史』 「흉노우문막괴전匈奴宇文莫槐傳」)

· 오환, 선비 곤발(髡髮): 정수리 부분 외 머리털을 모두 깎고 남겨둔 정수리 부분 머리카락을 작은 상투로 묶어 6촌 정도의 발변(髮辨, 땋은 머리)을 하여 한 가닥으로 세운다.

· 모용선비 피발(被髮): 머리를 풀어헤치는 풍속이 있다.(『진서晉書』 「재기載記」)

▲ 騎射圖(기사도), 야율배의 930~936년 경 작품
▲ 좌: 비작도(备猎图). 작자 미상의 요나라 묘실 벽화. 우: 팽임도(烹饪图). 작자 미상의 요나라 묘실 벽화
▲ 좌: 변발을 하는 모습. 우: 청나라 시기 변발의 변천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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