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강 최한기, 주자학의 공허함과 비현실성을 극복하고 조선유학을 일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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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강 최한기, 주자학의 공허함과 비현실성을 극복하고 조선유학을 일신하다
  • 김용헌 한양대·철학
  • 승인 2021.01.03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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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가 말하다

■ 저자가 말하다_ 『최한기의 기학과 실학의 철학』 (김용헌 지음, 예문서원, 560쪽, 2020.11)

독서와 저술

내가 혜강 최한기(1803~1877)를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시절 국사 교과서에서였다. 아마 1학년이나 2학년쯤이었을 텐데, 당시 최한기는 그 사상사적 위치가 ‘실학사상과 개화사상의 가교자’, 한마디로 조선 후기가 배출한 위대한 사상가로 자리매김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정작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가 몰락 양반층의 학자로서 1,000여 권의 저서를 남겼으나 그 책들 대부분이 소실되고 일부만 남아있다는 대목이었다. 무엇보다 1,000여 권이나 되는 책을 썼다는 것이 충격적이었고, 그 책들이 대부분 소실되었다는 것이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특히 몰락 양반층이라는 불운한 삶의 배경과 겹치면서 그 안타까움이 배가되었고, 배가된 안타까움은 그 까까머리 학생에게 언젠가 최한기를 연구해야겠다는 막연한 꿈을 갖게 했다. 

사실 최한기가 1,000권의 책을 썼다는 것은 다소 과장되었고 그 권이라는 단위도 오늘날과는 의미가 다소 다르긴 하지만, 그가 엄청난 독서광이었고 수많은 책을 쓴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는 좋은 책이 있으면 돈을 아끼지 않고 구입했고, 그런 까닭에 형편이 어려워져 노년에는 도성 안의 큰 집을 팔고 도성 밖으로 나가 샛집을 얻어 사는 처지가 되었으며 심지어는 자신이 쓴 책들을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빌릴 정도로 궁핍한 생활을 했다. 누군가 그에게 책 사는 데 너무 많은 돈을 쓴다고 걱정하자, 최한기는 “만약 책 속의 사람이 같은 시대에 살았다면 천 리 길일지라도 반드시 그를 찾아갈 것”이라면서, “지금 나는 가만히 앉아서 그를 만날 수 있으니, 비록 책을 사는 데 비용이 많이 들지만 먹을 것을 싸 들고 멀리 찾아가는 것보다 낫지 않겠습니까?”라고 답했다. 역시 그의 책 사랑은 남달랐다. 

그가 읽었던 책에는 『해국도지』·『영환지략』·『전체신론』·『서의약론』·『담천』 등 당시 중국에서 간행된 각종 과학기술서 내지 세계지리서가 망라되어 있다. 그는 이 책들을 통해 서구의 천문학·수학·의학·물리학·광학·전자기학과 같은 과학적 지식은 물론 세계 지리·역사·정치제도 등에 대한 깊은 통찰을 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30여 종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할 수 있었다. 주요 저술로는 『기측체의』(1836)·『지구전요』(1857)·『기학』(1857)·『인정』(1860)·『신기천험』(1866)·『성기운화』(1867)·『승순사무』(1868) 등이 있다. 

주자학에서 기학으로

최한기는 자신이 살던 시대를 동서 문명이 교류하는 시대로 파악하고, 서구의 과학 기술과 선진 문물을 받아들일 것을 역설했다. 그의 철학적 문제의식은 그러한 변화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제대로 대처하자는 것에서 출발한다. 변화된 세계정세 속에서는 옛것에 대한 고집이 아니라 무엇인가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최한기는 전 세계에 통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학문을 구상했다. 기의 존재론에서 출발하는 그의 새로운 학문, 즉 기학은 기존의 학문이 초래한 문제를 고치는 것이 목적이었다. 

최한기의 기학은 객관 존재[氣]-인식-승순(承順)-사무(事務)라는 4단계의 논리적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기로 이루어져 있다. 기는 인간의 의식과 관계없이 인간의 마음 바깥에 그 자체로 존재하며 그 자체의 법칙에 따라 운동변화 하는 객관 존재이다. 둘째, 기 및 기로 형성된 존재들은 유형의 존재이고, 따라서 경험 가능한 존재이다. 경험 가능하다는 것은 인간이 감각과 추론을 통해 그 운동변화의 법칙을 인식할 수 있다는 의미이며, 그의 철학에서 참된 인식은 객관 존재와 일치하는 인식이다. 셋째, 인간은 객관 존재의 운동변화 법칙에 승순해야 한다. 최한기 철학에서 선善은 바로 객관 법칙에 순응하는 실천이다. 넷째, 승순의 목적은 사무를 성취하는 것이다. 그의 승순은 사무와 결합되면서 객관 법칙에의 순응이라는 소극적인 의미를 넘어 객관 대상의 적극적인 활용과 이용을 함축하는 개념으로 거듭났다.

요컨대 최한기는 기의 존재론과 경험주의 인식론을 두 축으로 한 기학을 확립했다. 이는 당시 조선 사상계의 주류인 주자학과 일정한 선을 긋는 단절의 의미가 있다. 그는 주자학을 심학으로 규정하고 인간의 마음에만 매몰된 학문이라고 비판했다. 최한기 철학에서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주자학처럼 마음속에 있는 도덕적 본체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자연·인간·사회를 포괄하는 객관 세계의 법칙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에 걸맞은 실천을 할 것인가 하는 데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흔히 경험주의로 규정되는 최한기의 인식론은 과학적 지식을 정당화하는 이론을 넘어 그의 동서소통론과 세계평화론의 인식론적 토대이기도 하다. 

최한기가 제시한 철학 이론이 그 시대의 시대적 요구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충족시켰는지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그의 기학이 그 시대의 문제를 탈주자학적 관점에서 해결하고자 한 성찰의 결과물인 것만큼은 분명하고, 따라서 그것을 실학의 철학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더욱이 그 성찰이 서구의 것이면 무조건 좋다는 식의 맹목적인 서구주의와는 결을 달리한다는 점에서 제3의 근대화 모델이라는 의미로 읽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근대로 가는 길은 단일하지 않으며 더더욱 근대화가 서구화와 동일시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성찰은 조선후기 실학자들에게서 흔히 발견된다. 예를 들어 홍대용이 인물균등론을 기반으로 인간중심주의를 해체하고 탈중심주의적 사고를 전개한 것, 정약용이 천을 도덕적 감시자로 설정하고 이에 기초해 도덕적 실천과 제도 개혁을 역설한 것, 최한기가 기학과 경험주의 인식론에 근거해 대동의 세계평화론을 제시한 것 등은 그들이 먹고사는 것[器]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한순간도 도덕적 가치와 그 가치의 실현[道]에 대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를 한마디로 도기병진론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다.

물론 다른 실학자들의 철학도 마찬가지이지만, 최한기의 기학 역시 서구 열강의 자본주의적 본질, 더 나아가 제국주의적 특성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고, 그 결과 그 논의가 치밀한 현실 분석과 이에 기초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결여한 채 다분히 선언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졌다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국가 이기주의에 따른 갈등과 분쟁이 증폭되고 있고, 특히 패권 경쟁에 혈안이 된 제국주의의 망령들이 인류의 공존을 위협하고 있는 작금의 세계정세를 감안하면, 전 세계의 평화로운 공존을 지향했던 최한기 기학의 평화와 공존의 문제의식은 그 의미가 매우 크다.


김용헌 한양대·철학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안동대학교 국학부를 거쳐 현재 한양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조선 성리학, 지식권력의 탄생』(2010), 『야은 길재, 불사이군의 충절』(2015), 『혜강 최한기』(편저, 2005)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탈근대적 주체의 모색과 유가사상」, 「퇴계학파의 여헌 장현광 비판에 관한 연구」, 「16세기 조선의 정치권력의 지형과 퇴계 이황의 철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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