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신공항 건설 백지화의 기회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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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신공항 건설 백지화의 기회비용
  • 김태황 명지대·국제통상학
  • 승인 2020.11.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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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겨울철 연탄 나르기 봉사 3시간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봉사자의 주관적인 보람을 객관적으로 추정하기는 어렵다. 수혜자나 사회적 관점에서 고려해 볼 수 있는 한 방식은 봉사자가 그 시간 자신의 본업을 수행했다면 획득 가능한 가치로 환산해 보는 것이다. 시간당 2만 원과 5만 원의 소득을 창출하는 봉사자 2명이 3시간 동안 봉사를 했다면 최소한 각각 6만 원과 15만 원의 가치를 제공한 것으로 추산할 수 있다. 만일 이들이 이 시간에 각각 12만 원과 30만 원의 가치를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여가활동을 포기하고 봉사활동에 참여하였다면 이들의 사회적 가치는 본업의 통상 소득 수준의 2배에 해당될 것이다.

경제 과목 수능 문제에도 자주 등장하는 “기회비용”의 개념은 경제학의 핵심 논리 중 하나이다. 일상생활의 무수한 선택과 의사결정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회계비용과는 전혀 다르게 주체와 상황에 따라 상당히 탄력적이다. 한 남자, 한 여자를 선택하여 배우자로 삼는 결혼이 소중한 것은 전 세계인구 78억 명의 절반 가운데 이 한 사람을 제외한 (39억-1)명을 포기한 선택이기 때문이라고 학생들에게 우스갯소리를 한 적이 있다. 하나의 선택의 가치는 그 자체로서도 의미가 있지만, 더 큰 의미는 이 선택을 위해 포기한 것(들)의 가치를 통해서 평가된다.

지난달 김해신공항 건설 계획의 백지화는 막대한 사회적 기회비용을 초래했고 앞으로 더 큰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다. 그저 신공항 건설 부지가 바뀌는 정도가 아니다. 2006년 참여정부가 동남권 관문 공항 건설의 타당성을 검토한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 목적에 따라 사업 계획이 엎치락뒤치락하더니 이제는 아예 14년 전으로 되돌아갔다. 신공항을 활용하는 가치의 14년 분깃을 기회비용으로 지불했다. 가덕도 공항 건설 추진과 반대 사이의 지역 간 분열과 대립의 기회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전문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선택한 세계 최고의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 전문가들의 2016년 평가 결과를 폐기함으로써 최고 품질의 전문 평가 용역의 가치를 활용하지 못하는 기회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특히, 중대한 국책사업의 의사결정과 추진과정에 대한 정책 신뢰성을 상실하는 막대한 기회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점이 심각하게 우려된다.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의 합법적인 정책 결정에 항의하는 특정 지방자치단체의 지역 이기주의를 국무총리실이 오히려 합리화시키는 형식과 절차와 결과를 제공함으로써 ‘국가 정책’의 가치보다 ‘지역 정치’의 가치가 의사결정의 지배적인 기준이 되었다.

동남권 관문 공항 건설이 14년 동안 표류함으로 인해 건설, 물류, 문화관광, 지역 서비스 등 직간접적인 연관 산업 활동이 일어나지 못했다. 정부 예산 10조 원이 넘는 규모의 국책사업을 예비타당성 조사도 생략한 채 신속하게 건설하자는 특별법을 정치권에서 발의하여 전문가와 국민을 당혹스럽게 몰아가고 있다. 주관성, 편향성과 지역성의 정치를 선택함으로써 객관성, 공정성, 전문성, 타당성과 합리성의 정책을 포기한 것이다.

국민의 삶과 국가 정책에 산업과 경제가 항상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민의 일용할 양식 구하기에 제약을 가할 때에는 합당한 이유로 설득하여 동의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정치의 장기(長技)는 갈등과 분열을 해소하는 기술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역 중심 정치가 국가의 산업 경쟁력과 정책 신뢰도를 약화시키며 오히려 국민 갈등을 부추기는 촉발제가 되었다.

자연 질서에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처럼, 지불된 기회비용을 사후적으로 만회하려면 초기 비용보다 더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신공항 건설 비용은 10조 원 규모일지라도 2006년 이후 미래에 이르기까지 기회비용은 20조 원, 30조 원이 될 수도 있다. 만일 가덕도 신공항 건설이 재추진되어 순사용 가치가 이 기회비용을 상쇄시키지 못한다면 작금의 정치적 의사결정은 국민경제에 무거운 짐을 떠넘긴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김태황 명지대·경제학

현재 명지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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