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어떤 곳이고, 교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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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어떤 곳이고, 교수는 누구인가
  • 류동길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 승인 2020.11.2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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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칼럼]

한국의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고 인재양성의 요람인가, 세계에서 어느 수준에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가. 이런 질문에 어떤 답이 나올까. 대학은 위기다. 위기의 본질은 대학이 변화를 이끌어가기는커녕 변화에 따라가지 못해서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글로벌 인재포럼 2020’에서 존립이 위태로운 대학이 속출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코로나19로 원격교육이 전 세계적으로 일반화되면서 사라지는 대학이 나올 것이고 그 빈자리를 구글·페이스북 등 정보기술(IT) 업체가 운영하는 ‘기업 학교’가 메울 것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인공지능(AI)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어 인간은 인공지능에 많은 걸 빼앗기게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많은 정보와 지식의 활용은 인간만이 결정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창조적 지력(知力)이다. 대학이 창조적인 인재를 키워내야 할 이유다. 어떤 도전이든 제대로 대응해야 살아남는다. 수월성 교육을 규제하는 교육정책과 교육현장을 보라. 공교육이 무너진 자리에는 학원과 과외시장이 자리 잡고 번창한다. 교육의 본질 논의는 뒷전이고 수능시험 난이도 조정, 반값 등록금, 무상급식 등을 놓고 떠든 게 교육정책이었다.

대학발전이 더딘 까닭은 즐비하다. 우선 대학 스스로의 문제를 보자. 대학에는 정치권에 기웃거리는 이른바 폴리페서들이 많다. 대선판이 벌어지면 각 대선 캠프는 교수들을 정책자문위원이라는 이름으로 끌어모아 세를 과시하려 하고 수백, 수천 명의 교수들이 몰려든다. 그들이 정책자문을 한다는 것은 구실일 뿐 세 과시용 들러리에 불과하다.

진짜 정책 자문하는 걸 탓할 일은 아니다. 연구와 강의를 소홀히 하면서 사실상의 정치를 하는 것이 문제다. 세계 어느 나라에 수백, 수천 명의 교수들이 선거캠프에 모이는 경우가 있는가. 대학교수가 있을 자리는 연구실과 강의실이다. 세계 정상의 운동선수도 계속 연습한다. 그래야 최고 수준을 유지할 수 있고 또 그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 존 거던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후 “아침 일찍 연구실에 나가야지 뭘 하겠느냐”고 했다.

대학이 위기라는 또 다른 예는 총장 선거다. 세계적 대학행정 전문가들이 2001년 서울대를 사례로 집중 연구한 '초일류 대학의 조건' 보고서에서 내린 결론은 이렇다. "세계 수준의 대학으로 성장하려면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는 등 경영구조를 바꾸고 '최고경영자(CEO)형 총장'을 만들어라."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총장을 선거로 뽑는다. 교수, 교직원, 학생들까지 선거에 참여하니 캠퍼스가 정치판이 된다. 총장의 재임기간을 보자. 서울대의 경우 74년 역사에 총장은 27명, 평균 재임기간이 2.7년이다.

하버드대(384년-총장 28명-평균 재임기간 13.7년)와 프린스턴대(274년-총장 20명-평균 재임기간 13.7년), 스탠포드대(129년-총장 11명-평균 재임기간 12년)의 경우와 대비된다. 총장의 재임기간이 길다고 대학이 발전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세계 명문대의 경우 적격의 총장이 학교발전을 이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매년 10월에는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된다. 그때마다 우리는 노벨상 타령을 하다가 곧 잊고 만다. 그런 타령 그만두고 대학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한다. 인도 태생 미국의 천문학자 수브라마니안 찬드라세카르는 미국 위스콘신 주의 천체연구소에서 일하던 어느 날 시카고 대학으로부터 겨울학기에 고급물리학 특강 부탁을 받는다. 얼마 후 수강생이 2명뿐이라 취소해야겠다는 학교 측의 연락을 받았지만 강의하기로 결정, 매주 2번씩 위스콘신에서 시카고 대학까지 다니며 강의를 했다. 10년 후 1957년 그 두 학생(중국계 미국과학자 리정다오와 양전닝)은 공동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고 찬드라세카르는 1983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일찍이 일본 태생인 모리시마 미치오 런던대 경제학 교수는 '왜 일본은 몰락하는가'는 책에서 경제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교육과 정신의 황폐 때문에 일본은 몰락할 것이라고 했다. 이건 바로 우리의 이야기라고 해도 틀림이 없다.


류동길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밴더빌트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한국외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숭실대 경상대학장·중소기업대학원장, 중기청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한국중소기업학회 회장,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 국가발전연구포럼 공동대표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숭실대 명예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 <21세기 한국과 새로운 패러다임>, <한·미·일·대만의 중소기업 비교연구>, <공업화 전략의 이론과 실제>, <경제는 마라톤이다>, <경제는 정치인이 잠자는 밤에 성장한다>, <정치가 바로서야 경제는 산다>, 역서로는 <부와 빈곤>, <제로 섬 사회>, <현대경제학의 신조류>, <자본주의와 자유>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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