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의 이념을 넘어선 풍성함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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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의 이념을 넘어선 풍성함의 사랑
  • 백영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중문학
  • 승인 2020.11.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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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책, 나의 테제]

■ 나의 책, 나의 테제_ 『원한의 격정과 화해의 길 찾기: 현대 중국문학의 기독교 서사』 (백영길 지음,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384쪽, 2020.09)

아편전쟁 이후 펼쳐지는 근현대의 중국 역사에서, 봉건주의의 극복과 제국주의의 타도는 계급혁명과 민족해방을 위한 핵심적인 근대성의 푯대였다. 중국의 현대문학 개념이 이제까지 중국 대륙 중심의 신민주주의 역사 담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이유이다. 이 책은 현대의 중국문학에 구현되고 있는 그러한 사회 역사적 근대성의 추구 흐름을, 서구 문화의 근원적 가치인 기독교 정신과 관련된 ‘원한’의 개념에 의해 비판적으로 재검토하고자 한 연구의 결과이다.

책의 제목으로 삼은 ‘원한’과 ‘화해’의 함의는 독일의 철학자 막스 셸러(Max Scheler)가 니체의 반기독교적 ‘르상티망’(Ressentiment)론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면서, 서구 근대 역사에서의 평등성 이념을 극복하기 위해 제시한 기독교의 사랑의 원칙을 참조항으로 하여 설정한 대비적 구도이다. 실제로 셸러는 프랑스 혁명 이래 서양의 자본주의적 문명 속에는 기독교적 공동체의 파괴 및 ‘신성성과 세속성의 이원적 긴장’으로 야기된 ‘종교 ─ 형이상학적 절망감’에서 비롯된 원한 심리가 자리잡고 있다고 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자본주의 및 그 연장선에 있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숭상되는 평등의 이념은, 결국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복수하고 싶은 욕망이 만들어낸 ‘가치 적대’의 허위적인 도덕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와 대비되어 기독교의 본질적 가치를 이루는 예수의 내면적 사랑의 정신은, 신에 대한 사랑 안에서 이웃을 향해 ‘자신을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무제한의 풍요로운 사랑이라는 것이 그의 중요한 철학 담론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독교와 관련된 원한의 개념이 현대의 중국문학과는 어떠한 관련성이 있는 것일까? 여기에서 이와 관련한 중국의 기독교 문화비평가인 철학자 류샤오펑(劉小楓)에 의하면, 19세기 중엽 이후 서양 자본주의 열강의 역사적 침탈 과정 속에서 중국인들에게는 ‘자기비하와 오만의 다양한 조합’으로 구성된 ‘민족성의 원한 심리상태’가 작동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원한의 정서는 현대의 중국문학 속에서 마르크스주의와 중국의 문화 민족주의가 융합된 독특한 민족적 알레고리의 상징 구도를 통해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문학의 흐름 속에서 특히 니체와 관련된 원한의 구현 양상을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문학인은 루쉰(魯迅)이다. 실제로 니체의 안티크리스트에 나타나는 ‘근원적 종교성’에 대한 물음 및 기독교 비판과 예수의 형상을 참고로, 루쉰의 「복수(2)」에서 묘사되고 있는 예수의 십자가상의 수난 장면의 의미를 분석하면, 그 공동 접점은 ‘원한의 정념’이라는 해석 역시 가능하다.

▲ 루쉰과 저우쭈런
▲ 루쉰과 저우쭤런

이러한 각도에서 살펴볼 때, 일본의 한 중국문학 연구자도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듯이 루쉰의 국민성 비판 사상 속에 깃들인 중국 민중의 ‘노예성’에 대한 엄혹한 해부는 기실 ‘니체의 약자의 원한과 복수의 감정(Ressentiment)의 심리학’으로부터 결정적인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논평은 매우 시사적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일찍이 루쉰의 제자인 후펑(胡風)이 루쉰 문학 정신의 핵심으로 제시한 ‘Passion’의 개념, 즉 중일전쟁 시기 그가 ‘우리 시대의 열정’이라고 부른 리얼리즘론에 함유된 니체적 파토스를 상정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관점일 터이다. 이 책의 부록으로 실린 중일전쟁 시기 중국의 ‘전국책파(戰國策派)’에 나타나고 있는 니체의 미학과 낭만주의적 민족주의 이념, 그리고 같은 시기 일본에서 출현한 ‘일본낭만파’의 ‘근대의 초극’론에서 노정되는 ‘낭만주의 문학의 세속화 혹은 가치의 전도 현상’ 역시, 이러한 루쉰의 문학 정신과 관련한 ‘원한’ 담론의 악순환적 반복과 확장의 성격을 띤 혁명과 전쟁 시기의 동시대적 문학구도였다는 해석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뚜렷한 현대 중국문학의 사회 역사적 근대성의 추동 동력을 이루는 원한의 격정이 구현된 주류적 문학과 대비되는, 기독교의 사랑의 종교성에 바탕을 둔 화해의 길 찾기는 어떠한 문학적 궤적을 형성하였을까. 여기에서 1920년대의 ‘비기독교 운동’과 국민혁명기의 문화 환경 하의 첨예한 민족적·계급적 갈등 구도 속에서도, 종교의 본질이 궁극적으로는 원한과 복수의 현실 악을 넘어선 사랑과 죽음을 통해 구현되어야 가치임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던 루쉰의 동생 저우쭤런(周作人)의 문학사적 의미는 충분히 주목될 만하다. 실제로 이 시기 저우쭤런의 문학비평 및 창작 활동에서 발견되는 원한의 정서에 대한 부정과 초월의 미학적 시도, 특히 민족적 원한에 대한 자각적인 비판의식과 함께 퇴폐적 미의식을 통한 일종의 종교적 사랑의 미학적 상상력은 중요한 연구 과제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에서 현대 중국문학의 기독교 서사로서 다뤄지고 있는 문학 비평 담론과 작가들의 작품은, 그런 점에서 주류 문학사에서는 중시되지 않거나 때로 비판과 배제의 대상이 된, 그러면서도 여전히 그 존재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미완의 서사의 궤적인 셈이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이념과 체제의 분단 현실 속에서 가장 혹독하게 근대성의 원한을 체험하면서, 그리고 어쩌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가장 절실하게 기독교의 사랑과 화해의 구원을 갈망하는 우리의 동시대적 공감대를 통해,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내는 순례의 자취일지도 모르겠다.

▲ 천잉전(陳映眞)
▲ 천잉전(陳映眞)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사회주의나 자본주의라는 사회체제의 틀, 또는 대륙과 타이완이라는 공간적 분단 현실을 넘은 종교적 구원과 화해에의 길을 찾고자 했던 당대 타이완의 진보적 좌익작가 천잉전(陳映眞)의 문학 생애는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가 1980년대 말 한국 기독교의 민중신학 운동 속에서 발견했던 ‘미국의 패권주의에 의한 독점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한 통렬한 반성 및 ‘사랑과 희망’의 신앙 역시, 결국은 그가 견지했던 ‘사회주의 방향, 제3세계 입장, 민족주의 이해’라는, 현실 사회주의 이념의 위기 이후 ‘그가 새롭게 구축한 이상주의와의 결합’이라는 자장권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현대 중국문학의 기독교 서사를 관통하는 특징 혹은 그 한계를 정리해 본다면, 그것은 궁극적으로 기독교를 개별적 신앙의 종교로서보다는 민족·국가적 정치 이념 및 사회·역사적 공리성의 측면에 기울어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기독교 서사에서 추구되어온 그러한 집단적 심리와 공리성의 종교관 속에 잠재된 중층적 형태의 ‘민족성의 원한’이야말로, 21세기에 접어든 현대 중국문학이 보다 진정한 기독교 서사를 구현해 나가는 도정에서 극복해야 할 여전한 현재 진행형의 최대의 난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백영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중문학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중어중문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일본 와세다대학 대학원에서 중국 현대문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일전쟁 시기 중국의 리얼리즘 문학운동에 대한 연구 이후, 현대 중국문학에서의 낭만주의를 포함한 다원적인 문학사조와 특히 기독교의 종교성에 관한 미적 근대성의 탐색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중국 항전기 리얼리즘 문학논쟁 연구와 현대의 중국문학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현대 중국문화 탐험⟫이 있다. 현대 중국문학에 관한 3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 중어중문학과 명예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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