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수화물의 축복과 저주
상태바
탄수화물의 축복과 저주
  • 김환규 서평위원/전북대·생리학
  • 승인 2020.10.18 1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리베르타스]

식량은 인류의 생존에 절대적인 요소이다. 많은 육종가들의 노력으로 전 세계적인 식량 생산량은 비약적으로 증가하였다. 20세기 들어 인류를 기아로부터 구한 인물이 보로그(N. E. Borlaug)이다. 1914년에 미국에서 태어난 그는 1942년에 미네소타 대학에서 식물병리학과 유전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보로그는 1944년에 록펠러 재단의 후원으로 멕시코에서 밀의 수확량을 늘리기 위한 육종연구를 진행하였다. 그는 키가 작은 형질의 <앉은뱅이> 밀 품종과 다수확 밀을 교배하여 줄기가 튼튼한 다수확 종 ‘소노라’를 육종하였다.

1956년까지 ‘소노라’ 계통의 품종들은 멕시코의 밀 생산량을 두 배로 증가시켰으며 1963년에는 멕시코에서 재배되는 밀의 95%가 ‘소노라’ 계통이었다. 휴스턴 대학의 경제학자인 그레고리(T. K. Gregory)는 “녹색혁명의 핵심은 곡물혁명이며 보로그의 밀은 전 세계 칼로리의 약 23%를 차지한다”고 지적하였다. 보로그가 육종한 ‘소노라’는 10억 명 이상의 인류를 기아로부터 구제하였으며, 기아퇴치에 대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밀의 경우에서 보듯 인류의 주된 에너지원은 탄수화물이다.

탄수화물은 현대의 식품 생산과정과 소비패턴의 변화로 인류의 축복이자 저주의 이름이 되었다. 탄수화물은 에너지의 공급원이자 생명체의 구성성분이다. 탄수화물에는 단당류인 단순당과 다당류인 복합당이 존재한다. 과일과 유제품에 존재하는 단순당은 체내에서 보다 쉽게 분해되어 신속하게 에너지를 공급한다. 단순당은 가공되어 백설탕과 흰 빵 같이 정제된 식품으로 변형되기도 한다. 이에 비해 복합당은 체내에서 소화되는데 시간이 더 걸리며 채소와 가공되지 않은 온전한 낱알 곡식과 현미 등에 존재한다. 온전한 곡물 시리얼을 섭취하면 입상 시리얼을 섭취할 때보다 포만감과 에너지가 더 오래 유지된다. 탄수화물은 신체의 항상성 유지, 뇌의 발달, 장 건강과 활동성에도 관여한다. 그러나 필요량 이상의 탄수화물을 섭취하면 건강이 크게 위협받게 된다. 필요량을 초과했을 때는 탄수화물이 지방으로 전환되어 비만을 초래하게 된다. 탄수화물은 뇌가 원하고 보상받고 싶어 하는 좋은 맛을 갖고 있다. 탄수화물은 뇌에서 도파민 방출을 자극한다. 탄수화물의 소비에 따라 신체는 보다 많은 도파민 수용체 생성을 자극하여 더 많은 탄수화물을 갈구하게 되고 그 결과 부적절한 탄수화물-소비 주기가 초래된다.

탄수화물의 과다섭취는 만성질환을 일으키며 그중 하나가 당뇨병이다. 당뇨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세포는 인슐린에 대해 저항성을 가져 포도당의 이용 능력이 감소된다. 많은 연구 결과 고농도로 탄수화물을 섭취하면 암세포의 발생이 유도된다고 알려졌다. 혈류에 많은 양의 탄수화물이 존재한다면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가 넘쳐 암세포는 더욱 증식할 것이다. 탄수화물과 관련된 또 다른 위협은 간의 건강이다. 탄수화물의 절반은 포도당이고 절반은 과당이다. 간은 과당을 대사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기관으로 다량의 과당이 간에 유입되면 과당은 지방으로 전환된다. 탄수화물은 또한 노화 과정을 촉진시키는데 이 과정은 혈당 농도가 과도하게 높을 때 일어나는 ‘당화’ 때문이다. 탄수화물은 피부의 탄력성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콜라겐과 엘라스틴 생성을 억제하는 ‘최종당화산물’을 생성한다.

단순당이 소화되면 인슐린 농도가 증가되어 신속하게 에너지로 사용된다. 이것은 에너지 수준이 고갈되었을 때 신속한 에너지원으로 캔디 바를 섭취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복합당은 소화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며 따라서 더 지속된 에너지를 공급하고 체내의 인슐린 반응을 감소시킨다. 신체가 과도한 포도당을 생성하면 간과 근육세포에서 글리코겐으로 저장되었다가 에너지를 다량 필요로 할 때 사용된다. 간이나 근육세포에서 글리코겐으로 저장되지 않은 여분의 포도당은 지방으로 저장된다.

▲ ‘식품의 방어’ - 저자 Michael Pollan
▲ ‘식품의 방어’ - 저자 Michael Pollan

인간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극히 어렵다. 현대의 놀랄만한 식품과학의 발달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는 더욱 그렇다. “온전한 식품을 먹되 적게 먹고 되도록 식물성 식품을 섭취하라“ 이 글귀는 2008년에 출간된 ‘식품의 방어‘(In Defense of Food)라는 책에서 폴란(M. Pollan)이 주장한 것이다. 신체가 적절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양의 탄수화물을 섭취해야 한다. 빈곤의 터널을 지난 지금, 대부분의 성인들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조차도 탄수화물 과잉섭취로 인한 비만과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많은 시간과 경비를 지출하고 있다. 범위를 좁혀서 탄수화물은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먹을 것인가? 폴란의 주장에 따르면, 가공된 식품이 아닌 온전한 형태의 식품을 섭취해야 한다. 즉, 영양분이 아닌 식품을 섭취해야 한다. 정제•가공된 탄수화물이 아니라 온전한 곡물과 과일 등을 섭취하는 것이 좋은 선택이다.

지난 몇십 년간의 획기적인 사회변화 과정을 거치면서 어머니들이 갖고 있던 식품에 대한 전문가적 식견은 과학자들과 식품 제조업자들의 몫이 되었다. 현대인들은 온전한 형태의 식품이 아니라 영양학적 측면에서 식품을 분석하면서 섭취한다. 예를 들어, 오렌지를 먹으면서 전체적인 효과가 아니라 비타민 C를 섭취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각각의 영양분이 아니라 온전한 식품을 섭취해야 하며 식품은 그 자체가 보유하고 있는 각 영양분의 효과와 다른 통합적 효과를 나타낸다. 식이성 섬유, 비타민 E, 엽산, 철, 마그네슘 등이 잘 조화된 음식을 섭취한 경우보다 온전한 형태의 곡물이 포함된 음식을 많이 섭취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건강하다는 보고가 많다. 어떤 식품이건 그 속에 들어 있는 영양분의 함량보다 가공이 얼마나 이루어졌는가를 살피는 게 중요하다.


김환규 서평위원/전북대·생리학

전북대 생명과학과 교수. 전북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 교환교수, 전북대 자연과학대 학장과 교양교육원장, 자연사박물관 관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생명과학의 연금술』, 『산업미생물학』(공저), 『Starr 생명과학: 생명의 통일성과 다양성』(역서)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