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의 정치화 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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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의 정치화 방지
  • 최기련 아주대학교 명예교수·에너지경제학
  • 승인 2020.10.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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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칼럼]

올해 초까지 에너지 부문의 최대관심은 기후변화 문제였다. 인류 미래를 결정할 가장 큰 걱정거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후변화의 직접 요인인 온실가스 배출의 80% 이상이 에너지 부문에서 일어난다. 따라서 그 해결의 가장 큰 책임도 에너지 부문에 있다. 신재생 등 새로운 에너지원의 개발과 에너지 사용 효율화가 강조되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그러나 기후변화 문제는 우리 개인 차원에서 시급한 과제로 보지 않는 면이 크다. 오늘 내가 발생한 온실가스가 바로 내일 내게 해로운 것도 아니고 우리 국가에만 위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지구 공동체 문제이다. 따라서 그 해결책임과 연관 비용을 타인에게 전가하고자 하는 욕구가 크다. 아마도 책임지지 않는 속칭 ‘공유지의 비극’이다. 그런데 최근 에너지 부문에 새롭게 등장한 최대관심사는 ‘코로나19’사태이다. 코로나는 원치 않는 모두에게 치명적인 감염 피해를 줄 수 있다. 그만큼 시급성과 민감성 차원에서 다른 모든 이슈를 압도한다. 기존 가치체계를 대신할 속칭 ‘뉴-노멀(Normal)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에 그 완전 종식 때까지 그 파급효과의 정확한 분석이 불가능하다. 이러하니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된 올해 초 이래 국제 석유 가격은 대략 반 토막이 나고 소비량도 20% 수준 줄었다. 지난 50년 이래 최악의 시장 여건이다. 이는 방역을 위한 범세계적 봉쇄(Lock-Down)조치로 인력과 재화, 서비스의 이동과 교류자체가 급감하였기 때문이다. ‘움직이는 힘’인 에너지의 존재 자체가 부정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의료계의 노력 등으로 코로나 사태가 진정된 이후에도 에너지 시장이 코로나 사태 이전 상태로 회복이 가능한지가 관심의 대상이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는 비관적인 면이 많다. 2030년경부터 석유, 석탄 등 화석시대 종말이 가시화되고 신재생-전력 시대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지구온난화를 방지할 수 있는 2050년 대기온도 섭씨 2도 이하로의 상승억제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결국 기후변화 문제는 지구 탄생 이래 오랫동안 축적된 외부효과(Externality)이다. 따라서 그 외부효과 축적 수준에 대한 명확한 계량적 검증과 평가가 아직은 어렵다. 따라서 기후변화 파급효과는 아직 ‘완전한’ 진리라 할 수 없다. 예컨대 비교적 많이 계량화된 UN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보고서도 산업화 이후 지난 200여 년을 넘지 않는 최근의 기후변화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 결과로 기후변화는 인간의 활동에 의해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는 수준의 결론을 제시하였다. 인간의 활동이란 대부분 에너지 생산과 소비 활동으로 추정된다. 이런데도 많은 환경론자들은 이를 ‘완전한’ 진리로 간주한다. 온갖 현안들의 원인을 기후변화로 간주한다. 올해 잦은 장마와 태풍 피해를 불가항력적인 기후변화 탓으로 간단히 돌린다. 국민 폐해는 당연한 것으로 간주한다. 기상예보능력에 대한 언급은 부족하다. 내년 이후 피해감축 대책의 예측과 제시도 학계의 궁극책임이다. 이에 엄격한 검증과정을 거친 과학적 접근이라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지금 기후위기 시대에서 환경전문가들의 역할과 가치가 커질 것은 분명하다. 과학적 분석과 예측은 그들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제한된 지식 능력을 가진 환경 부문 사회 활동가들이 정통 학자들을 대신하여 현자(賢者)로 등장하는 사태는 반드시 막아야 할 것이다.

사실 여러 학문영역 개입이 불가피한 복합과학적(Multi-Disciplinary) 접근이 이루어질 경우는 단일 학문의 정교함과 엄격한 검증과 예측 과정이 손상되기 마련이다. 1+1이 2가 아니고 융합 수준과 강도에 따라 5도 되고 0.5도 된다는 의미이다. 시대와 시장 여건 변화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다. 따지고 보면 18세기 산업혁명 때에는 물리학이나 기계공학에 기반을 둔 에너지 기관(엔진) 효율 부문이 가장 중요한 에너지 문제 해결과제이었다. 그 후 석유 등 연료수송, 활용기술개발이 최고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70년대 석유 위기 이후에는 신-재생에너지 기술 가치가 높아졌다. 그러나 기술혁신의 지연으로 지난 40년 부진하였다. 이런 부진 상은 기후변화 등 환경요인 고려 증대 필요성으로 일거에 핵심과제로 변하였다. 이제는 다른 종류의 에너지로의 ‘전환’과 융합, 그리고 에너지-환경기술 복합화 추세가 활발하다. 이런 과정에서 배출권 거래 등 새로운 사회경제 과제들이 기술 문제와 연계되고 있다. 복합화 과정이 심화되고 다양한 가치체계가 중합되고 있다. 복잡한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있다. 이에 전문성보다 정부정책 부합도가 더욱 중시되기도 한다. 이에 에너지 산업과 기술 부문의 ‘정치화’ 열풍은 이제 우려할 만한 수준에 달했다. 관련 학자들의 신뢰는 저하되고 복합과학으로서의 에너지 학(學)의 질적 제고는 정체되었다. 그 결과로 복합과학적 에너지 문제 해결능력 부족은 당연한 것이다.

‘정치화’ 열풍은 반드시 시장 실패를 유발하고, 결국은 국민 부담으로 귀결한다. 더욱이 관변(官邊)화된 시장과 산업은 자신들의 단기 이익을 위해 더 많은 시장 실패를 용인한다. 심지어 유발하기도 한다. 결국 전문지식과 문제해결 능력이 없는 용감한 ‘반(反)풍수’들이 정치적 고리를 배경으로 득세하게 된다. 정통 에너지 전문가들마저 ‘정치화’된 ‘반’풍수들로 변신할지가 걱정이다. ‘반(半)풍수 집안 망친다’라는 옛말이 생각난다. 제발 국민생명을 지키는 의료전문가들은 그런 오해를 받지 않기 바란다.


최기련 아주대학교 명예교수·에너지경제학

아주대 에너지학과 명예교수로 서울대학교 자원공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Grenoble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에너지자원기술개발지원센터 소장, 과학기술정책관리연구소 단장, 고등기술연구원장, 한국 에너지공학회 회장, 차세대 성장 동력 포럼 회장,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종합조정 실무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에너지와 기후변화>, <파워 플레이>, <에너지경제학>, <지속가능한 미래를 여는 에너지와 환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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