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그들을 움직이게 했는가
상태바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게 했는가
  • 최승연·청강문화산업대 공연예술스쿨/뮤지컬평론가
  • 승인 2020.10.11 1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승연의 뮤지컬 인사이트]

공연 시장이 ‘언택트 온라인 공연’을 실험하고 있다. 특히 뮤지컬 업계는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인 온라인 (생)중계 플랫폼을 활용하여 비대면 온라인 공연을 ‘유료화’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모양새다. 국내 시장에 없었던 장을 새로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 축적된 자본도 기술적 노하우도 없는 상황이라 시도 자체가 매우 도전적일 수밖에 없다.

사실 그동안 온라인 공연에 대해 업계 안팎에서는 크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공연은 객석과 무대의 직접 대면에 의해서만 본질적인 소통이 가능하다는 의식이 지배적이고, 예상 수익이 많지 않거나 충분한 자원이 없는 상황에서 온라인 공연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문제 역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상황은 온라인 공연을 강력하게 자극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몇 가지 기획과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뮤지컬 업계에서 온라인 공연의 가능성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주관한 ‘K-뮤지컬 온 에어’ 실행 이후 대두되기 시작했다. 2017년부터 ‘대학로 뮤지컬 외국어 자막지원’ 사업을 주관해온 한국관광공사는 해당 사업의 선정작인 <팬레터>, <여신님이 보고 계셔>, <적벽>, <더 픽션>의 온라인 공연을 8월 31일~9월 3일까지 4일간 시리즈로 ‘무료’ 오픈했다(자막은 영어, 중국어, 일본어가 지원됨). 그 결과 누적 관람수 총 260만 뷰(네이버TV 236만 뷰, 네이버 V LIVE 24만 뷰)를 기록했는데, 이 수치가 내국인과 외국인(특히 중국 관객들)의 뷰수를 합한 것이라는 사실은 매우 중요했다. 국내에서 이미 검증된 작품의 ‘확장성’이 온라인 공연에 적합한 요소라는 반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미 중화권에서 공연된 적이 있는 <팬레터>, <여신님이 보고 계셔> 외에 <더 픽션> 역시 중국 공연 제작사 씨뮤지컬과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여 2020년 12월 상하이 공연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은, 온라인 공연이 단순히 국내 관객에게만 의존하고 있지 않음을 알려준다. 극히 제한된 상황이지만, 한국 뮤지컬의 ‘관광 상품화’라는 관광공사의 니즈와 뮤지컬의 ‘시장 확대’이라는 업계의 오래된 니즈가 온라인 공연을 통해 조율된 것이다. 
 
이러한 흐름 위에서 ‘유료’ 온라인 공연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데, EMK뮤지컬컴퍼니, 라이브(주), 서울예술단, 신스웨이브의 행보가 주목된다. 차례로 <모차르트>, <귀환>, <잃어버린 얼굴 1895>, <광염소나타>를 제작사의 온라인 공연작으로 선택하고, 각각 네이버 V LIVE, ㈜라이브커넥트, 네이버TV 후원 라이브, 국내 플랫폼 프레젠티드라이브 & 일본 아사히 TV 계열사인 테레 아사 동화(テレ朝動画)를 플랫폼으로 활용했다. 선택된 플랫폼들은 각 제작사의 기획방향 및 기존 인프라에 따른 것이었는데, 국공립예술단체인 서울예술단을 제외하고 모두 온라인 공연의 글로벌한 소구력을 지향하고 있음을 명확히 했다. 이미 해외팬이 많은 김준수를 대표로 하여 한류 온라인 (생)중계 플랫폼으로 자리를 굳힌 네이버 V LIVE를 활용한 <모차르트>, 아이돌 배우를 대거 캐스팅하여 해당 아이돌의 해외팬을 뮤지컬 관객으로 흡수하려는 <귀환>과 <광염소나타>는 온라인 공연의 실험을 사실상 한류의 자장 안에 두었다. 일본 관객이 가장 많은 뷰수를 차지했던 <광염소타나> 온라인 공연은 아이돌로 캐스팅 라인업을 채워 한류로 일본 시장을 공략하던 초창기 창작뮤지컬의 일본 수출붐을 상기시키는 면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한 가지, <귀환> 온라인 공연에서는 흥미로운 지점이 보인다. <귀환>은 올해 6월, 예정되어 있던 공연을 취소하며 진행했던 네이버 V LIVE ‘무료’ 공연이 280만 뷰를 기록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9월 24일~26일 사이에 4회 유료 온라인 공연을 완료했다. 유료 공연은 ㈜인터파크와 파트너십을 구축한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 ㈜라이브커넥트(LIVE CONNECT)의 플랫폼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었는데, 이에 따라 영상 생중계는 ‘한국영상연합’이, 송출은 ‘라이브커넥트’와 ‘빵야네트웍스’가 협업하여 진행하는 방식을 선보였다. 세 업체는 모두 영상제작업과 관련된 중소기업으로서, 이중 빵야네트웍스는 ‘빵야TV라이브’라는 콘텐츠 플랫폼을 운영하며 대중음악 아티스트들의 팬미팅과 공연을 생중계하는 등의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만큼 기존 인프라 베이스의 새로운 플랫폼을 활용하여 기술력을 확보하겠다는 의지가 명확했다.

이에 따라 <귀환> 온라인 공연은 생생하게 현장을 ‘전달’하는 데 충실했다(물론 영상 송출에서 작은 실수들이 있긴 했다). 동시에 주요 인물에 캐스팅된 군복무 중인 아이돌의 모습 역시 생생하게 잡아냈다(<귀환>은 육군 본부 주관의 공연이라 군복무 중인 군인들을 배우로 캐스팅한다. 이번 온라인 재연은 워너원의 윤지성, 엑소의 도경수, FT아일랜드의 이홍기, 엑소의 김민석, 인피니트의 이성열, 그리고 여자 아이돌인 구구단의 김세정이 라인업을 채웠다). 해당 아이돌의 팬이라면 가까운 거리에서 아티스트의 공연을 나름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감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팬-관객으로서는 가장 큰 이점이 아닐 수 없다(혹자는 <모차르트> 온라인 공연을 ‘김준수의 세밀화’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배우들은 랜선 관객들을 상상하며 공연에 충실했다. 객석은 비어 있었지만 인물의 정서와 감정, 그리고 전체 드라마를 구현하기 위해 약속한 대로 움직였다. 그렇다면 관객과의 ‘직접 대면’ 없이 그들을 움직였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6.25 전쟁에서 사망한 군인의 유해를 발굴하여 이름 없이 죽어간 자들의 자리를 복원한다는 드라마는 국가주의와 애국심이라는 창작뮤지컬의 오래된 지향을 소환한다. 

따라서 현재까지 유료 온라인 공연의 실험은 ‘한류’와 ‘국가주의’ 담론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 다음은? 만약 온라인 공연을 지속해야 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다룰지 미학적 실험이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자크 랑시에르가 말한 대로, 한 방향으로 매개된 카메라의 눈을 통해 퍼포먼스의 다양성을 삭제하여 관객을 ‘무지한 상태’로 만드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최승연·청강문화산업대 공연예술스쿨/뮤지컬평론가

런던대학교(로열 할러웨이)에서 연극학 석사를, 고려대에서 국어국문학 박사를 했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국제한국학센터 연구교수, 워싱턴 대학교(시애틀) 동아시아학과 객원연구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공연예술스쿨 교수로 있다. 주요 논저로는 “한국 창작뮤지컬에서 재현된 서울의 양상”, “여성국극의 혼종적 특징에 대한 연구”, “한국적인 것’의 구상과 재현의 방식”, “번역된 문화와 한국적 디코딩”, “‘근대적 지식인 되기’를 향한 욕망의 서사”, 『제국의 수도, 모더니티를 만나다』(공역)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