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다리로 연결된 천혜의 두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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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다리로 연결된 천혜의 두 섬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 승인 2020.09.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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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숙의 여행이야기]_경남 통영 연대도와 만지도

눈부신 윤슬에 덮인 바다에 검은 낚싯배들이 점점이다. 방파제에서 낚시하는 청년들도 점점이다. 문득 포도알 같은 고독이 그리워져 눈앞이 아슴아슴해진다. 배가 출발한다. 통영의 달아항. 달아. 달아. 코끼리 어금니는 초승달을 닮았다. 만을 빠져나가는 동안 배를 쫓는 갈매기는 하나도 없다. 먼저 학림도(鶴林島)에 선다. 몇몇 사람이 내리자 배는 지체 없이 떠난다. 서쪽의 작은 섬 저도(楮島)를 지나 남쪽의 큰 바다로 나아간다. 가두리 양식장들이 지천으로 펼쳐져 있다. 갈매기들은 모두 이 바다밭의 밭둑에 앉아 있다. 정적이고 노골적인 생명력이다. 저기 앞에 출렁다리로 연결된 두 개의 섬이 보인다. 왼쪽은 연대도(烟臺島), 오른쪽은 만지도(晩地島)다.

▲ 왼쪽은 연대도, 오른쪽은 만지도. 두 섬은 출렁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 연대도 정경. 왼쪽은 해발 220m의 연대봉, 오른쪽은 나지막한 야산으로 마을은 그 사이 구릉에 이 옹기종기 들어서 있다.
▲ 너른 물량장 가운데 파란선을 따라간다.

연대도의 정상은 연대봉이다. 해발 220m 정도로 주변 섬들에 비해 산정이 우뚝해 조선시대에는 봉화대가 있었다. 그래서 섬도 봉우리도 연대(烟臺)다. 섬의 왼쪽에 덩치 크고 가파른 연대봉이 솟았고 오른쪽으로 나지막한 야산이 이어진다. 그 가운데 낮은 구릉지에 마을이 오밀조밀 들어서 있다. 등대를 지나 나루에 닿는다. 물양장이 넓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간이식당과 정자, ‘비지터 센터’와 마을회관, 그리고 연대도 경로당인 ‘구들’이 줄느런하고 그 너머 연대봉아래에 집들이 차곡차곡 앉았다. 언덕에는 태양광 판이 보인다. 주민들 대부분이 태양광으로 생활하고 마을 내 공공시설은 모두 태양광과 지열로 냉난방한다고 한다. 그래서 섬의 또 다른 이름은 ‘에코 아일랜드’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 백옥 같은 마을회관. 2층은 비지터 센터다.
▲ 벽화가 있는 첫 번째 골목. 몽돌해변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 두 번째 골목 앞에 ‘별신장군’ 비와 ‘사패지해면’ 기념비가 나란히 서 있다.

바닥에 그려진 파란선을 따라 간다. 파란선은 통영의 6개 섬을 묶은 ‘한려해상 바다 백리길’의 표식이다. 이곳 연대도에는 ‘지겟길’이 있다. 바다와 마주한 집들 사이사이로 골목길이 여럿이다. 벽화가 있는 첫 번째 골목은 몽돌해변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두 번째 골목 앞에는 두 개의 비석이 있다. 길을 떡하니 막고 선 것은 ‘별신장군(別神將軍)’ 비석이다. 매년 정월 초순에 좋은 날을 받아 이곳에서 제를 지낸다. 옆의 작은 것은 ‘사패지해면(賜牌地解免)’ 기념비다. 사패지는 임금이 내려주는 논밭을 뜻한다. 연대도는 섬 전체가 1665년 충무공을 모신 충렬사의 사패지로 지정되었고 주민들은 소작농이 됐다. 1949년 농지개혁이 일어났지만 일부 대지와 전답은 여전히 충렬사 사패지로 남았다가 1989년 8월 7일 마침내 섬 주민들의 소유가 됐다. 비석은 그날을 기념해 세운 것이다.

▲ 파란선이 이어지는 세 번째 골목. 계속 오르면 지겟길 입구다.
▲ 지겟길 입구. 지겟길은 섬의 5부 능선을 한 바퀴 도는 길로 총 길이는 약 2.2km.
▲ 연대도 몽돌해변. 몽돌의 크기는 다양하며 무척 깨끗하다.

파란선은 세 번째 골목으로 들어선다. ‘마늘농사를 많이 지으면서 부지런하고 착한 할머니가 산다는 박말수 할머니댁’, ‘팽나무가 오래된 집’, ‘윷놀이 최고 고수의 집’, ‘노총각 어부가 혼자 사는 집’, ‘연대도에서 가장 똑똑한 천성금 할머니 댁’, ‘꽃이 있는 풍경 어정자 할머니 댁’, ‘춤사위가 아름다운 염상근 노인 회장댁’을 지난다. 차곡차곡 오르는 마을길 위에 또 차곡차곡 가꾸어진 밭들이 이어진다. 밭들을 지나면 ‘지겟길’의 입구가 나타난다. 옛 사람들이 나무를 하러 다니던 길이다. 지게 너비만큼의 좁장한 산길이 섬의 5부 능선을 한 바퀴 가로지른다. 동네 노인들은 ‘지겟길 걸어 나무하러 다니지 않아도 되고, 동력선 타고 다니며 고기 잡고 통영도 나가는 천국 같은 세상’이라고 한다. 멧돼지가 출몰한다는 경고가 붙어있다.

▲ 몽돌해변의 오른쪽은 암석지대로 솟구친 기암과 황토빛깔의 괴석이 절경을 이룬다.
▲ 연대도 야산의 솔숲 사이로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 소나무 오솔길 끄트머리에 출렁다리가 있다. 다리 너머가 만지도다.

밭 아랫길을 따라 산성교회를 지나 몽돌해변으로 내려선다. 해변의 오른쪽은 암석지대다. 솟구친 기암과 괴석들 사이 검푸른 바다가 까마득한 벼랑 같다. 차갑고 신선한 바다로 온 몸이 새로워진다. 해안을 벗어나 야산의 오솔길로 들어선다. 엄청난 둥치의 소나무가 여럿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파랑, 빨강, 주황 등 색색의 지붕들이 어여쁘다. 옛날 만지도에는 해마다 30명 정도의 제주도 해녀들이 물질을 하러 들어왔고 머구리배가 20척이나 있었다고 한다. 술집은 7곳 있었다. 사람들은 만지도를 돈이 많은 ‘돈섬’이라 불렀다. 소나무 숲길의 끝 지점에 다다르자 먼 바다에서 보았던 출렁다리가 코앞이다. 그 너머에 만지도가 웅크리고 있다.  

▲ 만지도 산책길과 사구해안.
▲ 만지도 옛길. 대숲과 동백의 터널을 지나면 마을이다.

만지도는 동서로 1.3km 정도 길게 뻗어 있다. 출렁다리가 닿는 동쪽은 비교적 완만한 암석해안이다. 서쪽은 만지산을 중심으로 산지가 발달했는데, 사람들은 만지산을 ‘큰산’이라 부른단다. 해발 99.9m다. 섬의 남쪽 해안은 출입 금지다. 북쪽 해안에는 섬의 옆구리를 따라 산책로가 놓여 있다. 산책로 아래 작은 사구해안이 하얗게 누웠고 옥빛 바다가 잔잔하다. 섬의 등뼈를 따라 난 숲길로 들어선다. 옛길이다. 아주 좁다. 둥치 큰 나무는 거의 없고 대부분 관목이나 풀이다. 햇볕에 정수리가 따끈하다. 만지도는 약 200년 전 박씨와 이씨가 처음으로 섬에 들어와 정착했다 한다. 주변의 다른 섬들보다 늦게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만지도다. 섬이 지네 형상이라 만지도라는 설도 있다. 저도는 닭, 연대도는 솔개, 그렇게 먹이사슬이 연결되어 모두가 번성할거라고 옛 사람들은 희망했다.

▲ 만지도 옛길. 대숲과 동백의 터널을 지나면 마을이다.
▲ 만지마을. 10가구가 채 안 되며 통영에서 오가며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 만지마을 뒤쪽으로 만지봉 가는 길.

만지도는 오랫동안 원시성을 간직하고 있었다. 찾아드는 이들은 대개 낚시꾼들이었다. 포인트는 암석해안. 암초가 발달되어 있는 만지바다에는 감성돔과 우럭, 볼락이 우글거린다. 2010년 연대도가 전국 ‘명품섬 10’에 선정되고, 2015년 출렁다리의 개통과 함께 만지도는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추진한 명품마을 조성사업에 선정됐다. 그때부터 구경꾼, 산책자, 관광객들이 찾아들었다. 숲길이 천천히 하향하고 있음을 느낀다. 곧 대숲의 터널에 든다. 이제 하늘은 보이지 않는다. 더욱 어둑한 동백의 터널이 이어진다. 동백의 매끄러운 이파리 끝에 빛이 탁 켜진다. 마을의 한 가운데다.

▲ 동백 터널을 빠져나오면 마을의 한가운데 삼거리다.
▲ 식당, 상회, 민박 등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는 만지도.
▲ 마을 앞 해안가의 만지길. 벤치와 벽화 등으로 꾸며져 있다.

삼거리다. 오른쪽으로 오르면 만지봉과 몽돌해변으로 갈 수 있다. 만지도의 서쪽을 한 바퀴 도는 ‘만지도 옛길(몬당길)’이 이어지는 길이다. ‘몬당’은 ‘양지 바른 언덕’이라는 뜻의 통영 사투리다. 해안 쪽으로 향한다. 골목에 우물이 있다. 백년 된 우물이다. 섬에는 우물 외에도 물 나오는 곳이 서너 군데 있어 예부터 물 자급자족이 가능했다. 그래서 물이 모자란 주변의 학림도, 연대도 주민들이 배를 타고 빨래를 하러 오곤 했다고 한다. 지금은 우물을 사용할 일 없다. 만지마을은 작고 아담하다. 2015년 통계로 만지도의 인구는 15가구 33명. 지금은 10가구가 채 안 된다고 한다. ‘동백민박’은 ‘손재주가 많으신 부녀회장님 댁’, ‘임인아 댁’은 ‘문어와 군소를 잘 잡는 만지도 최고령 할머니 댁’, ‘전복 생산자의 집’에는 만지도에서 직접 기른 전복만 판매한다. 만지도 최고령자인 임할머니는 육지 처녀셨단다. 90평생을 만지도에서 살고 계신데 여전히 젊은이들보다 물 속 군소를 빨리 찾아낸다고 자랑한다. 바닷가 마을 앞길에 가을볕이 쟁글쟁글하다. 아무도 없다. 모두 바다로 나갔을까. 해가 지고 있다. “구경 잘 하셨소?” 다시 뭍으로 데려가 줄 뱃사람이 다정하게 묻는다.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대학에서 불문학을, 대학원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대학시절 무가지 음악잡지 ‘Hole’을 만들었고 이후 무가지 잡지 ‘문화신문 안’ 편집장을 잠시 지냈다. 한겨레신문, 주간동아, 평화뉴스, 대한주택공사 사보, 대구은행 사보, 현대건설매거진 등에 건축, 여행, 문화를 주제로 글을 썼으며 현재 영남일보 여행칼럼니스트 겸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내 마음의 쉼표 경주 힐링여행』, 『청송의 혼 누정』, 『물의 도시 대구』(공저)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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