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방송은 이래도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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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방송은 이래도 되는가
  • 조창현 논설고문/전 한양대 석좌교수·행정학
  • 승인 2020.09.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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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현 칼럼]

50여년전 닉슨 행정부의 연방통신위원장(우리의 방송통신위원장)은 미상원청문회에서 당시 미국의 텔레비전의 문제점을 지적해달라는 질문에 단호하게 그것은 "거대한 하나의 쓰레기장입니다"(A vast land of garbages)“라고 했다. 똑같은 질문에 오늘 이 나라의 방송규제의 책임자는 무엇이라고 답할까. 그리고 우리 국민들은 오늘날 우리 방송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물론 1960년대에 비해서 우리 방송이 그 규모, 콘텐츠의 다양성, 기술 등의 모든 측면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발전을 이룩한 사실을 부인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좀 더 구체적으로 분석해보면 적잖은 문제들을 지니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은 방송 전반에 관한 시민의 한사람으로써 보고 느낀 몇 가지를 지적하려고 한다. 첫째, 지상파나 케이블을 막론하고 채널이 너무 많다. 인구나 경제규모를 감안할 때에 지금 우리나라 방송국 수는 너무 많아서 제 살 깎아 먹기나 마찬가지가 아닌지 걱정된다. 별로 차별화되지 않은 내용을 여러 방송사가 서로 경쟁적으로 반복하는 셈이다. 만약에 비슷한 성향을 가진 방송사끼리 서로 자발적으로 통합을 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예산과 더 나은 내용으로 더 우월한 방송이 가능하지 않겠나 생각해본다. 이미 공·민영을 막론하고 모든 방송사들이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데 정부는 막연히 지극히 지엽적인 문제점만 형식적으로 규제하는 척하는데 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 특히 종편방송국들은 이미 자본금을 잠식하고 있지 않은가. 재정형편이 어려운 것은 케이블의 다른 전문적(또는 비종편)채널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좋은 예가 경제 관련 방송국간의 지나친 경쟁인데 왜 그처럼 대동소이한 내용을 방송하도록 내버려두는지 알 수 없다. 특히 지난 수년간 우리 경제규모가 성장보다는 답보 내지는 특히, 금년처럼 코로나19로 마이너스 성장을 경험하고 있는 판국에 광고시장이 팽창될 리 만무한데 방송국간의 지나친 경쟁을 지속한다면 희생자가 나올 것이 뻔하지 않은가. 거기에다 제한된 전문 인력과 인재에 대한 경쟁적 스카우트 역시 결과적으로 과중한 경영비용로 되돌아올 터인데 그 감당은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다.

둘째, 콘텐츠의 문제다. 사실은 모든 문화의 핵심은 콘텐츠인데 과연 우리는 그 많은 방송국 프로그램에서 좋은 내용을 제공할 수 있는 인재를 공급받고 있는지 알고 싶다. 단순히 연기자뿐만이 아니라 작가와 제작에 필요한 수많은 다른 종류의 전문가들은 어디서 훈련받고 경험을 축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더구나 최저임금수준에도 못 미치는 대우를 받는 ‘글 쓰는 분’들의 대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않는 한 우리나라 방송국은 외제작품을 상영하는 영화관으로 전락하고 마는 날이 올 것이 훤히 보인다면 지나친 걱정일까. 대영제국은 망했으나 BBC같은 방송국이 아직도 건제하는 이유는 거기에 소요되는 제작의 독립성과 예산배정은 물론 옛날의 대다수 대영제국시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의 매체가운데 몇이나 그러한 온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는지 되새겨 봐야 할 일이다.

방송이란 단순히 뉴스를 기계적으로 전달하는 보도가 아니고 인류의 문화와 문명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문화인들의 혼과 수월한 제작이 잘 결합했을 경우에만 훌륭한 방송이 가능하다. 돈벌이의 수단이나 정치적 이해집단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개인과 지역사회, 나라와 인류문화를 잘 보존하고 빛내려는 노력이 방송인들 모두의 가슴 속에서 살아있어야 한다. 품격과 배려가 그들의 모든 영역의 활동에서 잘 녹아 있어야 좋은 콘텐츠가 나오며 아무리 좋은 콘텐츠라도 그러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 써지고 제작된다면 그 효과는 몹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문화란 제조업이 아니라 사람을 생각하게 할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사회와 나라를 변화시키는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창현 논설고문/전 한양대 석좌교수·행정학

연세대 정법대를 나왔으며 아메리칸대학에서 행정학 석사, 조지 워싱턴대학에서 행정학 박사를 취득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 펨부록 캠퍼스 교수, 한양대 행정학 교수, 한양대 명예 및 석좌교수를 지냈으며, 대통령자문 정부혁신추진위원회 위원장, 중앙인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지방자치란 무엇인가?》, 《지방자치의 이론과 실제》, 《행정학원론》, 《재무행정론》, 《지방자치론》, 《지방행정론》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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