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시와 문학에 가져온 변화는 무엇일까…사회적 연대로서 비평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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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시와 문학에 가져온 변화는 무엇일까…사회적 연대로서 비평의 몫
  • 장은영 조선대학교·국문학
  • 승인 2020.09.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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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

■ 저자가 말하다_ 『슬픔의 연대와 비평의 몫』 (장은영 지음, 푸른사상, 432쪽, 2020.07)

대학 신입생들의 글쓰기 수업 시간, 자신의 성장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을 글로 써 보기로 했다.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얼른 뭔가를 끄적거리는 학생도 있었지만 쓸만한 기억을 찾아 헤매느라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앉아 있는 학생도 있었다. 한 학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장면을 써도 되냐고. 그 학생은 자신이 중학생 때 수학여행에 가서 겪었던 일을 꺼내놓았다. 왁자지껄하게 아침을 먹던 아이들은 자신들이 타고 온 배처럼 큰 배가 침몰하는 뉴스 화면을 보고 일순간 조용해졌다고 했다. 아이들이 아침을 먹는 내내 식당으로 쓰던 큰 강당이 정적에 빠졌다고 했다. ‘그런 기억’을 글로 써도 되는지 망설이는 학생에게 써도 괜찮다는 말밖에 달리 해줄 말이 없었다. 수학여행 첫날 아침 한껏 들떠있던 중학생에게 찾아온 그 순간의 충격은 설명하기 힘든 경험이었을 테고 나에게도 우리 모두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잠시나마 그 아이들이 느꼈던 실어(失語)의 경험은 ‘세월호’를 기억하는 동시대의 한국 사람들이 가진 공통 경험이기도 하다. 세월호의 침몰과 그 이후를 목격하면서 우리는 타인의 고통과 죽음이 자신의 슬픔으로 전이되고, 그 슬픔이 ‘나’로 하여금 무언가를 요구하도록 만든 경험을 공유하게 되었다. 비평집 슬픔의 연대와 비평의 몫은 세월호 이후 한국 시에 나타난 슬픔의 정동(情動)에 대한 관찰과 기록이다. 희생자의 죽음에 대해 진상 규명을 요구한 유가족들이나 그들과 연대한 많은 시민들이 그러했듯 세월호를 목격한 한국 시는 모든 사태를 신속히 마무리하려는 듯한 애도를 거부하며 슬픔을 지속하고 재전유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대표적으로 그해 여름 출간된 세월호 추모시집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실천문학사, 2014)가 보여주듯이 상실의 슬픔은 분노와 용기로 분출되었고 정의와 윤리를 요구하는 싸움의 동력으로 전이되었다. 슬픔이 시와 문학으로 하여금 사회적 실천과 참여에 동참하게 했을 때 이러한 움직임에 응답하는 것은 비평에 주어진 최소한의 몫이라는 생각으로 당시의 작품을 읽고 글을 썼다. 4부로 구성한 이 책에 실린 비평들이 다룬 주제는 조금씩 다르지만, 세월호가 시와 문학에 가져온 변화가 무엇일까에 주목하면서 비평의 대상과 방향을 정하고자 했다. 1부에서는 세월호가 가져온 실어의 경험과 슬픔의 형상화 그리고 윤리적 질문에 도달하는 시들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며 세월호 문학의 의의를 탐색했고, 2부와 3부에서는 2010년대 중반 이후에 나타난 시의 경향과 시적 주체의 특징을 포착하고자 했다. 4부에서는 소개하고 싶은 시집을 추려 한 권의 시집이 만들어내는 고유성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이 비평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참사를 경험한 시라고 말할 수 있다. 타인의 죽음과 마주한 시들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연대를 상상했다. 인간이 삶을 나누듯이 죽음마저 나누는 삶과 죽음의 공동체 안에서 비로소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몇 편의 작품을 통해 세월호 이후 한국 문학에 나타난 변화를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세월호를 계기로 한국 시와 문학은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상기해보면 2014년 4월 16일 아침, TV 화면을 통해 죽어가는 타자를 지켜보던 우리는 화면 속에 있는 그들의 고통을 넘겨받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타인의 죽음은 ‘나는 살았다’는 안도가 아니라 ‘나는 왜 살아남았는가’라는 질문을 남겼고, 이 질문은 우리 자신이 인간인 한 죽어가는 타자와 함께해야 한다는 사실, 즉 우리 자신이 타자의 죽음과 유관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만들었다(알폰소 링기스, 김성균 역, 『아무 것도 공유하지 않는 자들의 공동체』, p.246 참조). 죽어가는 타자와 살아있는 자들이 함께 맺은 ‘죽음 공동체’가 말하는 것은 단순하고 자명하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공동의 목적이나 공통점에 근거하지 않고도 ‘죽음’이라는 사실 앞에서 이미 하나의 공동체 안에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공동체의 경험은 세월호 이후 문학이 사회적 삶, 공동체의 삶과 긴밀히 접속하기 시작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말을 잃은 자들의 필사적 몸짓처럼 희생자들을 기억하기 위한 움직임이 문학장에서도 산발적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작가들과 시민들이 함께 희생자를 기억하기 위한 문장을 읽는 304 낭독회가 시작되었다.* 작가와 인권활동가 등 자발적 참여자들로 구성된 ‘416 세월호 참사 작가기록단’은 세월호 유가족의 육성을 기록했고, 시인들은 단원고 희생자 학생들의 목소리를 대신한 생일 시를 썼다.

문학이 사회나 공동체의 삶과 접속했다는 것은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한 직접적 활동이나 작품의 창작 등 구체적인 결과물에 한정되는 얘기가 아니다. 세월호 침몰을 목격한 후 밀려온 충격과 실어의 상태를 거친 슬픔이 분노와 저항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경험한 한국 문학장은 그 이전과 다른 형질을 띠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문학이 문단의 실세라 할 만한 몇몇 유명 작가들이나 출판 자본의 소유물이 아닌 공공의 영역이 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게 제기되었다. 물론 이러한 요구 이면에는 문학장에서 상징 자본과 출판 자본 양자를 확보하고 있는 소위 메이저급 출판사를 향한 비판과 책임론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여기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 다만 이 비평집에서 주목하는 바는 문학장이 누구나 자유롭게 발화할 수 있는 자유의 공간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정당한 관점으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한나 아렌트의 공적 영역을 환기하면서 민주적 공공성 담론을 펼친 사이토 준이치의 말을 빌자면, 복수의 가치와 의견 ‘사이’에서 생성되는 담론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시각이 세월호 이후 한국 문학장에 출현한 것이다(사이토 준이치, 윤대석, 류수연, 윤미란 역, 『민주적 공공성』, 이음, 2009 참조).

세월호 이후 제기된 현상들을 보자. 기존 문예지의 혁신과 재정비, 등단 제도에 대한 비판과 성찰 그리고 독립 문예지의 창간과 1인 미디어를 통한 글쓰기의 유통 등 다양한 방식의 문학적 실천은 문학장이 서로 다른 목소리가 공존하는 담론의 장이어야 함을 시사한다. 마땅히 이러한 문학적 결과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우선 이러한 (발화) 행위가 갖는 의미에 주목해 보자고 제안하는 바이다. 문학장을 구성하는 기존의 질서에 동화되지 않으면서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실천은 궁극적으로 문학의 생산과 유통 그리고 존재 방식에 변이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실험적이다. 동시에 문학장을 지탱해 온 출판 자본과 특정한 미적 이념에 의존하지 않고도 문학이 생산되고 유통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기존의 문학장에 대한 도전이라는 점에서 위협적이고 혁명적일 것이다.

세월호를 관통하고 나서 2010년대 중후반 한국 시에 나타난 움직임을 공적 영역에 참여하는 발화 혹은 행위로서의 시로 간주하는 비평적 판단이 지나친 낙관이거나 비약적 해석인지는 더 고민해 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장을 차이의 담론이 공존하는 공적 영역으로 만드는 시도들이 2020년대 문학이 나가야 할 방향이라는 점을 전망으로 내놓는다. 한국 사회에서 복수성과 차이가 인정되는 공적 영역이 과연 얼마나 남아있을지 모르겠다는 걱정을 빌미로 새로운 세대들이 만들어갈 문학에 희망을 건다.

*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 세월호 희생자 304명을 기억하기 위해 작가와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 낭독회는 2014년 9월 20일 광화문에서 처음 열렸다. 매달 마지막 토요일에 열리는 이 낭독회는 304회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304 낭독회 홈페이지(https://304recital.tumblr.com/) 참조.


장은영 조선대학교·국문학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조선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평론집 『슬픔의 연대와 비평의 몫』 외에 공저 『한민족 문학사2』, 『시, 현대사를 관통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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