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종족주의론’…역사 부정과 자기 부정으로 점철된 ‘말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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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종족주의론’…역사 부정과 자기 부정으로 점철된 ‘말놀이’
  • 임병태 기자
  • 승인 2020.09.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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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 '뉴라이트 역사학의 반일종족주의론' 비판 | 이철우·박한용·전재호·홍종욱·황상익 외 13명 지음 | 기획·우석대 동아시아평화연구소 | 푸른역사 | 268쪽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시인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이냐” 김광규 시인의 〈묘비명〉의 마지막 구절이다. 이 책의 필자 18인 역시 이와 비슷한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뉴라이트 역사학은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그들의 시선은 어디로 향하는가”라고.
이 책은 지난해 출간되어 한일 양국에서 ‘신드롬’을 일으킨 《반일 종족주의》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비판서다. 《반일 종족주의》의 허구와 논리적 비약에 대한 비판은 이미 여러 차례 나왔기에 이제 사실史實 다툼은 큰 의미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이 책의 필자 18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반일 종족주의》의 여섯 가지 큰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뉴라이트 역사란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위한 역사인지 또 실증사학과 탈진실의 역사와의 관계를 묻고 있다.

뉴라이트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는 이들의 학문적 이력을 파악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는 이철우 교수의 글에서 적실히 드러난다. 그에 따르면 역사의 ‘탈정치화’를 부르짖어 공감을 얻은, 1980년 진보파 학도들의 ‘큰형님’으로 추앙받던 이영훈은 “젊은 시절 한때 그 혁명에 영혼이 팔려 본 사람”으로 일차 자기 부정을 한다. 여기에 민족차별이 없었음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일제강점기 한일관계를 주권국가들이 만든 유럽연합EU에 비유한 김낙년, 한국은 법적으로 유효하게 일본의 일부가 되었기에 승전국도 식민지도 아니어서 일본에 배상을 청구할 근거가 없다는 주익종의 ‘변신’ 등을 이야기하며 정치적 도그마에 영혼이 팔린 사람의 구차함을 적시한다. 뉴라이트 역사학의 배경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여기에 ‘수탈’을 물리력을 동원한 강제는 없었다는 주장으로 주권 없는 민족에 대한 ‘구조적 수탈’에 눈감는 것은 전형적인 ‘말장난’임을 지적한다.

이 책의 필자들은 《반일 종족주의》에 대해 지엽적인 구절에 매달리거나 맹목적 혹은 국수주의적 입장에 매몰되는 대신 19편의 글을 통해 그야말로 실증적으로 비판한다. 예컨대 강성현(성공회대 열림교양대학 교수)은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 피해자의 증언은 무시하고 관련 공문서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강제연행은 없었다는 주장은 실증사관의 외피를 둘러쓴 억지라고 지적한다. 실증사학에 대한 통렬한 반격이다. 나아가 당시 동남아와 일본의 물가지수 등 통계를 들어가며 ‘고수익 자유 영업’ 매춘부 주장을 일축한다. 《반일 종족주의》의 핵심 중 하나인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해서도, 1942년에도 조선인 취학률은 50퍼센트에 못 미쳤다든가 조선의 공업생산액이 8.4배 느는 동안 일본으로 빠져나간 생산재는 100배 이상 폭증했으며, 일제강점기 의료인 수가 꾸준히 늘었다는 통계에는 일본으로 빠져나간 의사 수가 빠져 있다는 ‘통계의 허구’ 등 ‘혜택 없는 개발’의 실체를 짚는다. 청구권협정, 독도 영유권, 특별지원병 문제도 구체적으로 논박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무분별한 《반일 종족주의》 비판으로 일관하는 것은 아니다. 민족주의의 한계를 벗어나는 한국사 연구를 위한 고언으로 받아들인다. 김헌주 연세대 근대학국학연구소 연구교수는 〈‘반일 종족주의 사태’와 한국사 연구의 탈식민 과제〉에서 《반일 종족주의》가 학술서를 표방한 대중서이며 어떤 측면에서는 정치적 선전물에 가깝다고 꼬집으면서도 ‘반일 종족주의’ 여파를 무시 일변도로 대응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중요한 것은 탈식민의 지향이라며 한국사 연구의 현실을 짚고, 트랜스내셔널 역사학, 성소수자를 비롯한 마이너리티의 인권 문제사, 생태환경사 등을 제언한다.

또 “《반일 종족주의》는 일제와 한몸”이라며 “이들의 정치ㆍ군사ㆍ경제적 패악과 제도를 포괄하기 위해 ‘친일’ 대신 ‘친일 레짐regime’이 적합한 용어”(서승 우석대 석좌교수)라는 주장도 담겼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지난 40년의 지성사를 되돌아보는” 의미 있는 작업의 결실이면서 올바른 한국사 연구를 위한 작은 디딤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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