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아와 존 레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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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아와 존 레논
  • 이명식 연세대학교 의과대학·내분비대사/면역학
  • 승인 2020.09.0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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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Academy는 잘 아는 바대로 철학의 비조 플라톤이 Akademos 숲에서 제자들과 학문을 토론하던 기관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현재의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of the Republic of KOREA (대한민국 학술원),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미국 학술원), The Japan Academy (일본 학술원), Chinese Academy of Sciences (중국 학술원), Academia Sinica (대만 학술원 또는 원래의 중국학술원) 등의 이름은 다 여기서 기원한다.  그러므로 Academy는 원래 현실과는 유리되어서 우주 및 세계를 움직이는 원리와 학문을 토의하던 장소였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학문이 현실과 유리되기가 힘들게 되었다. 필자는 임상의로서 의과대학 교수이니 의과대학 교수로서는 Academia에 소속되어 일하고 있고, 병원 소속으로는 현실 세계를 매일 접하고 있다.

과연 Academia와 현실 세계는 현재 어떠한 관계를 지니고 있으며 또 양자는 어떠한 관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코로나로 일상이 마비가 되기 전 필자의 집 근처의 “예술의 전당”에서 John Lennon 사진전 (이매진 존 레논 전)이 열린 적이 있었다. John Lennon은 musician이지만 Liverpool College of Art를 다녀서인지 그림과 사진에 재질이 있어 좋은 그림, 사진을 많이 만들었고 이를 전시하는 것이 기획된 것이었다. 몇몇 사진/그림은 일종의 history의 반열에 들어가게 된 것이라고 생각되었고, 필자도 많은 감동을 받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가장 놀란 것은 전시 마지막에 알게 된 사실 - John Lennon이 역대 영국을 움직인 10명의 인사 중에 들어간다는 것 - 이었다.  영국은 현대 세계의 거의 모든 주요 부문을 format한 나라로서 영국을 움직이고 만든 10명 중에 John Lennon이 들어간다는 것은 놀라운 충격적 사실이었다.

경위를 알아보니 2002년 영국 BBC에서 100 Greatest Britons를 TV 투표로 선정한 것이었는데 1위 Winston Churchill, 4위 Charles Darwin, 6위 Issac Newton을 포함하고 있었고, 여기에 John Lennon이 8위에 선정되었던 것이었다. 이는 아마도 musician으로서의 활동 이외에 peace activist로서의 역할 및 그 파급 효과도 작용하지 않았는가 생각되었다. 그 외에 Paul McCartney는 16위, George Harrison은 62위, David Bowie가 29위, Cliff Richard가 56위, Boy George가 46위, Charlie Chaplin이 66위, Freddie Mercury가 58위, Bono가 86위, Richard Burton이 95위에 선정되었다.  그러면 위의 Charles Darwin, Issac Newton을 제외한 다른 의학, 과학계 인사들은 누가 어떤 순위로 선정되었을까? 알 만한 사람 중 Alexander Flemming이 20위, Allan Turing이 21위, Michael Faraday가 22위, Stephen Hawking이 25위, Edward Jenner가 78위, James Maxwell 이 91위에 각각 선정되었다.

필자에게 가장 놀라웠던 것은 현대 molecular biology와 central dogma의 태두 Francis Crick이 그 100명 안에 포함되지 못한 것이었다. Molecular biology는 현대의 의학, 생물학, 유전학, 약학, 영양학, 농학, 고고학, 인류학, 역사학 등 수많은 분야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온 개념으로서 Francis Crick이 영국을 움직인 100명에 포함되지 못한다면 Crick의 뒤를 이어 그 이론에서 파생되어 나온 branch에서 지금도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학자들은 다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니 depression이 되어 수일간 일하고 공부할 기분이 들지 않았다.

나중에 이번 선정은 BBC에서 당대의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 인기투표 같은 것이라고 자위하면서 depression에서 벗어나게 되었지만, 상당 기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과학 분야에 노벨상이 나오지 않아 과학 분야 노벨상이 전 국민의 염원이 되다시피 하였지만 실상 외국에서는 노벨상을 타더라도 수년이 지나면 다 잊혀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노벨상 수상자 중 위인의 반열에 오른다든지 영국을 움직인 100명 등에 포함되는 것은 Alexander Flemming 등 아주 소수인 것임을 이번 BBC 선정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실상 Cambridge 대학에서는 대학 관련 노벨상 수상자가 120명이고 이중 Cambridge 대학 졸업생이 70명에 달하고 있으니 기억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영국의 Crick과 더불어 DNA double helix 구조를 밝힌 미국의 James Watson도 여러 가지 구설수에 많이 올랐고 예전의 인종주의적 발언이 최근에 문제가 되어 Cold Spring Harbor Laboratory의 각종 명예직에서 물러난 것으로 보아 미국을 움직인 100명을 선정하면 들어간다고 장담하기 힘들지 모른다. (University of Washington News에서 2009년 선정한 list에는 들어가 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보면 일반 현실 사회에서의 평가, 대중의 척도, 사람들이 중요시하는 것은 Academia에서의 그것과 같지 않음을 알 수 있다. Academia는 하나의 독립적인 사회이지만 일반 대중과 고립되거나 차단된 상태로 유지될 수는 없다. 예를 들면, 학문 연구에 필요한 연구비는 Academia 외부에서 들어와야 하는 것이다. 사실 현대의 Academia 또는 상아탑도 생각같이 고고하게 고담준론을 주고받는 사회는 아니다. 그렇다고 Academia 구성원이 현실 사회의 각종 복잡하고 이해관계에 얽힌 구조에 함몰되어 허둥대거나 방향 감각을 잃는 것도 바람직한 것은 아닐 것이다. 즉 Academia는 현실 사회와 밀접한 관련을 맺되 현실 사회에서는 추구하기 힘든 가치 및 방향을 탐구하고 개척하는 일을 맡아서 수행하여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현실 사회에서는 원대한 궁극의 목표는 잘 안 보일 수가 있고, 현실 사회와 Academia 사이에는 (너무 멀지 않은) 약간의 거리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현실 사회 그리고 Academia가 힘을 합쳐 인류가 희구하는 궁극의 최종 목표에 도달하는 빠른 길일 수가 있고, 또 그것이 현실 사회가 Academia에 원하는 것일 것이다. Crick이 영국을 움직인 100인에는 못 들어갔지만, Watson & Crick의 double helix model에 바탕을 둔 molecular biology technology 및 의학의 발전으로 (아직 성공하지는 못하였지만) 2020년 COVID-19 치료제 또는 vaccine이 개발되게 될 줄을 1953년에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유방암의 치료제 개발은 yeast 연구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실상 현재 필자가 연구하고 있는 자가포식 (autophagy) 연구는 yeast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명식 연세대학교 의과대학·내분비대사/면역학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성균관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내분비대사내과 전문의)를 역임했으며, 현재 연세의대 의생명과학부/내분비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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