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통해 탄생한 이름, 초생달 빵 크롸쌍과 황소피 와인 불스 블러드
상태바
전쟁을 통해 탄생한 이름, 초생달 빵 크롸쌍과 황소피 와인 불스 블러드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0.08.30 1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기획연재: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21)_초생달 빵 크롸쌍과 황소피 와인 불스 블러드

해질녘 서쪽 하늘에 잠시 떠 있다 스러지는 초승달은 왠지 처연하다. 그 달이 반달이 되더니 보름달을 향해 가고 있다. 초승달을 영어로는 crescent (moon)이라고 한다. 프랑스 사람들이 즐겨 먹는 빵 가운데 크롸쌍(croissant)이 있다. 새우빵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초승달 모양을 본 딴 롤빵이다. 갓 만들어 뜨끈한 크롸쌍 한 조각을 양손에 들고 쭈~욱 찢어 버터나 괴일 잼을 발라 먹는 재미는 보통이 아니나 이 빵의 유래는 인간사의 어두운 면을 담고 있다.

때는 17세기 말(1683년) 오스만 투르크 군이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이던 오늘날의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을 포위하고 있었다(빈 전투). 빈의 한 제빵사가 밀가루를 가지러 창고에 갔다가 곧 오스만 투르크 군의 공격이 있을 거라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이 사실을 신성로마제국 군에 알려 오스만 투르크 군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기여한다. 오스만-합스부르크 전쟁에서의 승리 덕분에 제빵사는 유럽 왕실의 최고 명문가인 합스부르크 가문의 문장을 제과점의 상징으로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게 되고, 이 일을 기념해서 제빵사가 오스만 투르크 군의 상징인 반달기를 본 따 초승달 모양의 빵을 만들었다고 한다.
 
1438년부터 1806년까지 사이 신성로마제국의 제위는 잇달아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나왔다. 합스부르크 가문(Haus Habsburg)라는 독일어 이름은 현재의 스위스 슈바벵 지방에 세워진 합스부르크 성 또는 ‘매의 성’이라는 뜻의 하비히츠부르크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에는 독일 남부지방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의 세력을 지니고 있었으나 15세기 중반 이후에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선출에도 개입했고, 특히 오스트리아의 왕실은 거의 600년 동안이나 지배한 것으로 유명하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프랑스 왕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유럽의 왕실과 연결되어 있었다. 프랑스 왕도 외가로는 합스부르크와 연결되어 있다.

▲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깃발
▲ 합스부르크 가의 문장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1683년까지는 슬로베니아와 아드리아 해 연안을 제외한 모든 발칸 반도 지역을 지배하였다. 그러나 18세기부터 힘이 약해졌는데, 1699년 헝가리를 잃은 것이 결정타였다.

▲ 오스만-합스부르크 간의 전투 장면도(1683년 빈 전투 묘사화 중 하나)
▲ 오스만-합스부르크 간의 전투 장면도(1683년 빈 전투 묘사화 중 하나)

1453년 메흐메트 2세가 이끄는 오스만 투르크 군이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한 이래 서구 기독교 국가들이 속속 이슬람의 위세에 굴복했다. 헝가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항상 이슬람군이 승리한 것은 아니다. 토카이가 헝가리의 대표적 화이트 와인이라면 레드 와인의 대명사는 에그리 비카베르다. 영어로는 불스 블러드(Bull’s Blood of Eger)라고 하는데, 이 와인 브랜드의 탄생에도 역사적 사실이 연관되어 있다.

▲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하는 메흐메트 2세
▲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하는 메흐메트 2세

유럽 중부에 위치한 헝가리의 역사도 시련으로 점철되어 있다. 1241년 질풍노도와 같은 파괴력으로 유럽을 유린한 몽골족의 말발굽에 국토의 상당 부분이 쑥대밭이 되는 수난을 당했다. 300년의 세월이 지난 16세기(1526년) 오스만 투르크 군대가 헝가리를 침공했다. 승승장구하던 오스만 투르크 군대가 모하츠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서 패배한 헝가리는 170여 년간 질곡의 역사를 경험하게 된다. 에게르성을 포위한 적이 있었다.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군인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아녀자들이 성안에 저장되어 있던 와인을 꺼내와 군인들에게 나눠주었다. 술기운의 영향을 받은 헝가리 군인들은 숫자의 열세를 극복하고 용감하게 싸워 마침내 이슬람군을 물리쳤다. 패퇴의 쓴맛을 본 이슬람군은 예상 밖의 용맹성을 보인 에게르 성 병사들이 마신 음료가 황소의 피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지었다. 이후 이 지역 와인의 이름이 불스 블러드가 되었다. 우리나라 행주산성도 여인들이 앞치마로 돌멩이를 운반한 결과 생겨난 이름이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