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의 시간 낭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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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의 시간 낭비
  •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 승인 2020.08.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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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 칼럼]

영어를 제대로 익힌 다음 영문학 공부를 하려고 사전을 외던 학우들을 기억한다. 한문 공부를 철저하게 하고서 학문을 시작하려다가 어느덧 환갑을 넘긴 지각생도 있다. 남들이 영어나 한문을 오역했다고 준엄하게 꾸짖고, 자기는 완벽한 경지를 보여주겠다면서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는 자칭 석학도 자주 본다.

영어나 한문뿐만 아니라 국어라도 모자람이 없을 만큼 익히는 것은 한평생 노력해도 가능하지 않다. 여러 평생이 보장되어 있다고 해도, 이번에 공부한 것이 다음 생으로 이월되지 않으니 허사이다. 한평생만 산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가능한 작업을 해야 한다. 도구가 훌륭하면 일을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완물상지(玩物喪志)를 경계해야 한다.

준비를 너무 오래 하느라고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적절한 시기에 본론에 들어가, 할 수 있는 연구를 해야 학자일 수 있다. 잘되고 못되는 것은 해보아야 안다. 실패를 해야 성공도 있다. 이런 진부한 이야기를 새삼스럽게 하는 것은 학문하는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시간 낭비의 실수를 안타깝게 여기기 때문이다.

서론을 오래 끌지 말고 나도 본론에 바로 들어가, 이미 고전이 된 본보기를 들어보자. 박종홍 선생은 내가 학생 시절에 존경을 한 몸에 모으고 있던 석학이었다. 성실한 자세로 철저하게 공부를 하는 모범을 보였다. 너무 성실하고 지나치게 철저한 것이 화근이 되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형식논리학>>에서 시작해, <<인식논리학>>, <<변증법적 논리>>, <<역(易)의 논리>>를 거쳐 <<창조의 논리>>에 이르는 논리 탐구의 대장정을 하겠다고 했다. <<형식논리학>>에서 이러한 구상을 제시하고, <창조의 논리를 위한 예비적 고찰>을 권말에 수록해 장차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예고했다. 지금까지 있는 논리를 두루 고찰하고 끝으로 자기의 논리를 제시하는 창조학의 작업을 하겠다고 세상에 널리 알렸다.

높이 평가할 만한 엄청난 계획인데, 예고한 대로 되지 않았다. <<인식논리학>>까지만 내놓고 세상을 떠났으며, <<변증법적 논리>>는 미완의 초고를 남겼다. 1903년에 태어나 1976년까지 73년이나 살았으니, 단명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 아니다. 계획을 잘못 세워 시간을 낭비한 탓에 뜻한 바를 이루지 못했다. 멀리까지 가서 세상을 다 돌아보고 돌아오려고 하다가 중도에서 객사(客死)하고 말았다. 가장 슬기로워야 할 철학자가 너무나도 어리석은 짓을 했다.

남들의 학문이 어떤지 확인하는 철학알기는 시간을 탕진하면서 할 일이 아니다. 자기의 철학하기에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일반논리학>>을 45세 때인 1948년에 내놓았으니 이미 조금 늦었다. <<일반논리학>>에도 시간을 배정하지 않고, 원기가 왕성하고 생각이 발랄할 때 <<창조의 논리>>를 다잡아 썼어야 했다. <창조의 논리를 위한 예비적 고찰>을 마음껏 발전시켰어야 했다. 철학알기가 아닌 철학하기에서 우뚝한 업적을 남겼으면 얼마나 훌륭했겠는가? 

박종홍의 실패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하는 교훈으로 받아들이면 참으로 소중한 의의가 있다. 살신성인(殺身成仁)을 한 공적이 있다고 높이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도 수입학을 일삼는 사람들은 박종홍처럼 큰 실패는 하지 못하면서 작은 실패는 계속 되풀이해, 박종홍의 객사를 헛되게 한다. 철학하기가 목표라는 말은 버리지 않으면서, 그 중간과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누구나 인정하는 철학알기에 줄곧 매달려 일생을 낭비한다.

외국에 유학해서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손해가 되는 내막이 어느 분야에든지 그대로 해당되지는 않는다고 전제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한다. 반발을 앞세우지 말고 경청해주기 바란다.

외국 대학에서 공부를 제대로 하고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오면 40세를 훌쩍 넘기기 쉽다. 대학이 좋고 공부가 힘든 것이면, 그 시기가 훨씬 늦어져 영광이 더 크다고 한다. 정년퇴임을 할 나이에 박사를 하고 아직 공부할 것이 많아 귀국하지 못한다고 하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성실한 노학도를 외국에서 우연히 만난 적도 있다. 

이론을 창조하는 능력은 35세를 지나면 쇠퇴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바둑 프로 기사가 내리막길에 들어서는 시점과 일치한다. 그때까지 돈오(頓悟)한 것이 있어야 평생 점수(漸修)할 일거리가 생긴다. 돈오는 편안한 곳에서 조용한 시간을 얻어 마음을 비워야 가능하고, 생소한 환경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학습에 시달리면서 정신없이 뛰어다니면 불가능하다.

금빛 찬란해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자부하는 공부가 스스로 깨달은 것이라고는 없어 속이 텅텅 비어 있다. 무엇을 놓쳤는지 모르고 자랑스럽게 귀국하면 허망하다. 국내에서 힘들지 않게 공부한 동년배에 이미 자기 학문 세계를 개척해 창조학의 업적을 상당한 정도로 낸 중견 학자도 있는 것이 예사이다. 대단한 영광을 기대하고 학생 노릇을 너무 오래 한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시간 낭비이다. 

학생이 하는 공부에 길들여져 학자로 전환하기 어렵고 그럴 뜻도 없어, 한참 동안 헤매고 다니는 철부지를 흔히 본다. 연구가 뒤떨어진 것을 학벌 자랑으로 메우려고 해서 차질을 빚어낸다. 업적과 학벌은 차원이 다르므로, 한 자리에 놓고 비교할 것이 아니다. 업적은 학자일 수 있는 요건이다. 학벌은 학생의 자랑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학생의 영광이 학자에게는 아무 소용도 없다. 학생 시절과 단호하게 결별해야 학자가 될 수 있다.

이런 구분을 뒤집으려고 본말전도의 궤변을 늘어놓는다. 수입학이 창조학보다 소중하고, 철학알기가 철학하기보다 훌륭하다고 떠들고 다닌다. 수입학의 가치가 원산지의 위세로 당당하게 증명된다고 강변하기도 한다. 위대한 철학자를 섬기는 철학알기가 이 땅에서는 최상위의 학문이라고 한다. 뒤떨어진 나라에서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 창조학을 한다고 나서는 것은 웃기는 일이라고 폄하하기까지 한다. 

길게 개탄하고 있을 것은 아니다. 한마디 말을 치료제로 제공한다. 학자에게는 낭비할 시간이 없다.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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