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 격차 사회’ 라틴아메리카, 불평등한 현실과 그 극복의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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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 격차 사회’ 라틴아메리카, 불평등한 현실과 그 극복의 시도
  • 임병태 기자
  • 승인 2020.08.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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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인종과 불평등: 라틴아메리카 인종차별에 대한 역사구조적 고찰 | 조영현·김영철·김희순·차영미 지음 | 알렙 | 288쪽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곳곳에서 인종차별의 문제는 역사적으로 또 구조적으로 심화돼 있다. 특히 라틴아메리카는 정복과 식민, 인종적 위계, 노동력 착취, 토지 문제를 통해 왜곡되어 온 역사적·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원주민을 억압과 착취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사회 변혁의 주체라는 점에 주목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이 만연한 대륙이라는 오명을 갖고 있는 라틴아메리카 사회 변동의 양상을 추적·분석하고, 사회 변혁을 위한 수많은 움직임과 노력 그리고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들을 탐색하는 책이다. 다양한 불평등 상황과 양상은 라틴아메리카 사회를 ‘다중 격차(multi-gap) 사회’라고 명명하도록 만들었다. 왜냐하면 불평등이 다양한 형태로 중첩되어 있으며, 그 작용이 다층위적이고 다면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라틴아메리카의 불평등 문제는 쉽게 설명되거나 이해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불평등의 관점에서 보면 라틴아메리카는 아프리카 상황보다 더 심각한 지역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불평등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는 매우 뿌리가 깊은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16세기부터 지배자 유럽인과 피지배자인 아메리카 원주민 사이에 불평등한 인종적 위계질서가 형성되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같은 식민 모국의 억압적인 정치 구조와 수탈 정책은 이 대륙에서 부와 권력이 평등하게 분배되는 것을 방해했다. 극소수의 백인과 메스티소가 비옥한 토지, 광산, 농장 등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대대손손 부를 독점했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인종적 계층화와 피부색에 따른 지배라는 문제는 개선되지 않고 현재 진행 중이다. 전체 인구의 상위 20%의 소득이 하위 20%의 소득의 15배가 넘는다. 2010년부터 2013년간 연속적으로 세계 최고의 부호 자리에 올랐던 멕시코의 카를로스 슬림과 그 가족의 재산은 GDP의 5~6%를 차지할 정도로 엄청나다. 주로 백인이나 메스티소가 상류층을 형성하고 있다.

한때 ‘분홍빛 물결(pink tide)’이 휩쓸던 2000년대 초반, 라틴아메리카 주요 국가들은 중국 특수와 원자재 가격 상승을 토대로 대중을 위한 직접적인 복지 지원 정책을 실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원자재 가격 하락과 중국 특수가 사라지자 다시 빈곤 지수가 상승했고, 불평등도 증가했다. 현재는 빈곤과 정치 불안, 사회 혼란의 악순환이 멕시코, 중미, 브라질, 칠레,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볼리비아 등 대다수 나라를 휩쓸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코로나 19가 라틴아메리카에 상륙하면서 상황을 더욱 비관적으로 만들고 있다. 원주민과 흑인 등 취약한 인종들이 더 큰 위험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아마존 원주민들 가운데 일부는 멸족 위기에 처해 있다. 이 감염병은 의료 보험이 없고 저임금에 시달리는 취약 계층인 원주민과 흑인에게 더 가혹한 고통을 가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사회변혁을 위한 수많은 움직임과 노력들은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들이었으며, 동시에 불평등은 그 모든 시도와 노력들을 무력화시키는 블랙홀이기도 했다. 이처럼 라틴아메리카의 불평등은 그 경계나 범위가 넓기 때문에 단선적인 접근으로는 전체적인 모습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특히, 불평등을 경제적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은 매우 편협한 것이다. 불평등은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심지어는 종교적 측면에서도 나타나기 때문에, 그 양상은 ‘천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 책은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에서는 라틴아메리카 인종과 공간에 반영되어 있는 불평등 문제를 다룬다. 주로 인종에 대한 인식 문제나 원주민들의 차별적 현실을 고찰하고, 그런 현실이 도시나 촌락이라고 하는 공간에 어떻게 투영되는지 보여준다. 제2부에서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인종적 불평등 문제를 다루는 담론과 노력들 가운데 일부를 소개한다.

조영현은 제1장 「라틴아메리카 원주민과 불평등 문제」에서 라틴아메리카 불평등의 현실을 원주민이란 대상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다. 정복과 식민, 인종적 위계, 노동력 착취, 토지 문제를 통해 왜곡되어 온 역사적·구조적 문제를 다룬다. 그러나 단순히 원주민을 억압과 착취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사회변혁의 주체라는 점을 강조한다.

김영철은 제2장 「다인종 사회, 브라질의 인종 인식」을 통해, 대표적인 다인종 사회인 브라질 내 인종에 대한 인식 문제를 인종주의, 혼혈, 인종적 지배를 위한 백인화, 인종 정책 등을 통해 접근한다. 특히 인종민주주의가 지배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 현실과 흑인과 원주민의 권리로서 언급되는 인종 쿼터제를 고찰한다.

김희순은 제3장 「라틴아메리카 도시에 투영된 사회의 불평등」에서 라틴아메리카 도시의 불평등 원인을 엘리트의 시각과 소외된 이들의 시각에서 다룬다. 이 지역의 도시가 경제적 격차와 인종적 차이를 반영하는 공간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유럽의 식민지배 기획과 산업화 시기 이촌향도 현상, 세계 경제 체제가 불평등한 도시 공간을 만드는 데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한다.

김희순은 제4장 「라틴아메리카 촌락의 불평등」에서 라틴아메리카 촌락민들이 겪는 가난, 불평등 문제의 구조적 측면을 고찰한다. 풍요로운 땅에 사는 가난해진 농민들의 문제를 다룬다. 왜 촌락민들이 코카인을 재배하고, 국경을 넘어 이주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한다. 특히 치아파스 농민들과 사파티스타들의 투쟁 사례를 언급하고, 해외 이주자들이 보내는 송금이 촌락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분석한다.

조영현의 제5장 「라틴아메리카 원주민의 인종적 불평등 극복 문제를 다루는 두 가지 시각: 탈식민 이론과 수막 카우사이」라는 글은 탈식민 이론과 수막 카우사이 담론을 통해 라틴아메리카에 만연한 인종적 불평등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현지 이론가들이 어떤 부분을 강조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탈식민 이론이 권력 문제를 통해 불평등 문제를 접근한다면, 원주민의 세계관을 이론화한 수막 카우사이는 전통 문화와 정체성에 대한 긍정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저자는 원주민이 생각하는 ‘충만한 삶’은 식민성의 극복과 다민족국가 건설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김영철은 제6장 「되살아나는 원주민과 권리」라는 글에서 브라질 역사의 단계마다 부상했던 다양한 원주민 정책을 소개하고, 원주민의 정치참여 문제와 차별 극복을 위한 노력들에 대해 고찰한다. 특히 기존의 동화주의 정책이나 관점이 내포한 한계를 지적하고 상호문화성에 토대를 둔 새로운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차경미는 제7장 「강제 실향민의 불평등 개선을 위한 노력」이라는 글에서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발생하는 강제 실향민과 인종적 불평등 문제를 연결하여 고찰한다. 강제 실향민은 주로 아프리카에 뿌리를 두고 있는 흑인이나 아메리카 원주민으로서 이 지역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저자는 〈카르타헤나 선언문〉을 시작으로 2014년 〈브라질 행동강령〉까지 지난 30년 동안 라틴아메리카 지역 국가들이 강제 실향민 문제를 둘러싸고 논의한 주요 쟁점들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강제 실향민의 불평등 완화를 위한 라틴아메리카 지역 국가들의 노력에 대해 재조명한다.

차경미의 제8장 「콜롬비아 정부의 평화협정 이행과 농촌 개발 정책」은 빈곤 감소가 불평등 개선을 의미하지 않으며 불평등은 단순히 통계로 분석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역사와 문화적으로 불평등과 폭력이 상호 연관 관계를 맺고 있는 콜롬비아의 사례를 통해 장기 내전의 최대 피해 지역인 농촌 경제 회복이 콜롬비아 평화 정착의 주요 과제임을 강조한다. 또한 평화협정 이행 과정에서 콜롬비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농촌 개발 정책이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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