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정치사상을 홀대하면 남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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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정치사상을 홀대하면 남는 것은 무엇인가?
  • 안정석 경상대학교·서양정치사상
  • 승인 2020.07.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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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정치학이 학문으로서 지금은 일종의 사양 학문이 된 듯한 기분이 오래전부터 들어왔다. ‘청년실업’과 ‘이데올로기’가 중요한 사회적, 정치적 화두가 된 이래 이게 더 두드러진 하나의 현상이 된 듯하다. 그러니 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선생의 입장에선 침 튀기며 강의하는 도중에 공무원 시험 책자 펴놓고 맨 뒷자리에서 숨은 채 열심히 파고드는 학생을 언뜻언뜻 발견해도 그것을 지적하기도 어렵고, 그럴 용기조차도 안 난다.

정치학 분야엔 여러 분야가 있지만 크게 보면 정치사상, 비교정치, 국제정치, 이렇게 셋이다. 나머진 다 응용이자 하위분야다. 정치학은 그 연구나 교육의 현실을 보면 현재 매우 쇠락해있다. 우선 ‘생산성’이 없다. 사실상의 공염불로 치부된다. 특히 정치사상 교육은 그야말로 그 선생의 수나 강의 내용과 질에 있어서 여전히 바닥 수준이다. 원전으로 공부하는 예도 드물고 원전으로 강의하면 학생들은 아마 겁먹고 수강을 안 하는 듯하다. 우리는 지금 주자학을 가르치고 그것으로 사대부 계급이 통치를 했던 조선기보다 더 나은 교육을 행하고 있는가? 우리가 과연 그들보다 지적으로 더 월등한가? 외양과 물질생활은 그들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화려, 다양, 풍부해졌지만, 인간 됨됨이는 더 열악하고 더 품위가 없지 않는가?

지금 지방대학은 신입생이 점점 줄어들어 정치학과 계통의 학과가 비슷한 운명의 다른 인접 학과들(행정학과, 사회학과, 불문과, 독문과 등)과 통폐합되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사회과학과 인문학이 한데 뭉쳐 정체도, 강의내용도 불분명한 새로운 거대학과로 나아간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정치학과 계통 학생이 정치사상, 정치철학을 학습하는 것은 마치 불안한 미래를 하릴없이 게으르게 연습하는 것만 같다. 시간낭비, 인생낭비처럼 보인다. 학생에겐 사회로 나가 직업을 구하는 데 유익하지 않고, 정치학자에겐 사회에, 동료 간에 불화를 조장한다는 것으로 정치사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매우 개탄스럽다. 그리고 몇몇 서울지역 대형학과를 제외하곤 지방의 정치학과는 지금 정치사상 전공자를 잘 뽑지도 않는다. 지방에선 정치사상이 사양 학문일 뿐만 아니라, 그걸 넘어 무의미한 비생산성 학문이 된 지 이미 오래다. (여기엔 서울과 지방 간의 주종관계, 위계 문제도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그래도 배움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젊은 나이에 무엇인가 자기 정신에 자양분을 흡수하길 바라는 그런 청년들의 그 왕성한 두뇌와 정열을 지금 우리는 어디로 인도하는 중일까? 필자는 잘 모르겠다. 단지 이런 걱정이 앞선다. 사교교육? (힐 신고, 화장하고 학교 오는 여학생들을 상기해보자), 속물/좀비교육? (천박한 정신으로, 이유도 모르고 분위기에 따라가는 학생들을 상기하자), 취업교육? (대학은 지금 취업용 기술 배우는 사설학원이나 진배없다. 도서관엘 가면 온통 공무원 취준생이다), 사기교육? (인터넷에서 다운로드하여 과제물을 제출하는 학생들을 상기하자). 그게 우리 교육현장 현실이다. 

그러나 대학이 ‘인간,’ ‘개인’을 만드는 목적으로 교육을 하지 못 하면 어떻게 되나? 인간 형성의 최후 보루가 없어지는 것이다. 세상은 결국 인간이 만들고 이끌어가는 것이 아닌가. 어쩌면 지금 우리는 ‘인간’을 필요로 하지도, 요구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된 건 아닌가? 꼭 정치사상 교육에 하자가 있어서 그렇게 된 건 아니라 하더라도, 철학자 하이데거가 지적한 ‘진정한 인간’(authentic man)이 극도로 소수라는 현실을 우리는 과연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까? 모두가 서로에 대해 지적으로, 도덕적으로 계몽되지 않은 ”자연상태“의 인간처럼 굴면 사회와 국가는 어찌 되나? 

대안은 이것이다. 대학이 서양고전 텍스트를 통하여 치열한 토론을 경험하게 하고 자구 하나, 문장 하나, 단락 하나를 놓고 온종일 서로 자기 주장하며 토론하는 능력을 함양하는 노력을 국가적으로 권장해야만 할 것이다. 이런 국가적 노력이 없다면 우리 아이들은 미래에 이 나라를 이끌고 갈 능력 발휘보다는 마치 두뇌가 자라다 멈춘 것처럼 남의 나라 엘리트의 두뇌에 멍하게 일방적으로 끌려갈 가능성이 압도적이고 분명하다. (솔직히, 지금 한미관계에서 미국 관료와 우리 관료들의 관계를 보면 우리는 이런 인상을 받는다. 영어와 논리 훈련이 안 된 우리는 서양고전을 읽고 독립적 마인드를 형성한 채 자란 그런 미국의 세련된 관료들 앞에서 제대로 된 말은 못 하고 생뚱맞은 행동만 하는 그런 관료들이라고 느껴 본 적은 없는가?). 관료들이 그들 세계가 유증 받은 고전으로 마인드와 실력을 갖추고 우리의 관료들과 협상을 하면 누가 더 확고한 협상기술을 발휘할까? 안 봐도 뻔한 일 아닌가. 아이들을 교육하는 주도자로서의 기성세대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미래의 주인공에게 이런 능력을 함양시켜주는 것 아닌가. 기성세대는 곧 사라진다. 그 전에 우리의 대학은 혁신하여 우선 교육용 고전 텍스트들을 결정하는 노력을 해야만 할 것이다.


안정석 경상대학교·서양정치사상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과 미국 포담대학, 텍사스주립대학(UNT) 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부산대학교에서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 지도력』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상대에 출강하고 있다. 저술로 『마키아 벨리 읽기』, 『좋은 삶의 정치사상』(공저), 「마키아벨리의 도덕적 선-악에 대한 해석방식에 관한 소고: 『군주론』과 『리비우스논고』」, 「미국 건국에 있어 마키아벨리적 요소」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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