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 혹은 장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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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혹은 장벽
  • 박아르마 서평위원/건양대·프랑스 문학
  • 승인 2020.06.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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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타스]

‘연대할 것인가 장벽을 세울 것인가?’ 이런 문제를 두고 요즘처럼 서로 다른 의견이 극명하게 부딪친 경우는 드물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국경을 둘러싼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 난민의 발생과 수용의 문제 등이 고전적인 형태의 국가 간 갈등이었다면 코로나19에 따른 국경 폐쇄와 국가 간, 지역 간 이동의 금지는 새로운 양상의 교류와 단절 사이의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도 감염증 발생 초기에 모든 외국인의 입국을 막았어야 했다는 일부 주장이 있기는 하지만 봉쇄 정책을 선택한 이스라엘 당국이 실패한 것을 보면 무엇이 더 효과적인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살펴볼 일이다. 유럽의 경우 무비자 통행을 규정한 국경 개방 협정인 솅겐 조약이 코로나19로 무력화된 것을 보면 ‘유럽 가족’은 ‘아름다운 시절’에나 가능한 것이고 언제든지 20세기 초로 회귀하거나 해체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말하자면 정치, 경제의 통합과 초국가적 결합을 목표로 한 EU의 이상도 국가의 이익 앞에서는 무너질 수 있다는 말이다.

『지리의 힘 Prisoners of Geography』의 저자 팀 마샬 역시 감염증 상황을 두고 한 말은 아니지만, 유럽이 20세기 초로 회귀해서는 안 되며 ‘지리의 법칙’을 극복해야 하는데 평화 말고는 해답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면 유럽, 특히 서유럽은 미 대륙보다는 못하지만 상대적으로 ‘기후의 축복’과 ‘지리적 축복’을 충분히 받은 땅이라는 것이다. 하나의 대륙에 수많은 민족국가들이 자리를 잡은 이유로는 산맥과 강, 계곡이 국경을 만들어냈고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가 미국과 같은 거대 국가의 출현을 불가능하게 했다. 특히 독일에서 발원하여 흑해까지 흘러가는 다뉴브 강은 천연 국경을 만들어내 18개의 국가를 이루고 있다. 스페인의 경우 피레네 산맥이라는 장벽에 막혀 서유럽과의 교역이 제한되어 국가 발전에 어려움이 있었고, 프랑스는 유럽에서 지리적 이점을 가장 많이 누린 국가로 비옥한 토지와 서로 연결된 강들로 권력의 중앙 집중화가 가능했다.

▲ 유럽 지도
▲ 유럽 지도

독일의 지리적 문제는 서쪽에는 프랑스라는 전통의 강국이 있고 동쪽에는 러시아라는 거대한 곰이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독일이 선택한 해결책이 전쟁이었다면 현재의 독일은 재무장을 스스로 경계하며 ‘선량한 유럽 국가’로 남아 있기를 원하고 대신 ‘메이드 인 저머니’라는 일류 상표를 전 세계에 보내고 있다. 영국은 섬나라이기 때문에 애초에 유럽대륙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해양 국가였지만 반유럽 정서의 가속화와 이민자 문제로 ‘영광스러운 고립’을 선택할지도 모른다.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처했던 그리스의 경우 지리적 차별을 충분히 받고 있다고 한다. 농사지을 토지가 충분하지 못하고 해양 교역로 역시 터키에 막혀 있으며 1천 4백 개에 이르는 섬과 복잡한 해안선은 과도한 국방비를 유발한다. 여기까지는 대체로 우리가 세계사와 지리 공부를 통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실들이다. 다만 팀 마샬의 설명은 언론인답게 명쾌하고 간결하다. 그가 진단한 유럽에서 균열이 나타나고 있는 이유와 해결의 방향도 명확하다.

유럽의 첫 번째 지리적 분열은 서유럽과 남유럽 국가들 사이의 산업화 정도와 그에 따른 빈부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지리적 축복’을 받지 못한 스페인과 그리스, 이탈리아 남부 등의 남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재정 위기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은 ‘지리의 포로’를 지나치게 강조한 면이 있지만 우연으로만 보기도 힘들 것이다. 디폴트 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에 자신들의 세금이 쓰이는 것에 불만인 부유한 국가들과 ‘아플 때나 건강할 때도’ 함께 해야 한다는 입장 사이에 차이를 좁히기는 쉽지 않다. 이민자들과 난민의 문제는 경제와 문화, 정서의 문제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더욱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민자들, 특히 난민의 수용에 있어서 유럽 국가들은 서로 자국이 더 많은 책임을 떠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 침체와 테러, 지금의 감염증 사태 등으로 반이민과 난민에 대한 배척 정서는 더 커질 것이다.

저자 팀 마샬은 최근의 저서 『장벽의 시대』에서 세계 각국이 물리적 장벽을 세움으로써 민족주의를 공고히 하고 자국의 정체성과 경제적 이익을 지키려 하는 현상을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유럽이 ‘지리의 법칙’을 극복하려 한 이유가 경제적 번영 이전에 전쟁에 대한 기억과 평화에 대한 갈망이었음을 분명히 한다. 1883년 6월 5일 런던과 파리, 이스탄불을 잇는 꿈의 열차 ‘오리엔트 특급’의 이상을 실현시켰던 유럽 각국이 이제는 서로 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박아르마 서평위원/건양대·프랑스 문학

건양대학교 휴머니티칼리지 교수. 서울대 대학원에서 프랑스 현대문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양대 휴머니티칼리지 브리꼴레르 학부 학부장과 박범신 문학콘텐츠 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지은 책으로 『글쓰기란 무엇인가』, 『투르니에 소설의 사실과 신화』가 있고, 번역한 책으로 『살로메』, 『춤추는 휠체어』, 『까미유의 동물 블로그』, 『축구화를 신은 소크라테스』, 『칸트 교수의 정신없는 하루-칸트 편』, 『데카르트의 사악한 정령-데카르트 편』, 『녹색 광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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