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 코드와 거짓 세상 개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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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코드와 거짓 세상 개혁하기
  •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 승인 2020.06.0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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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사색]

요즘 뉴스 헤드라인을 접하자면 피카소 코드가 떠오른다. 다빈치 코드는 아는데, 피카소 코드는 무엇이냐고?

우리가 아는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와 동명의 영화는 픽션이다. 그리고 수많은 대중이 이 허구를 진실인 양 믿고, <댄 브라운 따라잡기> 같은 관광 상품을 찾는 것은 허구적 스토리텔링과 실제 예술을 잘 섞은 영리한 문화산업 때문이다. 물론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작품에 거짓과 진실에 대한 코드를 표기했는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이다. 반면에 피카소는 창작에서 각종 기호와 상징, 곧 ‘피카소 코드’를 통해 거짓과 진실의 문제를 파고들었다. 당대의 사회적·정치적ˑ문화적 실상을 새로운 관점과 방법론으로 작품 속에 담아놓고, 별다른 설명 없이 해석을 우리에게 맡겼다. 

피카소는 말했다. “예술은 우리가 진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짓이다.” 즉 “예술은 거짓”인데, 이 ‘거짓’이 우리로 하여금 진실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다는 것이다. 구태여 플라톤의 <국가론>과 ‘동굴의 비유’ 및 신플라톤주의를 논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과연 실상인지, 아니면 실상의 그림자인지, 그리고 이 세계를 반영하는 예술은 그 그림자를 모방하는 거짓에 불과한지에 대한 담론은 유구한 역사를 지닌다. 결국 피카소는 진실에 근접하고자 수백 년간 서양미술을 지배한 개인중심적 원포인트 시각을 폐기하고, 다양한 시각에서 세상을 보는 혁신적인 입체주의 방법론을 소개했다. 또한 동료 브라크와 함께 이 세계에 대한 모방이자 ‘거짓’인 회화에 ‘진실’인 실제 사물(오브제)을 도입하는 방법론, 콜라주를 제시했다.

피카소가 1910년대 콜라주 작업들에 붙인 각종 신문, 잡지 조각들은 세상과 미술의 진실과 거짓에 대한 그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낸다. 내 은사인 페트리시아 레이튼 교수가 콜라주 작업의 기사들을 돋보기로 일일이 읽어본 결과, 프랑스 식민정책을 비롯한 백인중심적 서구제국주의 정치, 사회에 대한 보도들로 가득했다. 피카소는 ‘거짓’인 예술을 통해 소위 ‘진실’이라는 세상에 만연한 거짓들을 밝히고, 시대적 필요에 부응하는 혁신적 관점에서 새로운 질서체계를 수립한 것이다. 

미국 백인 경찰의 가혹행위로 인한 흑인 사망이 촉발한 반인종차별 시위가 세계 도처로 확산되고, 이미 코로나 팬데믹으로 힘든 미국 도시들에서 약탈, 통행금지, 평화적 집회에 대한 최루탄 대응과 병력투입이 가중되고 있다. 미국 체류 시절에 워싱턴 D.C.에서 수천 명 넘는 국립기관 근무자 중 유일한 한국인으로 일하던 때가 생각난다. 당시 인종과 젠더 문제는 내 정체성이 곧 “한국 여자”일 정도로 일상적이었다. 그런데 흑인 대통령이 나오려면 20년은 족히 걸리리라고 예상한 지 10년도 못 되어 오바마가 당선되더니, 때 이른 개혁 뒤에는 구 기득권 세력의 전복 현상이 역사에 반복되듯 아니나 다를까 8년 후 트럼프와 보수파 시대가 도래했다. 백인중심 팍스 아메리카나에서 뉴노멀 시대까지 최근 가속화된 양극화와 갈등 양상은 다양한 인종ˑ문화ˑ계층의 조화를 주창해온 아메리칸드림과 미국적 혼종사회가 거짓임을 드러냈다는 여론이 비등한다.

미국 사회의 무수한 부조리와 폐단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 내 절대다수인 이등 시민들을 좌절시켜온 뿌리 깊은 고질병인 현대판 음서제와 ‘SKY 캐슬’ 시스템에 갇힌 젊은 세대는 아메리칸 드림식의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삼성과 현대가 곧 구글 같은 직장 체제로 바뀔 것을 기대하다가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에 가득한 ‘거짓들’에 절망한다. 21세기에도 우리 기득권자들은 ‘나 홀로’ 원포인트 관점과 옛 체제를 수호하며, 백 년 전의 피카소식 다양한 관점과 체제로 거짓 세상 개혁하기조차 거부한다. 그러나 피카소 코드처럼 세상에 가득 찬 거짓을 성찰하고, 그 거짓이 깨우쳐주는 진실들을 젊은 세대에게 보이는 것이 교육계 종사자의 할 일이지 싶다.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미국 델라웨어대학(Universityof Delaware)에서 미술사석사와 철학박사 취득, 국립 스미소니언박물관 Fellow와 국제학술자문위원, 미국 국립인문진흥재단(NEH) Fellow, 중국 연변대학 객좌교수, 일본 동지사대학 국제대학원 객원강의교수 등을 역임하고, 현대미술사학회 회장과 미술사학연구회 부회장을 지냈다. 현재 원광대 조형예술디자인대학 미술과 교수로 원광대 국제교류처장과 한국문화교육센터장, 전라북도 문화예술진흥위원,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 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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