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총선과 대학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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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총선과 대학의 과제
  • 민경찬 논설고문/연세대 명예교수·과실연 명예대표
  • 승인 2024.03.26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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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찬 칼럼]

일부 대학들은 오랫동안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 공인회계사 등 각종 ‘고시 합격자 수’를 그 대학의 평판 및 주요 목표 중의 하나로 생각하고 이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특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현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 고위 공직자 등이 많은 경우 이러한 ‘고시 합격’에 기반해 성장하여 오늘의 위치에 이르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대학들은 자신들이 공들여 배출한 인재들이 사회에서 보여주는 모습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2023년 7월 스트레이트뉴스가 국민의 신뢰와 불신에 대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정치인에 대한 불신은 82.1%, 공무원은 63.5%, 기업인은 46.2%로 나타났다. 사실 국민들은 종종 일부 정치인의 염치, 부끄러움, 품격이 없는 태도, 윤리의식, 언어 등에서 아연실색할 때가 많다. 심히 우려가 되는 것은 자라나는 세대들은 이러한 지도자들의 모습을 보며 성장하는데, 다음 세대는 어떻게 될까? 어떤 사회로 변해갈까? 이러한 사회 환경에 대해 대학은 책임이 없는 것일까? 어떤 책임감을 가져야 할까? 

총선이 이제 2주 정도 남았다. 요즈음 언론에 등장하는 용어들이 많다. 공천 막장, 횡사, 벨트, 돌풍, 악재, 역풍, 막말, 전과, 사퇴, 배제, 탈당, 내홍, 제왕, 독재 등이다. 시스템 공천, 전략 공천, 위성정당 이것은 또 무엇인가? 모두가 표 계산에만 초점을 맞추고, 국민을 ‘현혹’시키는 말과 상대방에 덫 씌우기를 통해 반사이익을 극대화하기에만 올인하는 것 같다. 국민은 ‘유인’ 대상일 뿐이고, ‘그들끼리만의 게임’인 것 같다. ‘전략공천’은 지역과 연관이 없었던 사람을 갑자기 보내기도 한다. 후보자의 자질 문제는 이슈가 되지도 않는다.

본래 선거는 국민의 뜻을 묻는 소중한 기회 아닌가? 장 자크 루소는 ‘국민은 섬기기 위해 지도자를 선출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 선출했다. 그런데 국민은 투표할 때만 자유롭고 투표가 끝나면 다시 노예가 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사실 오늘의 많은 정치인들도 선출과 동시에 국민을 지배하고 그 위에 군림하려 든다. 이들에게 국민은 무엇일까? 정치란 이런 것인가? 국가 경영이란 이런 것인가?

한편 생각해보면, 정치는 결국 ‘국민의 눈높이’라고 했던가? 현재 정치인들을 비난하기 어려운 것이, 그들은 국민들이 표를 주는 방식에 최적화된 행동을 하는 것 뿐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학자들은 일반 국민들이 교육을 통해 또는 정치적 경험을 통해 건강하고 수준 높은 민주시민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그동안의 보아온 정치 행태도 결국은 ‘나’의 책임인가? 우리 모두는 4월 10일에 어떻게 할 것인가? 사실 후보자의 홍보자료나 정견발표로는 표를 결정하기 어렵다.

우리는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이 교육체제를 시민교육 또는 정치교육의 형태로 운영해왔음을 주목해야 한다. 물론 현재 여러 문제점도 보이지만 말이다. 미국은 건국 이래 민주주의가 시민교육과 참여에 의존하므로 학교교육을 통해 올바른 시민을 길러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독일은 강압 금지, 논쟁성 유지, 수요자 지향성이라는 3대 원칙을 시민정치교육의 원리로 삼고 있다. 영국은 사회적·도덕적 책임, 공동체 참여, 정치교양이라는 3가지 요소를 교과과정에서 다루며 시민성교육을 실현한다. 

우리의 교육현장은 어떠한가? 우리도 민주시민교육 자체는 해방 후 계속 시행해왔다. 그런데 과도한 입시교육, 주입식 교육 환경과 정치적·이념적 투쟁 환경은 시민교육을 주변으로 밀어냈다. 한국 정치가 민주주의 퇴행 현상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국민이 자유민주시민으로서의 덕목과 자질을 갖추게 하는 교육 훈련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렇게 준비된 국민 중에서 ‘정치인재’를 만들어내는 사회 시스템과 문화를 형성해야 한다. 시급한 일이다. 여기에서 국민도 올바른 선택을 위한 안목을 키운다.

‘아이 하나 잘 키우려면 온 마을이 나서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준비된 정치인재’도 우리 사회 전체가 나서서 키워야 한다. 정치인의 자질로는 막스 베버가 말한 열정, 책임감, 균형의식과 더불어 정직, 진정성을 포함한 도덕성, 겸허, 배려, 경청, 공감력, 차이 존중, 다양성 포용, 역지사지를 포함한 품격 등이 제시된다. 이는 공교육이 어린이 단계부터 강조하던 역량, 태도, 가치 관련 내용이다. 그러므로 교육기관들은 배출하는 인재들이 사회에서 보여주는 모습에 대해 무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특히 국가 교육의 흐름을 이끌고, 사회에 인재를 내보내는 대학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요즈음 대학교육의 혁신에서 강조되는 것처럼, 교실에서 배운 내용을 국내외 사회 현장과 연계하며 체험, 경험하는 일과 다양성을 중시하며 토론 능력, 협업 능력을 키우는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글로벌 시민으로서 가치관, 국가관, 세계관을 바로 세우는 일도 중요하다. 이는 사실 각 대학이 내세운 '인재상'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일이다. 이러한 교육과 훈련은 재학생은 물론, 사회에 진출한 졸업생들에 대해서도 다양하게 제공해야 한다.

대학은 '역량' 및 ‘취·창업’, ‘고시 합격자’ 통계의 수준을 넘어, 배출하는 학생들이 시민교육과 함께 도덕성과 품격 등의 덕목과 자질을 갖춰 사회에서 활동하도록 키워야 한다.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를 통해 우리 사회와 지구촌 인류를 위해 무엇으로,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에 대해 고심하는 심성과 태도를 갖게 하는 일이다. 학생성공도 개인을 넘어 공동체 성공을 의미해야 한다. ‘능력’이 중요하지만, 모든 일은 결국 ‘사람’에 달렸다는 점을 기억하고, 학교가 모든 행사,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덕목과 자질도 학생들에게 체화되도록 의도를 가지고 설계해야 한다. 

유럽대학연합(EUA)은 2021년 발표한 <비전 2030>에서 ‘벽이 없는 대학들’이라는 주제 아래 대학들이 시민교육과 함께 사회변화를 이끄는 역할을 더욱 확대하겠다고 하였다. 이들은 유럽사회에 민주주의와 정치시스템이 도전을 받고 있음을 인식하며, 민주주의의 가치를 손상시키는 극단주의를 경계하고 있다. 다원적이고 민주적인 사회의 기반을 흔드는 거짓 정보, 조작된 증거 등에 대해서도 구성원들이 사회에 적극 참여하며 대응해나갈 것을 독려하고 있다. 

우리는 현재 대전환의 시대에 살며 국내외적으로 매우 어려운 환경에서 새로운 기회와 함께 여러 심각한 위기들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도전에 맞서 국가 및 지역 발전의 큰 흐름을 만들고, 법과 제도를 세우는 정치인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공천 제도를 포함한 정당과 국회 시스템의 현실도 문제지만, 결국 '사람'이 아니겠는가? 국민의 삶과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지도자들의 모습이 보고 싶다. 대학은 배출한 인재들의 사회적 참여 모습에 대해 큰 책임의식을 가지기 바란다. 

 

민경찬 논설고문/연세대 명예교수·과실연 명예대표

연세대 수학과 명예교수로 연세대 대학원장, 대한수학회 회장, 국제퍼지시스템협회(IFSA) 집행이사 및 부회장, 교육과학기술부 정책자문위원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과학기술분과 의장, 포스코청암재단 이사, 국무총리 소속 인사혁신추진위원회 민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과실연 명예대표, 태재학원 감사, 국가인재경영연구원 이사장, 기초과학연구원(IBS) 과학자문위원회(SAB) 위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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