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삶을 살 것인가? 유익한 삶을 살 것인가? - 키케로의 『의무론』
상태바
훌륭한 삶을 살 것인가? 유익한 삶을 살 것인가? - 키케로의 『의무론』
  • 임성진 정암학당·서양철학
  • 승인 2024.03.23 19: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옮긴이의 말_ 『의무론』 (키케로 지음, 임성진 옮김, 아카넷, 368쪽, 2024.02)

 

겉에서 보면 멋있고 튼튼해 보이는데 실제로는 하자가 많은 집을 누군가 파는데, 집의 하자를 판매자만 알고 구매자는 모른다고 해 보자. 만약 여러분이 집의 판매자라면, 구매자에게 하자를 말하지 않고서 집을 최대한 비싸게 팔 것인가 아니면 하자를 말하고서 집을 정가대로 팔 것인가? 하자를 말하지 않고서 집을 최대한 비싸게 판다면 금전적으로 최대 이익을 볼 것이고, 하자를 말하고서 집을 정가대로 판다면 양심을 지킬 것이다. 이익을 우선하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양심을 우선하는 삶을 살 것인가?

우리는 보통 자신의 신념에 따라 이익을 우선하거나 양심을 우선한다. 이익을 추구하면 양심을 버리고, 양심을 지키면 손해를 본다. 그런데 양심을 지키면서 동시에 이익을 추구하는 일은 불가능할까? 키케로는 『의무론』에서 이 일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데, 훌륭한 삶과 유익한 삶이 서로 다르다는 보통의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기 때문이다. 훌륭한 삶과 유익한 삶이 양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물음에 답하기에 앞서 『의무론』의 주제를 살펴보면, 주제는 의무이다. 보통 의무는 마땅히 해야 하는 행위로 이해된다. 그런데 키케로는 『의무론』에서 이런 의무를 뜻하는 올바른 의무뿐만 아니라 중간 의무도 논의한다. 중간 의무는 평범한 사람의 의무로서 적합한 행위를 뜻한다. 적합한 행위는 인간의 본성에 따르는 행위이다. 어버이에게 효도하고 조국에 충성하는 것처럼 이성의 선택에 따르는 행위도 적합한 행위이지만, 자기 보존을 위한 행위 또는 화난 친구에게 무기를 돌려주지 않는 것처럼 상황에 맞는 행위도 적합한 행위이다. 결국 『의무론』에서 의무는 마땅히 해야 하는 행위뿐만 아니라 적합한 행위도 뜻한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출처: 위키백과)<br>
                키케로(출처: 위키백과)

우리는 왜 의무를 이행하며 살아야 할까? 그 이유는 의무를 이행하면 훌륭하게 살지만, 의무를 소홀히 하면 추하게 사는 데 있다.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의무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지만, 우리는 의무가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훌륭한 행위와 추한 행위 가운데, 유익한 행위와 무익한 행위 가운데, 훌륭한 행위와 유익한 행위 가운데 어떤 행위를 할지를 두고 종종 고민한다. 의무가 무엇인지 알려면 훌륭함이 무엇인지, 또 유익함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키케로는 『의무론』 1권에서 훌륭함을 논의하고, 2권에서 유익을 논의한다. 

키케로는 『의무론』 1권에서 훌륭함이 무엇인지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훌륭함에는 네 가지 덕, 즉 지혜, 정의, 영혼의 위대함(용기), 적합함(절제)이 있다. 지혜는 진리 탐구와 발견이고, 정의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며, 영혼의 위대함은 외적인 것들을 경멸하고, 대단히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하는 것이며, 적합함은 자유인다운 모습과 함께 절제를 드러내는 것이다. 훌륭함은 네 가지 덕 모두를 아우르고 있지만, 그 모습을 단번에 드러내지 않고, 네 가지 덕 각각을 통해 일부만 드러낸다. 그다음에 키케로는 『의무론』 2권에서 유익이 무엇인지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부, 권력, 건강, 영광 등을 유익으로 여긴다. 

키케로는 『의무론』 3권에서 훌륭함과 유익의 충돌 문제를 다룬다. 예컨대 누군가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잔인한 참주한테서 옷을 빼앗는다고 해 보자. 옷을 빼앗아 입으면 얼어 죽지 않기 때문에 유익하지만 남의 것을 빼앗기 때문에 추한 반면, 옷을 빼앗아 입지 않으면 훌륭하지만 무익하다고 생각된다. 이처럼 훌륭함과 유익은 서로 다른 것 같다. 하지만 키케로는 훌륭함과 유익이 서로 다르지 않기 때문에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잔인한 참주는 제거되어야 마땅한 존재이므로 그의 옷을 빼앗아 입는 행위는 훌륭하고 유익하다. 키케로는 유익과 유익해 보이는 것을 구분해서 훌륭함과 유익해 보이는 것이 서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가 동생 레무스를 죽이고 나서 권력을 독차지한 행위는 하면 안 되는 추한 행위일 뿐 유익해 보이는 행위에 불과하다. 

키케로가 주장하듯이 훌륭함과 유익이 서로 다르지 않으면, 우리는 훌륭하게 살아야 할지 아니면 유익하게 살아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훌륭한 삶이 유익한 삶이고, 유익한 삶이 훌륭한 삶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유익을 추구하며 살아야 할지 아니면 유익해 보이는 것을 추구하며 살아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처음에 말했듯이 겉에서 보면 멋있고 튼튼해 보이는데 실제로는 하자가 많은 집을 파는 상황으로 되돌아가면, 구매자에게 하자를 말하지 않고서 집을 최대한 비싸게 팔 것인지 아니면 하자를 말하고서 집을 정가대로 팔 것인지? 집을 최대한 비싸게 파는 것이 진정 유익인지? 집을 최대한 비싸게 파는 것이 추하고 유익해 보이는 것에 불과하면, 집을 정가대로 파는 것이야말로 유익하고 훌륭하다. 이처럼 우리는 훌륭한 삶과 유익한 삶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고, 추한 삶과 유익해 보이는 삶을 피해야 한다. 훌륭한 삶과 유익한 삶을 함께 추구해야 한다는 점이 우리가 키케로의 『의무론』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임성진 정암학당·서양철학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했고, 같은 학교 철학과(서양철학 전공)에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정암학당 연구원과 서울대 강사로 있다. 옮긴 책으로 『설득의 정치』(공역), 『세네카의 대화: 인생에 관하여』(공역), 『아리스토텔레스 선집』(공역)이 있으며, 지금은 키케로의 『국가론』을 번역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트라시마코스 정의(正義) 규정의 일관성 고찰」, 「글라우콘의 도전」,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에서 정치가의 지배와 법의 지배」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