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들에게 2차대전은 나치즘보다 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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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들에게 2차대전은 나치즘보다 정당했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4.03.23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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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인의 전쟁 1939-1945 | 니콜라스 스타가르트 지음 | 김학이 옮김 | 교유서가 | 974쪽

 

2차대전 사료로 독일인의 혼란스러운 속내에 접근하는 이 책은 집이나 길거리에서 포착된 수많은 내밀한 이야기로 2차대전의 편견을 헤집는다. 특히 일기, 편지, 보고서, 법정 기록에 담긴 독일인의 생생한 육성은 전체주의의 전쟁범죄에 숨은 낯설고 새로운 진실을 증언한다. 그 진실이란 독일 국민이 패전의 순간까지 적극적으로 2차대전에 임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그들이 내면에 품었던 민족방어 전쟁 논리가 나치즘과 결부되며 어떻게 발전했는지 뒤따라간다.

저자는 전쟁에 대한 해석이 학문적 연구와 대중적 의식 모두에서 둘로 나뉜다고 주장한다. 그 두 가지 해석은 전쟁 시기의 독일인을 이야기할 때 상충한다. 한쪽은 모든 독일인을 희생자로 간주하고 다른 쪽은 모든 독일인을 가해자로 분류한다. 저자는 2005년의 종전 50주년 기념 과정들을 지켜보며 이 책의 출발점인 생각과 마주했다. 그는 기존의 역사가들이 올바른 교훈을 전쟁사에서 이끌어내려다가 역사 연구의 본질적 과제 중 하나를 외면했다고 판단했다. 그것은 역사가가 무엇보다도 우선 과거를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1939년 8월 26일에 동원령이 공포되었을 때 독일인은 미래를 몰랐다. 그들은 과거를 떠올렸다. 1차대전 패전이라는 불안한 그림자가 그들에게 드리웠다. 전쟁의 위기가 사회를 과격하게 변화시킨다는 생각은 나치 정권과 독일 사회의 관계를 재고하게 한다. 역사가 대부분은 함부르크 폭격과 스탈린그라드 패배가 독일인을 패배주의로 몰아넣었다고 가정했다. 그러나 독일인은 전쟁을 포기하지 않았다. 나치즘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의 복잡하고 혼란스럽고 역동적인 내면에 집중하는 이 책은 상식과 다르게 2차대전을 설명한다. 독일인에게 2차대전은 나치즘보다 정당했다. 그 이유는 전쟁이 생산해낸 종말론에 있었다. 그들은 의도적이고 폭력적인 정복 전쟁을 민족 방어 전쟁으로 여겼다. 전황이 악화될수록 애국적 헌신으로 더욱 단호히 제 나라를 방어하려고 했다. 독일 사회가 종말론적 사고방식을 수용한 일이야말로 2차대전 후반기에 독일인에게 발생한 결정적 변화였다.

유럽에 사는 유대인 대부분은 1942년 초에 아직 살아 있었다. 그러나 1942년 말에 유대인 대다수는 사망한다. 학살 소식은 독일인들에게 빠르게 확산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시작한 소문은 전화 교환원들, 철도원들, 화학 공장 건설 엔지니어들을 통하여 퍼져나갔다. 선술집 술꾼들의 대화와 수많은 사람의 일기에도 등장한다. 그동안 많은 역사가는 독일인들이 홀로코스트에 대한 정보를 가까운 친척과 가족들 사이에서만 비밀스럽게 공유했다고 생각했다. 친밀한 폐쇄적인 집단 너머에서는 익명의 소문으로 존재했다고 가정했다. 홀로코스트는 공적인 자리에서 대화의 주제가 될 수 없었다는 추정이다. 독일 경찰과 친위대의 수장인 하인리히 힘러는 유럽 유대인의 절멸이 비밀리에 공유해야 하는 과업이며 ‘우리는 그 비밀을 무덤까지 가져가야 한다’고 나치 제3제국 지도자들에게 역설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비밀은 은밀하지 않았다. 많은 독일인이 홀로코스트라는 비밀을 공유했다. 그렇다면 그 ‘비밀’이 어떻게 일반인들 사이에서 공유됐던 것일까?

이 책은 괴벨스가 사용한 조심스럽고 섬세한 보도 관리에 집중한다. 괴벨스는 절멸에 대한 정보를 언론으로 독일인에게 넌지시 내비쳤다. 학살 정보로 공모의 느낌을 자아내려는 의도였다. 이 과정에서 ‘알지 못하는 앎’이 구축되었다. 그것은 공적인 충성이나 도덕적 책임감을 요구하지 않는 지식이었다. 이 책은 ‘침묵의 나선형’이라는 개념으로 그 지식을 설명한다. 그 용어는 전후 서독의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엘리자베스 뇔레-노이만이 1974년에 고안했다. 그는 전후 서독의 민주주의와 관련하여 그 용어를 사용했지만, 그것은 1941년과 1942년에 영향받은 개념이기도 했다. 뇔레-노이만에 따르면 소수자의 위치에 있다고 느끼는 개인은 고립이나 사회적 처벌을 두려워해서 침묵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경향은 소수 의견을 견지하는 잠재적인 사람의 수를 줄인다. 그 와중에 언론이 다수의 견해를 보도하면 다수 의견은 도덕적 지위가 강화되고 안정된다. 뇔레-노이만은 개인의 심리적 효과에 주의했다. 사적인 압력이 고립과 관련한 개인의 공포심을 촉발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보여준 것이다.

지금껏 여느 역사서는 홀로코스트 분석에서 작동 방식을 강조했다. 홀로코스트는 지난 20년간 나치 독일과 2차대전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결정했다. 비교적 최근에 정립된 시각이다. 그러나 그 시각 자체는 독일인들이 2차대전 당시 학살에서 자신의 역할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는 독일인이 대량 학살에 관한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지식을 어떻게 자아에 통합했는지 이야기한다. 독일인에게 중요했던 것은 나치즘이 아니라 전쟁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제노사이드가 전쟁의 배경에 있다고 이해했다. 그렇기에 유대인과 독일인은 전혀 다른 기대와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이 책의 저자는 바로 그 문제성이야말로 2차대전 독일사를 서술하는 이 책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독일인은 제 나라가 일으킨 전쟁이 대량 학살이라는 점을 자각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 사실에 어떻게 영향받았을까? 달리 표현하면 2차대전은 독일인이 대량 학살에 대한 지각을 형성하는 데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복잡한 질문을 제기하는 이 책은 전범국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풍성하고 독특한 역사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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