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빼놓고 한국 문학을 말할 수 없고 ‘시화’를 빼놓고 시를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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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빼놓고 한국 문학을 말할 수 없고 ‘시화’를 빼놓고 시를 말할 수 없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4.03.23 12: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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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시화사 | 안대회 지음 | 성균관대학교출판부(SKKUP) | 704쪽

 

이 책의 연구 대상은 시화다. ‘시와 그림’ 하는 시화(詩畵)가 아니라 ‘시와 이야기’가 섞인 시화(詩話). 시화는 오랫동안 사랑받아 널리 읽혀온 수필이자 비평으로, 시 쓰기 좋아하고 시 이야기하기 좋아한 한국인의 전통이 녹아든 문학 갈래다. 시를 보는 기준, 시인에 대한 평가, 시작법, 시에 얽힌 일화 등 시와 연관된 모든 것을 논의하는 공간이었을 뿐 아니라, 시의 영역을 넘어 인간과 사회를 두루 비추는 거울이었다. 여기에 더해 시선집이면서 동시에 이야기책으로서 사대부의 문화를 다양하게 보여주는 수필과 필기(筆記)의 성격까지 공유했다. 요컨대 시화는 문학과 역사, 사회, 풍속, 학술을 두루 엿볼 수 있는 도구다.

이 책은 고려시대 정서(鄭敍)의 『잡서(雜書)』와 이인로(李仁老)의 『파한집(破閑集)』에서 출발해 최근 신형철의 『인생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근 천여 년을 이어온 시화의 역사를 다룬다. 전체 시화의 흐름을 역사적 관점에서 조명하고, 주요 시화의 문헌적·역사적 가치를 엄정하게 평가한 책이다.

기나긴 시간 동안 200종에 이르는 적지 않은 수량의 시화가 출현했다. 저자는 이 시화들이 이뤄온 숲을 종단하여 살피고 추적하면서 한국 문학사에 반드시 기록되어야 할 시화사의 궤적을 차근차근 짚어나간다. 시대 추이와 문학 경향의 변화에 따르는 시화 저술의 수량 증가ㆍ달라지는 주제와 대상ㆍ갈수록 풍부해지는 시 비평의 양상 등에 주목했으며, 문예사조의 변화ㆍ정치와 사상의 차이ㆍ외국 문학 수용에 호응하고, 한국 고전문학의 주요 특징과 미학을 제시하면서 다양한 흐름을 보여준 시화들의 발달사를 정립해낸다.

책은 구조적으로 고려시대 시화와 조선시대 시화 그리고 20세기 이후 현대 시화의 3단계로 구분하여 서술됐다. 눈길을 붙잡는 대목도 여럿이다. 무엇보다 한국 시화와 필기의 출발점을 정서의 『과정잡서』(일명 『잡서』, 1170년 이전 저술이지만 일실되었다)로 다시 잡을 것을 강조한다. 알려져 있기로 한국 시화와 필기의 첫 작품은 이인로의 『파한집』(1211년 저술)이다. 이는 한국 문학사에서 깨지지 않는 오랜 상식이다. 그러나 저자는 타당한 근거 자료들과 합리적인 추론을 바탕으로 여기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른바 ‘사라진 첫 시화’인 『잡서』를 한국 시화의 효시로 내세운다. 이를 따르면, 구양수(歐陽脩)가 최초의 시화인 『시화(詩話)』를 지은 1071년에서 100년쯤 지난 시점에 고려에서 첫 시화가 나오게 되는 셈이다.

 

시화사의 지평을 넓혀 현대의 시화들에도 집중한다. 역사상 시화는 시를 말하는 주요 형식으로 대부분 한시를 대상으로 삼았으니 한시문 생산이 단절된 시대엔 근본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저자는 시화가 다루는 대상이 한시에만 국한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면서 20세기 시화들의 대상이 점차 한시에서 시조와 현대시로 전환되는 과정에 주목한다. 현대 시화는 변화를 겪으며 거듭나는 중이다.

아울러 일간지에 격주로 연재되던 한 평론가의 시화인 『인생의 역사』를 한국 시화사 끝자리에 놓아둔 모습이 인상적이다. 21세기 교양 독자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가는 글쓰기로 시화 형식을 택한 이 저술에 대해 저자는 작가와 작품을 말하는 시화의 본모습에 더 가까워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한국 시화의 긴 역사에서 시화가 낡은 형식으로 안주하지 않고 새롭게 변화하는 열려 있는 비평 형식임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한다. 시화의 글쓰기와 사유 방식은 서구의 문학비평에서 출발한 담론 방식과는 다른 특징과 개성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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