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는 사이코패스고 국민은 위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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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는 사이코패스고 국민은 위선자다
  •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 승인 2024.03.23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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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명 교수의 〈생활에세이〉

 

사이코패스, 파렴치 잡범, 무식한 똥고집 ... 이런 사람들이 지금 한국 정치의 한복판에서 우리를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뉴스와 논평은 하루 하루 똑같은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하도 지겹고 한심해서 안 보려고 해도 자꾸 보게 된다. 시장의 악다구니 싸움 같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걸 한심하다고 한탄하는 국민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봅시다. 이건 최소한 늘어지고 늘어지는 대한민국 연속극들보다는 더 재미있지 않습니까? 아, 이 말은 주로 남자에게 해당되는 말이겠다. 여자들은 아무래도 연속극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이 말을 여성 비하라고, 또는 성별 갈라치기라고 욕하는 사람들이 나올 법한 세상이 되고 말았지만, 나는 그런 욕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 있게 이 말을 했다.
 
좌우지간, 이들의 싸움박질이 없었다면 할 일 없는 연금생활자인 내가 하루의 몇 시간을 어떻게 채웠을까 생각하니 이들이 고맙기 짝이 없다. 연금을 받든 안 받는 태극기 들고 행진하거나 태극기 들고 행진은 못하고 집구석에서 핏대만 올리는 수많은 영감들은 그 핏대에서 삶의 활기를 찾을 수 있고 그 핏대로 무료한 시간을 때울 수 있다. 그렇다고 영감들이 그 한심한 정치인들에게 고마워할 일은 아니다. 영감들은 영감들의 삶이 있고 정치인들은 정치인들의 삶이 있으니 각자 본분에 충실할 뿐이다.

사이코패스, 파렴치 잡범, 무식한 똥고집이 한국 정치의 한가운데서 활개를 치는 것은 그들을 지지하는 뭇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이코패스가 아무리 사이코패스 짓을 해도, 파렴치 잡범이 아무리 파렴치한 언사를 늘어놓아도, 무식한 똥고집이 아무리 무식한 똥고집을 부려도 나는 몰라 하면서 떠받들고 반대파를 욕하고 헐뜯기 바쁘다. 그러니 사이코, 파렴치, 무식이 자기들의 그 사이코, 파렴치, 무식에 대해 아무런 문제를 못 느끼고 오히려 그것이 자랑인양 기세등등한 것이다.

이런 사람들 말고 우리가 진정 존경할 만하고 능력도 뛰어난 사람이 정치를 하고 대통령을 하고 야당 지도자를 할 수는 없을까? 그것이 우리의 간절한 염원이다. 그런데 ... 아니다. 그것은 입발림 소리일 뿐이다. 우리는 인품이 훌륭하고 능력도 뛰어난 지도자를 원하지 않는다. 말로만 그럴 뿐이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지도자는 우리의, 우리 계급의, 우리 지역의, 우리 세대의, 우리 진영의 이익을 추구하고 우리를 흥분하게 만들고 상대 진영을 묵사발 내 줄 사람이다. 유권자의 위선이고 국민의 위선이다. 지도자는 사이코패스고 국민은 위선자다. 

그런데 실망하지 말라. 이것이 정치의 본모습이다. 정치학 교과서는 다르게 말한다. 물론 다르게 말해야 한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세상은 위선과 거짓으로 가득 차 있으니 너희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칠 수는 없다. 착하고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야 한다. 그래도 그 아이들이 커서는 거짓과 위선을 일삼는데, 어릴 적부터 잘못 가르치면 어떻게 되겠는가?   

현실 정치는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과 그를 이용하거나 추종하여 자신의 이익이나 기분을 만족시키려는 대중들의 ‘더러운’ 싸움이다. 우리가 존경하는 역사상 훌륭한 지도자들도 많이 있지만 그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더러움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것이 정치의 이상일 뿐이다. 이런 사실에 비관할 필요는 없다. 정계 상황을 매일 생중계하여 그 더러움이 두드러질 뿐, 인간사 어디인들 다를 리 없다. 정치가 더럽다고 욕하는 사람들은 자기 분야에서 매일 일어나는 인간사를 잘 보기 바란다. 그것이 인간이다.

마지막으로, 그래도 정치는 꾸준히 ‘발전’하여 왔다. 민주 제도가 정착했고, 고문과 처형이 일상사인 시절이 지나갔다. 내가 이런 글을 발표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정치가 발전하였다는 좋은 증거가 아니겠는가?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명예교수로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한글문화연대 대표 등을 지냈으며, 한국정치학회 학술상, 외솔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 『담론에서 실천으로: 한국적 정치학의 모색』, 『단일 사회 한국: 그 빛과 그림자』,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 한국 불교, 이것이 문제다』, 『대한민국 정치사』, 『한국 정치의 성격』, 『정치란 무엇인가: 김영명 교수가 들려주는 정치 이야기』 등 다수가 있다. 수필집 『봄날은 간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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