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훔볼트포룸 한국 특별전 〈아리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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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훔볼트포룸 한국 특별전 〈아리아리랑〉
  • 조원형 편집기획위원/서울대·언어학
  • 승인 2024.03.19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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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형 칼럼]

지난 2021년 10월 독일 베를린에서 개관한 대규모 세계사 박물관 훔볼트포룸(Humboldt Forum)의 한국관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바 있다. (연합뉴스 2023년 10월 6일 자 “개관 2년 獨 훔볼트포럼 한국관 ‘日 식민주의 시선’ 설명 그대로” 참조)

독일을 비롯한 서구권 박물관의 한국 관련 전시 자료가 부족한 데는 사실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개화기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이 외부 세계와 접촉하고 교류한 일이 극히 적었던 탓에 중국이나 일본 등 주변 국가를 제외한 외국에 한국의 문물이 직접 전해질 기회 또한 적었고, 그나마 외국에 소개된 전근대 한국 관련 역사 자료와 유물들 또한 외부인의 시선에서 본다면 아주 꼼꼼하게 공부하지 않는 한 이미 세계에 널리 알려진 동아시아 지역의 다른 유물들과 현저히 구별될 정도로 독특하다고 평가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외국에서 소장하고 있는 한국의 문화유산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니 이에 대해서만이라도 우선 충실하게 해석하고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큰 문제가 될 것이다.

훔볼트포룸에서는 2023년 10월 13일부터 2024년 4월 21일까지 한국 특별전 <아리아리랑>을 개최한다. ‘빗장을 걸어 잠근 왕국의 매력(Faszination für ein verschlossenses Königreich)’이라는 부제목을 내걸고 한국의 각종 모자와 탈 등 유물 수십 점을 전시하는 행사이다. 기존의 한국관이 불과 도자기 몇 점으로만 채워졌던 것에 비하면 전시물 수가 어쨌든 늘어났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전통 문화를 설명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아 아쉬움이 남는다.

우선 한국을 여전히 ‘빗장을 걸어 잠근’ 나라로 묘사한 것부터가 문제이다. 조선 시대에 쇄국 정책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던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오늘날까지도 그때 그 시절의 이미지로 한국을 묘사하는 것은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오해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개방성과 역동성을 자랑하는 나라로 탈바꿈한 지 오래이다. 그러니 특별전의 부제목 또한 ‘역동적인 민족의 소박한 전통’ 같은 식으로 지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명색이 특별전이라면 대한민국 내 박물관들과 협의해서 예컨대 교류전 같은 행사를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실제로 문을 연 ‘특별전’ <아리아리랑>에서는 대한민국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대여한 조선 시대 인물 초상화 넉 점을 제외하면 한국 박물관과 직접 교류한 흔적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애초에 한국 측과 더 적극적으로 협력했더라면 전시 내용이 조금은 더 충실해질 수 있었을 텐데 그 기회를 놓친 것 같아 아쉽다. 물론 대규모 교류전을 하는 것이 훔볼트포룸 측의 정책 방향과 맞지 않았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는 있겠지만, 국립중앙박물관 측에서 유물을 대여한 사실이 분명히 확인되는 만큼 한국 측에서도 문화유산 소개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하고자 노력했더라면 분명 지금과는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특별전에는 그 밖에도 심각한 문제 하나가 더 있어서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은 바로 전시장 곳곳에 독일어와 영어로 써 붙여 놓은 설명문 위에 한글 또는 한자로 내세운 주제어 문구이다. ‘밀리터리, 리터라티, 해츠, 女’ 같은 말이 주제어로 제시되어 있는데, 이를 과연 ‘한국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밀리터리, 리터라티(설상가상으로 ‘리터러시’도 아니고 ‘리터라티’라고 되어 있었다.), 해츠’는 글자만 한글일 뿐 한국어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영어 어휘들이다. 이 전시회를 개최한 곳은 독일인데 독일어도 아니고 영어를 글자만 한글로 바꾸어서 표기한다는 것이 과연 이치에 맞는 일인가. ‘女’는 ‘우먼’이라고 쓰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지만 굳이 한자로 표기해야 할 이유가 있었는지 주최 측에 묻고 싶다. ‘밀리터리, 리터라티, 해츠, 女’ 대신 ‘군사, 양반(이 전시회의 ’리터라티‘가 실제로 가리키는 바는 다름아닌 양반 문화였다.), 모자, 여성’ 등 한국어 어휘를 한글로 표기하고 그 아래에 독일어와 영어로 뜻 풀이를 해 놓았더라면 전시회장을 찾는 사람들의 이해도 돕고 제대로 된 한국어 어휘도 소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글 서두에서 언급한 연합뉴스 기사에 따르면 앞으로 훔볼트포룸에 한국 관련 전시 내용이 확충될 여지도 있는 듯하다. 하지만 단지 전시물의 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그 질적 수준까지 자동으로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문화유산을 어떤 방식으로 전시할지, 그와 관련된 역사적 맥락은 어떻게 소개할지, 전시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면 어떤 장치들을 활용해야 할지 등을 하나하나 면밀하게 따져서 전시 기획을 해야 할 것이다. 훔볼트포룸의 다른 전시실에 이 모든 것들을 진지하게 고찰한 흔적이 다양하게 남아 있으니 전시 관계자들과 협력자들이 한국관을 확충하고 개선하는 데도 이를 적극적으로 참고했으면 한다. 이른 시일 안에 한층 더 충실해지고 새로워진 한국관이 독일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훔볼트포룸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한국의 문화유산을 제대로 소개하는 창구가 되어 주기를 바란다.

 

조원형 편집기획위원/서울대·언어학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에서 언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만하임 라이프니츠 독일어연구원 방문학자,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등을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로 일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천주가사에 대한 텍스트언어학적 연구”, “텍스트언어학에 기반한 ‘쉬운 언어(Leichte Sprache)’ 텍스트 구성 시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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