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직필을 잃어버린 언론 … 의대 정원 확대 논란에 대한 보도를 바라보며
상태바
정론직필을 잃어버린 언론 … 의대 정원 확대 논란에 대한 보도를 바라보며
  • 남송우 논설고문/부경대 명예교수·고신대 석좌교수
  • 승인 2024.03.17 18: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송우 칼럼]

지금 한국 언론은 언론의 정체성을 제대로 유지하고 있는가? 이 무겁고도 평범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언론이 우리 사회의 길잡이 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정론직필이라는 기본적인 선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의 힘든 과제로 부상한 의대정원 확대논란에 대한 언론들의 보도를 바라보며, 우리 사회의 언론이 언론으로서의 제 기능을 정말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의대정원 확대와 관련된 그 동안의 논란 과정을 이 지면에서 세세하게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핵심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대 정원 2천 명 증원을 의사들은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거의 한 달 가까이 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함으로써 의료현장은 위기 상태이고 급기야 의대 교수들조차 의대생 증원 문제가 다시 조정 협의되지 않으면 사직을 결의할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국의대교수 비대위)의 방재승 위원장(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원장)은 16일 '16개 의대 교수들의 25일 사직서 제출' 결정을 발표하며 정부에 2천 명 증원 방침을 풀 것을 재차 요청했다.

그는 의대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은 "환자를 버리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하면서도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국민 건강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이런 비상한 시국이 전개되는 동안 언론들은 이 사태를 정말 정론직필로 대응해왔는가 하는 점이다.  

조선일보 3월 6일자 사설은 “의사들이 집단 이익을 위해 환자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파업을 하는 것은 주요국 어디에도 없는 일이다. 결코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 그로 인해 사망하거나 심각한 후유증을 겪는 환자들이 발생할 경우 그 책임을 질 수 있나. 많은 국민들이 쉽게 환자를 버리고 진료 현장을 떠나는 의사들을 보며 놀라고 있다. 의사들은 정부 방침에 반대하더라도 응급실, 중환자실, 수술실은 유지하는 등 환자 생명과 건강은 지키면서 해야 한다.”라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이 사설의 입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2천 명 증원 계획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다. 왜 의사들이 한꺼번에 2천 명이라는 대규모 증원을 반대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고려는 이미 논외의 상태이다. 결국 의사들의 집단 이익을 지키려는 결과가 사태를 이렇게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논리로 귀결되고 있다. 

그래서 조선일보 3월 9일자 사설에는 “의사들이 환자 생명을 볼모로 집단행동을 하는 것은 노조 불법 파업보다 심각한 문제다. 어떤 명분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거기에 더해 집단행동에 불참한 동료들을 위협하고 진료를 방해하려는 움직임까지 있었다. 우리 사회 최고 지식인인 의사들마저 이런 식으로 자신들 집단 이익을 지키려 한다면 개탄스러운 일이다.”라고 열을 내고 있다. 정부정책에 대한 문제점은 논의 대상에서 제외되고 오직 의사들에 대한 책임만을 추궁하고 있다.

이에 한술 더 떠 서울신문은 3월 11일자 사설에서 “의사들이 제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국민 생명을 볼모 삼아 집단 위력 시위로 정부를 굴복시키려 드는 것은 민주 체제에 대한 도전이다.”라는 상태에까지 논리를 비약시키고 있다. 이어 한국경제 3월 13일 사설은 “다른 대학 의대 교수들도 집단 사직에 동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우리 사회 지도층인 의대 교수들이 진료 현장을 이탈한 제자(전공의)들에게 ‘환자 곁으로 돌아오라’고 설득하기는커녕 ‘전공의가 다치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집단행동에 나서는 걸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겠나. 대한간호협회는 그제 성명에서 의대 교수들에게 ‘의료기술뿐 아니라 의료인의 정신을 가르쳐 달라’며 ‘일부 의사단체의 집단 이기주의에 동참해 사회적 책임을 저버리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대다수 국민도 같은 심정일 것이다.”라고 국민을 등에 업고 의사들의 행동을 질타하고 있다. 이 신문들은 이번 사태를 보는 시각이 정부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이런 입장은 부산일보 3월 14일자 사설에서도 확인된다. “의대 교수들은 교수이기에 앞서 의사다. 제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환자를 우선하는 게 옳지 않겠는가. 환자를 외면하는 전공의와 의대생들을 설득해 복귀시켜도 모자랄 판에 집단행동에 동참하겠다고 나서는 건 스스로의 본분을 저버리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이 시점에서 의대 교수들의 집단행동은 사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키는 결과만 가져올 뿐이다. 사직 운운하며 정부와 환자를 겁박할 게 아니라, 현 사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정부와 의사 사이 중재자 역할을 다하는 게 의료계 선배로서 바람직한 모습이라 할 것이다.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의대 교수들은 진지하게 고민해 보길 당부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기에 비해 충청일보 3월 6일자 사설은 “의대 증원은 시대적 요청인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의 강경책엔 아쉬운 대목이 많다. 의료인들의 격렬한 반대가 충분히 예상됐던 것이기에 그에 대한 ‘상생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찍어누르기로 될 사안은 아니기 때문이다. 되레 더욱 반발을 부추겨 극심한 의료대란을 초래할 가능성만 더 높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상생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라고 제시함으로써 양쪽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런 모양새는 국제신문 3월 14일자 사설에서도 확인된다. “전공의에다 교수마저 떠나면 병원은 그야말로 의료 붕괴로 이어진다. 정부가 군의관과 공보의를 투입하고 공공병원 지원과 역할을 확대하지만, 중증 혹은 응급환자의 수술이나 처치 시기를 놓쳐 생명을 잃는 사고가 안 생긴다는 보장이 없다. 이것이 의대 교수들이 바라는 상황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정부는 이미 필수의료 수가 인상, 의료사고 특례법 제정, 전공의 근무 여건 개선, 국립의대 교수 증원 등을 약속했다. 부족하다면 더 요구하고 대안을 내놓으면 된다. 다만, 이 모든 논의는 파업이나 사표가 아니라 대화 테이블에서 가능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증원 규모를 포함한 의료 개혁을 원칙대로 신속하게 추진하겠다는 입장에서 변화가 없다. 정부도 의사들에게 퇴로를 열어주는 유연함을 보여야 한다.”

앞선 언론사의 사설과는 조금은 시각이 다른 입장을 한겨레 3월 8일 사설에서 만날 수 있다. “전공의에 이어 의대 교수들까지 집단행동에 나서는 이유는 정부의 ‘의료 개혁’ 정책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의대 정원 2천 명 확대’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2천 명 증원’의 근거가 된 보고서 저자들마저 정부안과 달리 ‘점진적 증원’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가 ‘총선용’이 아닌 진짜 ‘의료 개혁’을 원한다면 의료현장 실태와 교육 여건에 맞는 방안을 협의해 추진하자는 것이 의대 교수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최근 정부 움직임을 보면, 의료 취약지나 기피 과목에 의사를 유입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기보단 오로지 ‘의대 정원을 2천 명’ 늘리기만 하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처럼 비친다. 또 양쪽 모두 문제 해결보다 기 싸움을 벌이는 듯한 모습만 보이고 있어,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 특히 환자들과 그 가족들을 더욱 불안하게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일 국무회의에서 ‘(전공의 파업 등) 불법 집단행동에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히 대응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불법 집단행동은 절대 허용될 수 없다’는 등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정부가 대한의사협회 등의 무리한 요구에 굴복해서도 안 되지만, 대화와 협상의 문을 걸어 잠근 채 강경 대응만 외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쉽지 않다는 건 알지만, 의료 대란을 피하고 협상력을 발휘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다. 강대강 대치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정부와 의사들의 입장을 각각 제시함과 동시에 협상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방향성을 내보이고 있다.

경향신문도 3월 12일자 사설에서 같은 선상의 입장을 내보이고 있다. “의료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 제재가 시작되면 의대 교수들도 집단사직을 예고해 의료대란은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의대 정원 확대 원칙을 견지하되 그 폭과 방식을 협의하고, 심각한 의료 공백 위기를 관리하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다. 의·정이 치킨게임하듯 맞선다면 해법은 요원할 뿐이다. 일단 최소한의 비상의료체계를 유지하면서 서로 합의점을 찾아가는 게 옳다. 지금은 환자가 최우선이어야 한다. 교수 비대위 제안이 대화의 물꼬를 트고, 의사들이 하루빨리 의료현장에 돌아오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그러나 한겨레나 경향신문도 의대생 증원문제를 근본적인 차원에서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한계를 내보이고 있다. 정부와 의사들의 입장을 어느 정도 세워주면서 양시론의 입장에서 방향성을 찾아보려고 하는 데서 오는 한계이기도 하다. 시시비비를 제대로 가려주고 방향성을 제시해주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의대 학생 증원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교육의 문제라는 시각이 필요하다. 교육의 문제는 교육이란 토대 위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야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서는 우선 교육환경을 잘 마련해야 한다. 

한꺼번에 2천 명, 그것도 동일한 한 학과생을 증원한 경우는 없었다. 이 학생들을 제대로 교육하는 데 필요한 교육환경을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증원만을 주장하는 것은 생각해보아야 할 부분들이 많다. 교육 시설과 교수진이 따라주지 못하면 부실한 교육은 뻔한 현실이 된다. 현재 서울 지역 의대의 교육환경과 지역 의대의 교육 환경은 상당한 격차가 벌어져 있다. 교육부는 늘어나는 의대생 정원의 대부분을 지역의대에 배분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렇게 지역의대에 많은 학생들의 증원이 이루어질 경우 어떻게 될지는 불문가지다. 문제가 제기되니 정부는 학생을 가르칠 교수요원을 1천 명이나 확보하며 의대 지원 계획을 잇달아 발표하는 촌극을 벌이기도 하는데, 이런 발상 자체가 한국 교육의 현실이란 점에서 후진성을 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교육은 하루 아침에 혁명처럼 해서 바꾸어질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언론들은 현실에서 드러나는 문제들에 대해 급하게 표면적으로 대응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루살이 신문들이 지니고 있는 특성이기도 하다. 이러다 보니 문제의 근본을 파헤치고 그 극복의 방향성을 깊이 있게 파고드는 언론의 비평적 기능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정론직필을 생명으로 삼았던 기성 언론들이 이 본질을 상실하면 가짜뉴스가 횡행하는 세상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인터넷과 사회관계망 서비스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가짜뉴스 또한 새로운 사회 문제가 되었다. 그런데 가짜뉴스의 횡행이 사회적 소통망의 발달에만 그 이유가 있지 않다는 점이다. 기성의 언론들이 제 역할을 해주지 못함으로 인해 가짜뉴스가 넘쳐나는 시대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적잖은 시민들이 방송이나 신문과 같은 미디어를 통해 얻는 지식을 절대적 지식으로 간주하는 경향성을 여전히 띠고 있다. 매체가 전달하는 모든 내용을 사실 그대로 수용하는 데 길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매체 자체의 속성에서 유래하는 부분도 있지만 매체가 전달하는 메세지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교육과 훈련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탓이 크다. 수없이 쏟아지는 가짜뉴스를 제대로 분별할 수 있는 비평적 감식안이 하루아침에 생길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뉴스가 뉴스 제공자들과 매체의 성격에 따라 편집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매체 수용자들의 매체에 대한 비평적 문해력을 고양시키는 문제는 더욱 시급한 과제이다. 

또한 가짜뉴스의 대척점에 있는 사실보도는 어떤 사회적 함의를 띠는지도 공동체 내에서 활발하게 공론화되어야 하는 중요사안이다. 진실은 늘 호도되고 왜곡되기 일쑤이지만, 공동체는 그렇게 생산되는 공동의 정보와 지식을 함께 소비하면서 사회적 아젠다를 구성해간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가 더 나은 공의와 신뢰가 살아 숨 쉴 수 있는 진실 지향의 시대 가치를 실현해 나가려면 미디어 비평 교육이 절실하다. 단순히 진짜냐 가짜냐의 변별보다는 그것이 우리 사회에 드리우는 그늘을 살피고 매체를 통해 사회를 비평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문해력의 향상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독자나 시청자의 눈이 이렇게 깨어 있을 때, 언론도 정론직필을 견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남송우 논설고문/부경대 명예교수·고신대 석좌교수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및 고신대 석좌교수.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분에 「윤동주 시에 나타난 자기의 문제」로 당선, 평단에 나왔다. 평론집 『전환기의 삶과 비평』, 『다원적 세상보기』, 『생명과 정신의 시학』, 『대화적 비평론의 모색』, 『비평의 자리 만들기』, 『이것저것 그리고 군더더기』 등이 있다. 부산작가회의 회장, 부산문화재단 대표이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인본사회연구소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2019 부산시 문화상 문학 부문을 수상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