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 속의 여신과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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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 속의 여신과 여성
  • 최혜영 전남대 명예교수·서양사
  • 승인 2024.03.17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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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21세기에 읽는 그리스 신화와 여성』 (최혜영 지음, 전남대학교출판문화원, 236쪽, 2024.02)

 

이 책의 흥미 포인트는 각 독자에 따라서 다른 것 같다. 먼저 읽어본 분들이 전하는 말씀에서 그 점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소설가 선생님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우리나라 신화도 언급되어 있어서 재미있게 읽으신다고 하셨으며, 영문학 전공 교수님은 8장 성모 마리아 부분이 특히 흥미로웠다고 하셨는가 하면, 중문학 전공 교수님은 1장 그리스 신화를 현대적 관점에서 다루는 부분이 좋았다고 하셨다. 저번에 낸 서적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는 서양사교수님 가운데서도 상당히 어렵다고 하셨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 가운데, 처음으로 도전해보는 교양서적인지라 그래도 재미있게 읽고 있다는 전언에 무척 반갑고 참 감사드린다. 

네이버 포털 뉴스란에 <21세기에 읽는 그리스 신화와 여성>이라고 치니, 2012년에 한 단체에서 내가 강연한 강의 제목으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 책에 대한 씨앗은 오래전에 뿌려진 것 같다. 이에 더하여 몇 해 전 첨단 AI 사업단을 이끄는 한 공대 교수님으로부터 인문학 특강을 부탁받아서 한 적이 있는데, 당시 특강을 준비하면서 재미있게 읽었던 미래 사회의 트렌드나 인공지능 로봇 관련 자료들도 이 책을 쓰는 데 한몫한 것 같다. 무엇보다도 그리스 로마사를 전공한 이로서 그동안의 학술적인 연구 및 강의가 큰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또 한국인으로서 그리스 로마사를 전공하다 보니 서양과 우리나라의 문화, 특히 신화를 나도 모르게 자꾸 비교해보게 되었고, 그 때문에 한동안 동서양 교류사에 대해서 큰 흥미와 열정을 가지고 연구했던 적이 있는데, 이 또한 큰 몫을 한 것 같다.

사실 한국에 그리스 로마 신화 관련 책은 참 다양하게 많이 출판되어 있는데, 이 책 또한 나름의 독창성과 재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라 여신이나 아프로디테 같은 여러 여신이나 여러 여성 캐릭터의 깊이 있는 분석은 물론이지만, 메두사를 폭풍의 여신이 형상화된 것으로 본다든가, 유화부인을 버드나무 여신이라는 전 세계적 관점에서 다루어본다든가, 신들의 어머니라 불리는 키벨레 여신과 중국의 서왕모를 비교해본다든가 하는 것은 다른 데서는 잘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 될 것이다. 한국의 서사 무가에 나오는 자청비나 원강아미를 그리스의 데메테르 여신이나 메소포타미아의 이난나 여신, 이집트의 이시스 여신과 비교해보는 것 역시 그러하다. 그리스 비극 등장인물들인 안티고네, 헬레네 등의 캐릭터를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서 재해석한 것도 상당히 독창적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이 주제는 수년 전에 나온 <그리스 비극 깊이읽기>에서 이미 깊이 있게 다룬 바 있다.

이 책은 크게 3부 총 12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 내용을 살짝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다. 맨 처음 1부에서는 오래된 그리스 신화를 21세기에 읽는 의미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또 다각적으로 다루고 있다. 오늘날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그리스 신화 관련 용어를 찾아보는 것은 재미도 있고 상식이나 지식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서양고대사 및 서양사 강의를 하면서 경험했던 바로는 보통의 학생들은 그리스 신화적 캐릭터와 자본주의 브랜드와의 결합 이야기를 좋아할 것 같다. 또한 <엘리시온> <인타임> <타이탄> 등의 영화와 신화, MBTI 등의 심리학과 신화 등을 다루는 내용도 재미있을 것 같고, 왜 오늘날 신화가 유행하는가에 대한 진단도 흥미로울 것이다. 이 책의 지은이로서는 특히 신화와 종교와 오늘날 최첨단 과학을 함께 다루는 부분이 상당한 의미가 있고 독자로서도 조금의 영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를 조금 소개한다면 다음과 같다. 

“호모 사피엔스에 관한 여러 가지 정의 가운데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 혹은 ‘상상력으로 허구의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존재’라는 것도 있다. 상상력에는 한계가 없으니, 상상이 새로운 현실을 창조한다고나 할까? 상상력으로 허구의 스토리를 만들어 낸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바로 그리스 로마 신화를 비롯한 신화나 전설의 세계일 것 같다. 신화는 까마득한 옛 이야기이면서도, 미래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신화에는 긴 세월에 걸쳐 인간들이 상상했던 온갖 흥미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상력은 앞으로 새로운 현실을 창조해내는 데 필요한 미래 세계의 나침반 역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날 21세기 인공지능 사회에서 주목받고 있는 인간 유형 가운데 하나는 “호모 커넥투스”, 즉 ‘연결하는 인간’ 인데, 역사 속에서 가장 창조적이었던 사람들은 실재와 환상을 결합한 사람들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미래는 과학적 사실과 허구적 상상력의 경계가 무의미해지는 시점에 도달할지도 모르는 일, 신화 혹은 종교와 과학은 그런 면에서도 더욱 긴밀하게 연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부의 마지막은 그리스 신화의 특징을 살펴보면서 오리엔트 신화와 중국 신화와 인도 신화, 북유럽 신화와 비교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북유럽 신화에서는 그리스 신화와 달리 신체에 장애가 있는 불완전한 용모의 신들이나 전쟁의 신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든가, 비극적 미래관이 발달한 특징이 있는데, 이는 햇빛 찬란하고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지중해 연안의 그리스에 비해서, 춥고 척박한 지역에서 생존경쟁 및 전투가 치열했던 북유럽의 풍경이 그대로 담겨져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의 몸통이라 할 수 있는 2부는 크게 네 세계의 여신, 그리스 비극 속의 여성, 경계 위의 여성 등의 세 부분으로 크게 나뉘어져 있다. 먼저 그리스 여신들 가운데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지하 세계를 각각 대표하는 네 여신>을 뽑아서 다루어보았다. 하늘의 헤라, 땅의 데메테르, 바다의 아프로디테, 지하의 페르세포네가 각각 그들이다. 헤라 여신과 헤라클레스의 관계를 재조명해보기도 하고, 아프로디테 여신이 벌거벗은 에로틱한 모습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기원 전 4세기 이후이며 이전에는 무장을 한 모습으로도 나타났다는 것 등, 이제까지 피상적인, 혹은 주로 대표적인 한 모습만 알려진 여러 여신들의 숨겨진 여러 모습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다음으로 다루는 <비극 속의 여성>으로는 안티고네, 메디아, 헬레네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단순한 철학적, 문학적 분석을 넘어서서 당시 비극이 쓰여진 역사적 배경을 조명하면서 총체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이어서, <경계를 넘나드는 여성>에서는 유럽과 아프리카 등 대륙을 넘나든 공주 이오, 괴물과 여신을 넘나들었던 메두사, 여성과 남성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아마존족 등을 다루었다. 이 역시 단순한 신화 속의 여성들이 아니라 당시의 식민지 개척 등의 당시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알아봄과 동시에, 통시적으로 오늘날의 재해석 혹은 새롭게 쓰기 및 고고학 발굴 등과도 연결시키면서 살펴보고 있다.

마지막 3부는 그리스 신화와 오리엔트 신화, 크리스트교, 중국이나 만주에 이어서 우리나라 에 이르는 여러 신화 속 여성들을 비교적, 교류적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 성모 마리아 숭배의 역사적 배경, 헤라 여신에서 만주족의 아부카허허 및 유화부인에 이르는 버드나무 여신, 데메테르, 이시스, 이난나, 유화부인, 자청비, 원강아미에 이르는 곡물여신이 그들이다. 키벨레 여신을 서왕모와 비교해서 다루기도 하며, 마지막 장인 새(鳥) 여신 편에서는 알영과 유화부인이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지방 대학의 출판사에서 나온 것이라 책 외양이 매우 소박하다. 책 속에 인용된 사진들은 그리스 곳곳은 물론이고 튀르키예, 이집트, 튀니지, 레바논, 키프로스, 이탈리아 본토와 시칠리아 등 지중해 여러 나라, 여러 박물관을 돌아보면서 필자가 직접 찍은 것들 가운데 대거 활용하였는데, 칼라 인쇄였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비교적 가격이 착하다는 장점이 있고, 지면이 넓고 글자 크기가 작지 않아서 쉽게 읽힌다는 장점도 있다. 비록 외모는 소박하더라도 내용은 흥미롭고 풍성하다고 생각하고 싶다. 한 학자의 생각과 학술적 연구와 나름의 아이디어가 결합하여 태어난 소박한 이 책이 모쪼록 사랑받기를, 무엇보다도 읽는 독자에게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울림을 주기를... 

 

최혜영 전남대 명예교수·서양사

전남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작년부터 명예교수로 있다. 그리스 정부 장학금을 수년간 받으면서 이와니나 대학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서양고전학회 회장, 한국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 편집위원장, 전남대학교 박물관장, 국사 편찬위원회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 <그리스 문명>, <그리스 로마의 역사와 문화> 등이 있고,  최근 출간된 <고대· 교역·도시 그리고 가야>를 비롯한 여러 공저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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