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헤드, “아름다움은 진리보다 더 광범하고 더 근본적인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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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헤드, “아름다움은 진리보다 더 광범하고 더 근본적인 개념이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4.03.16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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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 없이: 칸트, 화이트헤드, 들뢰즈, 그리고 미학 | 스티븐 샤비로 지음 | 이문교 옮김 | 갈무리 | 368쪽

 

이 책에서 저자 스티븐 샤비로는 하나의 철학적 공상을 제안하고 탐험한다. 마르틴 하이데거 대신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가 탈근대 사유를 위한 지침이 되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이데거의 물음은 이런 것이다. “어째서 차라리 무(無)가 아니라 무엇인가가 존재하는가?” 반면 화이트헤드는 다음과 같이 묻는다. “어째서 늘 새로운 무엇인가가 존재하는가?” 

대중음악에서 DNA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샘플링되고 재조합되고 있는 세계에서, 샤비로는 화이트헤드의 질문이야말로 진정 긴급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 『기준 없이』는 탈근대 이론, 특히 하이데거가 아닌 화이트헤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관점에서 감성론/미학 이론을 다시 사유하면서 행하는 샤비로의 실험이다.

샤비로는 화이트헤드를 질 들뢰즈와 연관시킨다. 화이트헤드와 들뢰즈 사이에 존재하는 중요한 공명과 친화성을 찾아내고, 화이트헤드에 대한 들뢰즈적 독해와 들뢰즈에 대한 화이트헤드적 독해를 제안한다. 또 샤비로는 화이트헤드와 들뢰즈의 관념들을 통해 작업하면서 칸트를 참조한다. 샤비로는 칸트의 사유에 들어있는 일정한 측면들이 화이트헤드와 들뢰즈가 받아들인 철학적 “구축론”(constructivism)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고 주장한다.

칸트, 화이트헤드, 들뢰즈는 일반적으로 함께 묶여 다뤄지는 철학자들은 아니다. 그러나 『기준 없이』는 이 세 명의 철학자를 나란히 놓으면서 현대 예술과 미디어 실천들의 관심(특히 디지털 영화와 비디오 부문에서의 발전들)에 속하는, 그리고 문화이론의 논의들(상품 물신주의에 관한, 또 내재성과 초월성에 관한 질문들이 포함된 논의들)에 속하는 다양한 쟁점들을 조명한다. 더 나아가, 화이트헤드에 대한 새로운 독해를 통해서 그리고 아주 최근의 이론적 담론에서 나타나는 “윤리적 전회”와의 사려 깊은 대조를 통해서 사비로는 현대 문화에 대한 비판적 미학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샤비로가 보여주는 화이트헤드 철학에 대한 해석은 넓게 보아 그레이엄 하먼이나 데넷 및 베넷과 같은 사변적 실재론자들의 입장과 공유하는 몇 가지 철학적 주제와 입장에 대한 기초 작업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아름다움은 진리보다 더 광범하고 더 근본적인 개념이다”라는 화이트헤드의 유명한 격언에 대한 샤비로의 강조와 해석은 그레이엄 하먼 같은 철학자가 주창하는 제1철학으로서의 미학이라는 입장과 공명하는 점이 분명히 있다. 샤비로는 “모든 진정한 실재론은 사변적이어야 한다”고 보는데, 왜냐하면 “실재와 마주할 때 우리는 사변하도록 강요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변적 실재론의 성립 조건은 정확히 사물 자체의 인식가능성을 부정한 칸트의 입장, 즉 우리가 자신의 사고에서 벗어나 생각하거나 사물에 대한 우리 자신의 개념 밖에서 사물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구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샤비로는 그레이엄 하먼과 화이트헤드가 상관주의의 순환에서 벗어나 전-비판적 또는 전-칸트적인 독단주의로 돌아가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이 전-비판적 자유를 실현하는 길을 모색했다고 평가한다. 그러한 사변적 실재론의 길은 긍정적인 존재론적 테제와 긍정적인 인식론적 테제를 함께 유지할 수 있어야 하는데, 특히 화이트헤드는 그 길을 인식론적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오히려 미학에 단적으로 초점을 맞춤으로써 해결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샤비로가 볼 때 미학은 내재적이고 비인지적인 접촉의 영역이기 때문에 인식에 선행할 뿐 아니라, 오히려 지식으로 이끄는 유혹적 측면조차도 갖는다는 것이다.

샤비로는 『판단력비판』의 전반부, 특히 미학에 관한 칸트의 논의에서 칸트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며, 칸트 자신의 체계 구축법에서는 배제된 사변적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해주었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칸트는 미적 판단을 단지 지성의 필연적 작동에서 벗어난 예외로 간주하는 것 같지만, 실제 칸트의 정식은 이 이상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준 없이』에서 샤비로는 칸트, 화이트헤드, 그리고 들뢰즈가 사변적 미학의 구성을 위한 맹아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현재적 맥락에서 샤비로는 메이야수의 극단적 우연성과 하먼의 불변하는 진공 속에 갇힌 객체의 대안으로서 화이트헤드의 사변적 미학을 제안한다.

샤비로가 해석한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적 세계에서 현실적 계기들의 경험은 실제로 그 근본에서 미적이며, 그렇게 미적인 것을 통해 우리는 세계 속에서 행위를 하며, 세계와 세계 속 다른 사물들을 사고의 단순한 상관항으로 환원함이 없이 그들과 관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샤비로는 『기준 없이』를 하나의 실험이라고 규정한다. 그것은 바로 하이데거 대신 화이트헤드로 몸을 돌려 귀를 기울이는 관점에서 탈근대 이론을, 특히 미학 이론을 다시 사유하려는 시도이다.

『기준 없이』의 주장은 화이트헤드와 들뢰즈 모두 본보기들[범형들]과 모방에 근거한 칸트적인 미학적 실천을 취하되, 이러한 실천을 칸트가 배제했던 형이상학적 사변이라는 바로 그 영역들에 적용한다는 것이다. 미학은 더 이상 인식론과 윤리학의 규칙들에 대한 예외가 아니라, 바로 그것들의 실천을 위한 근거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역설적이지만 ‘기준 없이’는 오히려 기준의 발생 ‘근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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