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과 사람, 어떤 관계를 맺어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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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과 사람, 어떤 관계를 맺어왔을까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4.03.16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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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리와 날개를 가진 동물, 어휘 속에 담긴 역사와 문화 | 기유미·신아사·이선희·홍유빈 지음 | 따비 | 224쪽

 

이 책은 한자어의 미묘한 차이와 그 복잡성을 고려한 국가 간 비교 연구를 통해 동아시아 삼국의 문화적 특성을 조명하고, 동서양 어휘 문화의 상호작용과 이에 대한 다양한 통찰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경성대학교 한국한자연구소 ‘어휘문화총서’ 네 번째 책으로, 아홉 종의 조류(鳥類)에 관한 다양한 어휘를 다룬다.

지금 한국에서는 닭과 오리 정도를 제외하고는 식량으로 이용하는 조류가 거의 없지만, 새는 오랫동안 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그러나 그저 먹을거리로만 인식하기에는 조류의 종류는 너무 다양하고, 인간과 맺은 관계도 다면적이다. 예를 들어, 늘 우리 주변에 있어 가장 친근하지만 때로는 애써 지은 곡식을 쪼아 먹어 원망을 산 참새가 있는가 하면, 맹금류이지만 인간에게 사냥의 수단으로 부림을 당했던 매가 있다. 지금은 비록 도시의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비둘기는 한때 그 귀소본능으로 인해 더없이 소중한 통신수단이었다. 화려한 깃털 색과 사람의 말을 흉내 내는 능력으로 인해 예로부터 귀한 대접을 받은 앵무새도 있다.

이런 새들이 각 문화권에서 받은 대접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를까? 작은 참새는 한국에서는 귀리를 가리키는 한자어 작맥(雀麥), 어린 찻잎을 따서 만든 작설차(雀舌茶)처럼 작은 것에 붙이는 이름이 되었는데, 일본에서도 쥐꼬리만 한 월급을 참새의 눈물에 빗대 ‘스즈메노 나미다호도노겟큐[雀の涙ほどの月給]’로 표현한다. 동양에서는 견우와 직녀를 이어주는 다리를 놓기도 하고 반가운 손님이 오는 징조이기도 한 길조 까치는, 서양에서는 반짝이는 물건을 훔쳐가는 도둑으로 취급받는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새였고 히브리 신화에서는 노아에게 홍수가 끝났음을 알린 비둘기는, 현재 한국에서는 닭둘기, 쥐둘기라고 불리며 수모를 당하고 있다.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난다는 특징으로 인해 하늘과 땅,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존재로서 신성시되기도 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티베트족의 조장(鳥葬)이다. 티베트족은 사체(死體)를 독수리 등이 먹음으로써 사자(死者)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고 믿어 시신을 매장하지 않았다. 하늘을 날 뿐 아니라 물에 떠다니거나 잠수하기도 하는 오리는 천상계는 물론 지하세계와 교통하는 메신저로 여겨졌다. 영혼을 잘 인도하기를 바라는 부장품이었던 삼국시대의 오리 모양 토기, 한 바이킹의 묘지에서 발견된 오리발 모양 펜던트가 이를 잘 보여준다.

부부 사이가 계속 화목하기를 바라며 부부가 함께 사용하는 이불과 베개를 ‘원앙금침’이라고 하고, 매의 뾰족하고 휘어진 부리와 닮은 사람의 코를 ‘매부리코’라고 한다. 골프 용어 ‘이글(eagle)’은 골퍼가 한 홀에서 2언더파의 좋은 샷을 가리키며, 매의 눈이라는 뜻의 ‘호크아이(hawk-eye)’는 각종 스포츠에서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세밀한 판정을 위해 도입된 ‘다시 보기’용 카메라 시스템을 의미한다. 폭넓게 쓰이는 새의 비유로 호전적인 ‘매파’와 온건한‘비둘기파’를 들 수 있다.

이처럼 다채로운 새의 비유는 우리가 새들과 얼마나 다양한 관계를 맺어왔는지 보여준다. 가까이서 보고, 관찰하고, 영향을 주고받았기에 가능한 비유다. 그 예의 하나가 딱따구리다. 현대의 도시인들이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를 실제로 듣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조선시대 문인들이 쓴 글에서는 딱따구리가 내는 소리를 실제로 들은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묘사와 비유를 많이 볼 수 있다.

글과 말 속의 이런 비유와 표현을 통해, 거꾸로 현재의 우리가 새들과 얼마나 멀어졌는지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언어 속의 새들을 찬찬히 살펴보는 것이 새들과 다시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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