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인류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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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인류의 삶
  • 김환규 편집기획위원/전북대·생리학
  • 승인 2024.03.16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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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환규 교수의 〈과학에세이〉

 

                                               이미지 출처: EBS 다큐프라임_ 달의 기적

달은 지구 상공에서 두 번째로 밝고 규칙적으로 볼 수 있는 천체이다. 지구가 생성된 후 약 1,300만 년 뒤에 달이 출현하였다. 그때부터 달은 점차 지구에 근접했으며 현재는 20,000~30,000km 정도 떨어져 있다. 달이 형성된 시점의 지구의 하루는 단 5시간에 지나지 않았으나, 45억 년 동안 지속된 조석의 형태로 지구의 자전에 미치는 달의 제동 효과에 의해 현재는 24시간으로 연장되었다. 달보다 훨씬 큰 태양도 지구의 자전 속도에 관여하지 않을까? 태양은 달에 비해 약 400배 더 크나 거리는 약 400배 더 떨어져 있으므로 조석에 유의할 만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단지 원근 비율 때문에 우리 눈에 태양과 달이 거의 같은 크기로 보일 뿐이다. 중력은 물체 사이의 인력으로, 천체가 다른 천체와 서로 결합하거나 끌어당기게 한다. 달이 지구에 근접하면서 지구의 바닷물을 주변으로 끌어당겨 조석을 일으키는 중력의 힘은 더 강해졌다. 달에 의한 중력이 없다면 바닷물은 재분배되어 극지의 수평선을 상승시키고, 지구의 자전 속도를 6시간으로 낮출 것이다. 중력 때문에 지구는 축을 기준으로 안정적으로 회전하여 지구의 바닷물을 완벽하게 재분배한다. 달이 없다면, 지구의 기후는 무작위적인 변동을 나타내며 하루의 길이가 짧아지고 조석이 약해질 것이다.

태양에 의해 생기는 조석인 태양조(太陽潮)는 달에 의해 생기는 것보다 매우 작다. 현재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조석은 달이 없다면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조석의 강도가 감소하면 지구 자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조석 마찰이 감소하면, 지구는 더 빠른 속도로 자전하게 되어 하루가 최대 2/3까지 짧아질 것이다. 지구는 약 23.44° 기울어진 축을 기준으로 자전하는데, 이 기울기를 안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달이다. 달이 없다면, 지구는 측면으로 기우뚱거리는 불안정한 팽이처럼 자전하게 되는데, 이것은 북극이 열대 기후로 전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격변하는 계절은 인류를 포함한 생물종의 진화를 차단하고 생존을 위협할 것이다. 규칙적인 계절이 없는 지구는 전혀 다른 행성이 되어 동면하는 동물도 없고, 관엽식물의 진화도 없을 것이다. 결국, 달이 존재하기 때문에 인류는 계절을 즐길 수 있다. 달이 없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변화 중에서 기후 변화 역시 매우 극적이다. 그러므로 달의 존재는 모든 생물종이 안정적으로 지구에 생존할 수 있게 한다. 

조석은 해양 생물에 큰 영향을 미친다. 달은 오랜 시간에 걸쳐 지구 생물종의 진화에 큰 영향을 미쳐왔는데 대부분 조석을 통해 이루어졌다. 조석에 의해 대양의 가장자리 육상은 몇 시간 노출된 후 다시 물로 적셔짐으로써 생물종이 대양으로부터 육상 환경에 적응하고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달이 없다면 지구상의 생물은 적도를 따라 좁은 영역에 한정되어 존재할 것이다. 달 없는 지구에서 식물은 크기가 작고, 뿌리를 깊게 내리며 땅에 달라붙어 생육하고, 조류와 곤충같이 비행하는 동물은 생존할 수 없게 된다. 또한 만조가 축소되고 지구의 자전 속도가 빨라져 대기, 바다 및 육상 사이의 열 교환이 더 빠르게 일어나 지구 표면의 동-서 방향으로 시간당 160km에 이르는 강한 허리케인을 일으켜 생물종의 생존에 위협을 가할 것이다. 하루가 8시간으로 축소되기 때문에, 인류를 포함한 생물종의 생체시계가 교란되어 항상성이 무너질 것이다. 우주로부터 오는 우주선 대부분은 지구 자기장에 의해 중화되어 일부만 지구에 도달하기 때문에, 달이 없다면 지구의 핵은 지구 자체와 함께 훨씬 빨리 회전하고, 자기장이 커지게 되어 대기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그 외에도 세균과 바다거북, 연어, 뱀장어, 비둘기와 철새같이 이동 방향을 찾는 데 자기장을 사용하는 동물들도 부정적 영향을 받게 된다. 

지구에 생물이 출현한 약 40억 년 전에 달은 현재보다 지구에 훨씬 더 근접해 궤도를 공전하였으며, 그로 인해 몇 시간 단위로 큰 조석을 일으켰다. 이런 조석은 DNA-유사 생체 분자의 진화를 일으킬 수 있는 해안선 부근의 염도를 변화시켰다. 생물이 출현하기 위해서는 햇빛, 적절한 온도, 화학물질과 물이 있어야 한다. 최초의 생물은 화학물질들이 혼합되는 용매인 물이 존재하는 바다에서 형성되었다. 생물의 기원에 대한 이론에 따르면, 용매 수프에서 작은 전구체 분자로부터 DNA 또는 RNA 같은 자가-복제 분자가 출현하였다. 달빛은 생물 자체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대부분의 야행성 동물은 달의 29.5일 주기에 동조하여 행동한다. 달빛이 밝을 때 포식성 어류는 암초에 숨어 있다가 먹이를 낚아채고, 사자 역시 달빛이 밝을 때는 거의 사냥하지 않는다. 바다거북은 만조일 때 알을 낳고, 해파리와 플랑크톤은 월주기(月週期)를 따라 물줄기를 오르내리며, 일부 어류 역시 월주기에 따라 이동하고 산란한다. 

육상 동물의 각성, 수면과 산란 같은 대부분 활동은 일주기에 동조된 내부 생체시계에 의해 조절 받는다. 달이 사라진다면 지구의 하루는 점차 짧아지고 생물종은 짧아진 일주기에 적응해야 한다. 해돋이 재설정 또는 동조에서 생물학적 시계는 정확히 24시간 주기는 아닌데, 인류는 25시간의 생체시계를 갖고 있다. 하루가 8시간으로 짧아지면 생체시계는 급격히 동조 능력을 잃게 될 것이다. 달은 생물종의 진화를 이끌어 왔으며, 월주기는 대부분 생물종의 생활사에 내재되어 있다. 바다제비는 낮의 길이가 12시간 30분 정도로 길어질 때 산란 회류를 한다. 이들 조류는 달과 낮의 길이가 산란 회류와 동조되어 있기 때문에 매년 번식지의 보름달에 맞추어 도착한다. 바다거북은 산란과 부화 시간을 조석에 일치시켜 자손의 생존율을 최상으로 끌어올린다. 오르내리는 조석에 동조화된 바다거북은 달이 사라진다면 방향 감각을 잃고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찾아갈 수 없게 된다. 약해진 조석은 간조대를 점점 더 협소하게 만들어 생물종 사이의 경쟁을 유발하고 결국 생물다양성 감소가 초래된다. 

달이 인류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믿음은 고대의 민속과 전통 의술에 담겨 있다. 현대 의학이 발전하기 전까지는 달의 위치를 추적하는 것이 의술의 중요한 영역으로 여겨졌으며, 인도에서는 월식이 일어날 때 자외선이 방출되어 건강에 해를 끼치므로 월식 동안 금식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1708년에 의사인 미드(R. Mead)는 ‘동물의 여러 질병에 미치는 태양과 달의 작용에 관한 논고’를 발표하였다. 뉴턴(A. Newton)의 이론에 영감을 받은 그는 달의 중력에 의해 체액 조성에 변화가 생겨 간질, 담석 같은 질병과 월경주기를 일으킨다고 주장하였다. 미드의 주장을 지지하는 과학적 증거는 없었지만, 달과 월경주기가 동조되어 있다는 주장은 계속되었다. 실제, 많은 내적 및 외적 인자들이 여성의 배란, 임신과 출산에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다. 일본 후쿠쓰시의 한 병원에서 1996년 1월에서 2007년 3월 사이에 태어난 신생아 1,507명을 조사한 결과, 보름달 무렵에는 밤에 태어난 비율이 높았고, 초승달 무렵에는 낮에 출산한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이미지 출처: pixabay

인공조명이 출현하기 전에는 달빛이 밤의 주요 광원이었다. 달빛과 수면 관계에서 보름달 무렵에 수면의 질이 좋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2013년에 33명의 지원자를 대상으로 행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보름달 무렵에 수면에 드는 시간은 상현달이 뜰 때보다 상대적으로 긴 5분 이상이었다. 보름달의 밝은 빛이 수면을 방해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실험은 빛의 양을 철저히 통제한 조건에서 수행되었다. 달이 인류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때조차도 달 자체가 직접적 요인은 아니다. 달빛은 수면뿐만 아니라 낮 동안의 인류의 활동 능력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밝은 달빛이 비칠 때 인류는 더 활동적인데, 이것은 인류의 활동 능력이 달의 밝기와 동조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달빛 자체가 사람들을 더 오랫동안 각성 상태로 유지할 수도 있다. 

동물 대부분은 산란, 배란과 이주 시기를 결정하는 생체 주기를 갖고 있다. 많은 종은 월주기에 맞춰 생체 주기를 적응시켰는데, 열대 산호의 산란은 보름달에, 환형동물의 생식은 상현달에 동조되어 있다. 달은 인류의 감정, 걱정과 우울증을 격발하는 환경인자로 작용한다. 인류 감정 변화의 주된 인자 중 하나는 월주기와 수면-각성 주기의 교란이다. 조울증 환자 17명을 대상으로 행한 연구에서, 환자들의 우울증과 조증 사이의 교차 주기가 월주기가 일치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인류의 감정 조절은 특정 시간대에 방출 또는 억제되는 호르몬에 의해서도 일어난다. 일부 호르몬은 낮의 각성 시에 분비가 증가하지만, 다른 호르몬은 잠자리에 드는 밤에 증가한다. 멜라토닌은 밤에 분비되어 잠에 들게 하는 호르몬이다. 멜라토닌 분비가 증가할 때 감정과 식욕 조절 호르몬인 세로토닌의 분비가 감소한다. 인공광과 유사하게 보름달의 밝은 빛은 잠자리에 드는 것과 수면의 지속에 악영향을 끼친다. 2013년에 행해진 한 연구 결과, 보름달 무렵에 참가자들은 깊은 수면을 의미하는 NREM 수면 시간이 30% 감소하였고 전체 수면 시간도 약 20분 감소하였는데 이러한 변화 역시 멜라토닌 분비 감소와 연관되어 있다. 

달은 지구에서 생명체가 생존하는 데 필요한 결정적인 환경인자이다. 달이 사라진다면 인류를 포함한 지구상의 많은 생물종에 파괴적인 상황이 초래될 것이다. 인류는 달에 대해 민속, 설화와 종교 등 많은 영역에서 긍정적인 신념을 갖고 있다. 달나라 버드나무 아래에서 토끼가 방아 찧는다는 설화에 대한 신념은 위약 효과에서 볼 수 있듯 인류의 신체와 정신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김환규 편집기획위원/전북대·생리학

전북대 생명과학과 교수. 전북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 교환교수, 전북대 자연과학대 학장과 교양교육원장, 자연사박물관 관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생물학 오디세이』, 『생명과학의 연금술』, 『산업미생물학』(공저), 『Starr 생명과학: 생명의 통일성과 다양성』(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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