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자의 사회 울림에 대한 사회과학자의 책무
상태바
공학자의 사회 울림에 대한 사회과학자의 책무
  • 김민정·사회학
  • 승인 2024.03.10 17: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서평_ 『약자의 결단: 우리는 왜 모범국민 되기를 거부해야 하는가?』 (강하단 지음, 궁리, 336쪽, 2024.01)

 

악의 일상화에 대한 저항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폴 부르제는 1914년 《한낮의 악마》에 다음과 같은 문구를 남겼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이 구절을 책의 문제 제기로 대응해 보자면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면서 삶에 주요하게 영향을 끼치는 자본과 정부가 운영하는 국가 중심 권력의 가치 기준 체계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하는 것이다. 또한 이는 책의 부제인 “우리는 왜 모범국민 되기를 거부해야 하는가”와도 연결된다.

‘대안이 없다(TINA)’는 모델을 주장하는 국가와 시장 권력은 끊임없이 모범국민이 되기를 강요하고 순응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저자는 “왜 모범국민이 되지 않아야 하는지, 모범국민이 어떻게 이용당하는지와 모범국민이 되지 않는 길”을 제시한다. 이를 위해 국민과 대중을 구분한다. 국민은 국가와 정부의 정책 대상이지만, 대중은 소통하는 존재이다. 소통은 언어와 기호로 가능한데 아래로부터의 기호 변화는 디지털이라는 거대한 물결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공학자의 개념 규정

책에서 정의한 강자는 사회 전반의 영역에 기준을 정하는 자이고, 약자는 선택권이 없이 경쟁으로 내몰린 사람이다. 약자의 길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한 가지는 가진 자의 소유를 정의롭게 나누고, 권력이 만든 질서 안에서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는 약자가 국민이 되는 길이다. 다른 방법은 약자가 강자를 대신하여 새로운 강자가 되지 않는 길이다. 이는 디지털시대에 현실 가능한 방법으로 소통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것이다. “가진 자들의 부와 권력형 정부가 주는 기본소득을 과감히 거부하고 대중이 서로의 믿음으로 세금 없이 할 수 있는 기본소득을 만들면 된다. 결국 대중이 택한 언어가 돈이 되고 법이 되고 세상의 이치가 될 것이다.” 이 시대는 “약자의 결단”이 필요하다.

“하나의 공간, 두 개의 세상”, “복잡한 사회에는 다양한 기호를”, “돈 자본주의에서 언어 자본주의로”, “기호가 바뀌어야 산다” 등의 소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주류 사회의 기호와 공존 가능한 새로운 기호는 실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디지털시대는 기존 질서와 겹치지 않게 새로운 가치 기준에서 기호를 생성해 사용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돈을 예로 들면 달러, 유로, 위안, 원 같은 법정 화폐는 그냥 두고 가치 기준 자체가 다른 돈을 만들어 통용하는 것이다.”

사회과학자 에릭 올린 라이트는 《21세기를 살아가는 반자본주의자를 위한 안내서》에서 게임의 비유로 반자본주의에 대한 전략 논의를 설명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게임을 할지를 결정하는 파괴적 단절 변혁과 공생적 변혁인 게임의 변경 가능한 규칙을 둘러싼 갈등, 특정한 게임 규칙 안의 동작을 둘러싸고 벌어질 틈새 변혁으로 구분한다. 파괴적 단절 변혁은 사회 구조상의 단절, 수행하는 게임의 성격상 일어나는 급격한 중단을 수반한다. 공생적 변혁은 사회 체제의 규칙의 변화를 가져오고, 체제가 순조롭게 운영되게 만드는 동시에 향후에 진행될 변혁을 위한 공간을 확대한다. 틈새 변혁은 기성의 게임 규칙 안에서 일어나는 동작의 누적 효과에서 발생한다.

저자가 제시한 대안은 공생적 변혁 형태인 듯하지만 이를 비판하고 틈새 변혁에 가까이 맥이 닿아 있다. 이 점을 책의 에필로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팬데믹을 겪고도 기존 경제체제로의 회복을 목표로 삼으며 목적 없이 기존 것을 재탕하는 정책을 강조하는 정치인, 기술 경쟁만을 강조하는 기업가, 초강대국 눈치보기 급급한 국제기구 지도자를 바라보면서 절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래디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기후변화 재앙에 경제셈법으로 대처하는 정부를 향해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외치는 활동가를 보면서 어떻게 온몸에 힘이 빠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특히 “가진 자들로부터 부와 권력을 나누는 정의를 실현하려는 순간 가진 자들의 논리를 받아”들여 기존 경제 기호를 쫒아가는 ‘진보’ 활동가에 대한 저자의 안쓰럽고도 씁쓸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책에서 기존의 체제 기둥을 놔둔 채 리모델링을 요구하는 개혁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탈을 쓴 채 체제 전환을 외치는 이들에 대한 한계를 나지막하게 지적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5부 디지털 연금술사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저자는 돈이 지배하는 증감현실에서 ‘감강’, 즉 '현실 속에 있던 사물을 제거하거나 감소시킴으로써 강해진다'를 제시한다. 자본주의에서 돈은 증감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만, 디지털시대에서는 돈은 양적으로 사라지게 하거나 감소하는 화폐를 실현시킬 수 있다. 이는 법정 화폐와 일대일 대응 교환되지 않은 공동체 화폐를 발행하여 그 가치를 공동체 구성원인 대중이 결정하는 가치 체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국민이 아니라 대중의 역할이 필요하다.


공학적 상상력과 사회과학의 개념

사회과학자로 책의 장점을 제시한다면 일상어에서 사회과학적 개념이 묻어 있다는 점을 발견하는 것이다. 과학의 목표가 물질과 생명, 사회에 대한 이해를 진전시키는 것이라면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더불어 인문학과 예술을 통한 통합적 사고 능력의 함량이 필요하다. 아인슈타인은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라고 했다. 이는 지식은 기존에 알고 있는 것에만 국한되었지만, 상상력은 앞으로 이해해야 할 세계를 제시한다.

물리학자 최무영은 《과학, 세상을 보는 눈》에서 “상상을 상식으로 바꾸는 작업이 과학”이라면 “인문학과 예술은 상식으로부터 상상을 이끌어 내는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점에서 저자는 환경공학자로서의 ‘조재원’과 과학예술작가로의 ‘강하단’을 동일한 주체 안에 통일성에 기초한 구분을 제시한다. 이는 저자의 주장과도 일치한다. ‘모범국민’인 조재원에서 약자의 결단을 통해 ‘대중’ 강하단으로의 전환을 제시한 것이 아닐까한다.

과학예술작가와 공학자의 상호작용때문일까. 책을 읽고 있으면 공학자의 현실 파악이 사회과학의 개념으로 연결되는 지점을 찾을 수 있다. 단적인 예로 “돈 자본주의에서 언어 자본주의로”, “법보단 돈, 돈보단 말”에서 마르크스가 제시한 ‘화폐 물신성’ 및 ‘소외’ 개념의 현상을 얼핏 찾아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주류 학문 체계 안에서 학제 간 연구가 객관적 및 주관적 조건에서 실질적으로 못(안) 하지만 끊임없이 (저자가 제시한 의미로서) ‘대중’은 통합 학문을 요구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건설적으로 논의할 지점

칸막이 식 학문 체계 안에서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학, 예술 등이 서로 소통하기 어려운 조건이 존재하지만 만남은 시도된다. 공학자가 신자유주의에 빠진 사회를 진단하여 대안을 제시했다면 이제 사회과학 및 인문학 등의 영역에서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또한 사회과학의 자연과학 탐구 및 기술(공학)에 대한 진단 작업을 기대해 본다. 이러한 통합의 성사는 자연과학자의 사회과학적 소양의 증진이고,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책에서 제시한 주장에서 꼭 논의 했으면 하는 주제가 있다. 첫째로 저자는 국가와 시장을 대척점으로 제시하면서 “자유주의는 정부 중심, 공동체주의는 기업과 자유시장 중심으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이데올로기”로 설명한다. 더 고민할 지점은 국가와 시장의 관계이다. 저자는 국가와 시장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만 국가와 자본(시장)을 ‘구조적’ 상호의존적 관계로 규정하는 방법론도 있다.

둘째로 미국의 실용주의 및 스키너를 대표하는 행동주의 심리학을 바탕으로 한 기호의 중요성에 대한 부분이다. 정보 및 기호의 구실이 중요한 디지털시대이지만 물질세계, 즉 의식주 해결이라는 실질적인 노동의 필요성이 토대가 되어야 한다는 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무엇보다 실용주의와 행동주의 심리학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 필요하다.

셋째로 저자는 위로부터의 체계의 변화는 혁명과 민주주의 이름으로 여러 차례 시도하여 때론 성공했지만 늘 유사한 차별과 계급을 유지했다는 점을 현실적으로 지적한다. 이러한 점에서 1917년 러시아 혁명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필요하다.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와 위로부터의 사회주의에 대한 사회과학적 평가가 접목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제를 제안하면서 총체적 연구가 활성화될 수 있는 학문적 토대를 형성하는 사회적 조건은 사회 변혁이라는 점을 힘주어 강조하고 싶다.
 


김민정·사회학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원으로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최근 관심 분야는 포스코의 공해와 공해사슬구조, 환경(기후) 불평등, 그리고 역사유물론의 관점에서 본 인간과 자연의 관계 모색 등이다. 주요 연구로 “계급 정치로 분석한 기후변화의 쟁점들”, “탈성장 논의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적 비판”, “기후정의와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론에서 본 한국 핵산업에 관한 시론”, “빌 게이츠가 못 보는 기후 위기 해법”, “한국 민주주의와 국책 사업”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